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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공인의 언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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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요즘 일본의 국민적 영웅은 단연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다. 지난주 오타니의 만장일치 최우수선수(MVP) 수상이 발표되던 날에는 호외까지 뿌려졌다. 도쿄타워는 오타니의 등 번호 '17'을 상징하기 위해 17시 17분부터 '축 17'을 점등했다. 일 정부는 국민영예상까지 제안했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100이닝 투구-100탈삼진-100안타-100타점-100득점을 동시 달성한 건 150년 가까운 미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처음이라니 대단한 일이다. 얼마 전 오타니의 기자회견장에 운 좋게 참석했다. 덩치도 덩치지만 정말 놀란 건 그의 답변 태도였다. 오타니는 무려 55개의 질문을 받았다. "일본의 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뭘 먹었느냐" 등 별의별 질문이 다 나왔다. 솔직히 수준 이하 질문도 상당수였다. 하지만 오타니는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게 끝까지 응대했다. 회견이 끝난 뒤 한 참석자는 "오늘 회견은 공인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MVP수상을 알리는 호외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MVP수상을 알리는 호외

이재명 "우리가 언론사 돼야" 황당
오보와 가짜뉴스 혼용 의도 뭘까
완벽치 않아도 계속 쓰는 게 언론

3년 전 "엉뚱한 질문을 자꾸 한다"며 방송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끊었던 이재명 후보는 당시 SNS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수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을 100일가량 앞두고 다시금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한 느낌이다.

그는 현 언론 구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지지자들을 향해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우리의 카톡, 텔레방 댓글로 커뮤니티에 열심히 써서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을 알리자"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건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이 과연 뭘까 하는 점이다. 있으면 이 후보 스스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그가 말하는 '묵살된 진실'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만일 그런 게 있다면 당장 기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설령 데스크나 윗선에서 상대 후보 편을 들라고 한다 해도 수백 명의 기자가 고분고분 그 말 듣고 허튼 기사를 쓸 것 같은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언론사의 조직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언론을 지목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2일 부산시 중구 구덕로 BIFF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즉석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2일 부산시 중구 구덕로 BIFF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즉석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가 애용하는 '가짜뉴스'라는 표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언론사에 '오보'는 있지만, 가짜뉴스란 없다. 가짜뉴스란 엄밀한 의미에서 허위사실을 악의적으로,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건 범죄다. 의도치 않은 오보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예컨대 이런 거다. 트럼프는 지난 미 대선에서 패배한 뒤 "표가 조작됐다"고 의도적으로 SNS에 띄웠다. 근거도 없었다. 이를 믿은 지지자들은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벌였다. 가짜뉴스의 폐해다. 그런데 이 후보는 이를 교묘히 뭉뚱그려 의혹 제기나 비판기사까지 기성 언론이 퍼뜨리는 가짜뉴스인 양 프레임을 짜고 있다. 이 후보가 "열심히 쓰자"고 한 카톡, 텔레방 커뮤니티 댓글이야말로 걸러지지 않은 가짜뉴스의 온상지다.

이제 유권자들이 후보 진영에서 쏟아내는 가짜뉴스를 잘 분간해야 할 때가 왔다. 근거 없는 선동, 실현 가능성 없는 약속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365일 국민과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 열겠다",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소주 한잔 같이할 수 있는 대통령 되겠다", "미세먼지 없는 푸른 대한민국을 보여주겠다",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 등 허무 개그 수준의 공약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끝으로 사족. "우리가 늘 제대로 쓰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늘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 쓰는 것, 그게 우리의 일이다." 영화 '더 포스트'에 나오는 워싱턴포스트(WP)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의 대사다. 이 후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