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강수의 시선

문재인 정부의 작은 세월호들

중앙일보

입력 2021.11.2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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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인천 남동구의 빌라에서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다가 이웃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구속된 A씨(40대)가 24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인천 남동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인천 남동구의 빌라에서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다가 이웃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구속된 A씨(40대)가 24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인천 남동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 15일 인천 남동구의 빌라 흉기 난동 현장에서 '공권력이 달아났다'는 소식은 안타까움의 감정을 훌쩍 뛰어넘는다.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 경찰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서글프다. 권력기관 권한 분산을 내세운 조국(전 법무장관)발 검찰 개혁으로 덩치가 거대해지면서 움직임이 둔해진다 싶더니 이번엔 아예 배가 거꾸로 갔다. 층간 소음 갈등에서 빚어진 갑작스러운 유혈 사태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머지 경찰이 빌라 3층 범죄 현장을 벗어나 1층으로 내려가는 황망 사건이라니. 아무리 입직 11개월 경력의 시보(試補) 순경이라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더 섬뜩한 건 해명이라고 내놓은 변명이다. "(경찰)학교에서 배운대로 생명이 직결된 문제라 119 구조 요청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물론 생명이 위태로운 피해자의 구조를 요청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해자를 신속히 제압해 추가 공격을 막는 게 우선이다. 경찰이라면 평상시 반복된 훈련을 통해 응당 그런 능력을 갖췄어야 한다. 설마 경찰학교에서 유혈이 낭자한 피해자를 놔두고 안전지대로 슬그머니 대피해 '아생연후에 살타하라(※바둑용어로 자신이 먼저 안정된 후에 상대방을 공격하라는 뜻)'고 가르쳤을까? 나는 경찰이 현장을 떠난 그 순간, 공권력(公權力)이 공권력(空權力)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종복으로서의 직업 정신, 희생정신, 사명감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것이다. 만약 피해 여성이 목숨까지 위태롭게 됐다면 순경은 미필적 고의의 범죄 혐의로 조사받았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한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이번 일은 훈련·교육 시스템이 고장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해당 순경의 동기생 상당수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임용된 탓에 테이저건 사격 훈련 등 현장 대응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문제도 있어요. 코로나19 방역 위반이든, 불법 집회든 민주노총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경찰 말입니다. 권력에 알아서 기는 조직의 습관은 고치기 어렵거든요. 원래 경찰 영화는 장르가 거의 느와르인데 현장 이탈 사건으로 졸지에 씁쓸한 블랙 코미디가 되고 만 거죠. "
 공권력(空權力) 사태는 나흘 뒤 또 벌어졌다. 데이트 폭력 문제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전 남친에게 참변을 당했다. 스토킹 신고를 6차례나 하며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 중 누군가가 진정성과 열의, 의지를 갖고 구조 신호에 응답했다면 그 여성이 두려움에 떨다가 숨지는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경찰의 부실 대응을 질타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 훈련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국 경찰 지휘관 회의를 열고 "'현장 대응력 강화 TF'를 구성하고 '장비 사용 매뉴얼' 개선 등 종합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정부 때부터 수없이 봐온 장면의 리플레이다.
 대형 인명 사고나 공무원의 황당한 기강 해이, 사명감 결여 사건이 터질 때마다 "TF를 만든다", "매뉴얼과 시스템을 고친다"고 호언했지만 실제 나아진 건 없다. 매뉴얼과 시스템에는 조직의 의지가 담긴다. 거기에 숨결을 불어넣는 건 사람의 의지다. 인명 사고가 발생한 인천 흉기 난동 사건도 그렇다. 경찰 매뉴얼에 따르면 테이저건은 물론 총기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과잉 대응 논란이 두려워 사용하지 않는 게 고착화됐을 뿐이다. 결국 실천이 문제다.
 "세월호 침몰 후 우린 지겹도록 시스템을 말해왔다. 재난대응 시스템, 구조 시스템, 해경 시스템…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결국 리더요 사람이라는 사실을. 시스템은 중요하다. 다만 시스템이 우리를 구조해 줄 것으로 믿는 건 오산이다."(『정의를 부탁해』)
 그렇다. 세월호 선장은 배 안에 갇힌 단원고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안내방송하고는 제일 먼저 해경 구조 보트에서 걸어 나왔다. 지금은 다른가. "경찰이니까 목숨 바친다? 솔직히 적당히 살려고 공무원 택한 거 아니냐"는 반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침몰한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7년이 지났지만 공권력의 세계에선 한발자국도 진전한 게 없다. 문재인 정부에도 세월호는 존재한다. 거대한 세월호에 비해 작은 세월호들이 삶의 현장 곳곳에 위태롭게 섬처럼 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많은 구조신호를 받고 흘리고를 반복해야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제때 응답하는 시간이 올지 답답하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세월호 참사 후 7년이 지났건만
생활 속 위험 구조 신호들 외면
굼뜬 공권력, 희생·직업정신 실종
언제 '골든타임 구조' 만들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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