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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언론의 자유 침해한 대검 대변인 휴대전화 포렌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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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종민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김종민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대검 감찰부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대검 대변인에게서 영장도 없이 임의 제출 형식으로 업무용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포렌식 분석을 한 사건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임 권순정·이창수 대변인에 대한 사실 통보와 당사자의 참관도 없이 포렌식을 진행해 위법성 논란이 제기됐다.

업무상 수많은 출입기자와 접촉하는 대변인의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 내역을 낱낱이 들여다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감찰 대상자의 휴대전화도 아니었고 포렌식을 통해 확보할 대상과 범위도 특정되지 않은 사실상의 ‘백지 압수수색’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직무감찰도 적법 절차 준수해야
정치편향 논란 총장 책임 무거워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 보도와 관련된 직무 감찰 명목의 휴대전화 임의 제출이 일상화한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최소 15차례 이상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의한 공직자 휴대전화 감찰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임의 제출 형식이지만 사실상 강압에 의한 압수라는 것이 문제다. 2018년 12월 국회에 출석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당사자의 동의 하에 이뤄지고 있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공무원 휴대전화 압수와 포렌식은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권력기관에 몸담은 개인의 자의적인 입장일 뿐이다.

직무감찰은 행정조사다. 행정 조사는 ‘비권력적 행정행위’로서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허용된다. 행정조사 기본법 제4조는 필요 최소한 범위에서 행정조사를 하고 다른 목적을 위해 조사권을 남용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감사원의 직무감찰 규칙도 적법 절차를 준수해 관련 자료를 필요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제출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동의한다는 이유로 불법을 조각(阻却)할 수 없고, 헌법이 보장하는 영장주의를 회피하는 어떠한 편법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

지난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준강제추행 피해자가 현장에서 확보해 수사기관에 임의 제출한 피고인의 휴대전화 두 대 중 피해자와 관련 없는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사 범행 사진은 ‘범위를 초과한 위법한 압수수색의 결과물’이라 위법이라는 의미 있는 판결을 했다.

휴대전화에는 사생활의 비밀 등과 관련해 개인의 거의 모든 것이 저장돼 있기 때문에 제한 없이 압수수색을 허용할 경우 피고인의 기본권이 현저히 침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2014년 미국 연방대법원도 ‘라일리(Riley) 사건’에서 긴급한 상황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행범 체포 시 영장 없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정보를 수색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대검 감찰부 사태의 심각성은 언론 자유를 본질에서 훼손했다는 점에 있다. 기자들과 상시로 소통하는 대변인의 휴대전화 내역이 권력기관의 손에 넘어가면 누구와 언제 무슨 통화를 하는지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 진실은 우리 민주주의의 주춧돌이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인간은 이성과 진실의 지배를 받을 것이고, 진실에 모든 길을 열어 놓는 가장 효과적 수단은 언론의 자유”라 역설했다. 권력이 확보한 휴대전화 문자 내역과 카톡 대화를 통해 언론 통제가 강화되면 국가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할 취재의 자유는 설 곳이 없어진다.

김오수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른 현직 대변인의 휴대전화 임의 제출은 엄밀히 말하면 ‘임의’가 아니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인사권을 가진 직속 상관의 지시에 불응할 수 있는 대변인은 없다. 공수처와의 사전 교감에 의한 ‘하명 감찰’ 논란까지 초래된 이번 사건은 언론의 자유,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이번 정권 내내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 총장의 책임이 절대 가볍지 않다. 헌법과 법치주의의 수호자이자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야 할 검찰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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