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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공장 확정한 삼성, 세 마리 토끼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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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70억 달러 규모 미국 공장 부지를 확정한 미국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170억 달러 규모 미국 공장 부지를 확정한 미국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20조원을 투자하는 삼성전자의 미국 신규 반도체 공장 부지가 마침내 확정됐다. 삼성전자는 24일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발표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현지에 반도체 공장 조성을 공식적으로 밝힌 지 6개월 만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 건설 방침을 정했지만, 최종 입지 선정을 결정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통해 현안을 매듭지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확정 부지를 발표했다. 신규 파운드리 공장은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들여 내년 1분기 착공해 2024년 완공될 예정이다. 전체 부지 규모는 약 495만8700㎡(150만평)로, 기존 오스틴 공장보다 4배가량 넓다.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시 파운드리 제2공장 건설 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시 파운드리 제2공장 건설 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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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측은 “신규 라인에는 첨단 공정이 적용될 예정”이라며 “5세대(5G) 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은 25일 예정된 삼성물산 합병 의혹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24일 귀국해 회견에 참석하지 못했다.

10박 11일의 북미 출장을 마치고 이날 오후 4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취재진의 파운드리 투자 결정 관련 질문에 “투자도 투자지만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더라”며 “나머지 얘기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이번 출장 전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회포를 풀었고 미래에 관해 얘기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출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북미 출장 중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버라이즌, 구글 최고경영자(CEO) 등을 연이어 만났다.

미국 백악관은 경제·안보 투톱이 함께 이날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투자를 확정한 것을 환영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명의의 성명에서 “미국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오늘 삼성전자가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기로 한 발표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투자 유치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일환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인구 2만명의 테일러시를 선정한 배경에 대해 “기존 오스틴 생산라인과의 시너지, 반도체 생태계와 인프라 공급 안정성, 주(州)정부와 협력, 지역사회 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테일러 공장은 기존 삼성전자 오스틴 사업장과 직선으로 25㎞ 거리다. 오스틴 사업장 인근의 소재·장비업체와 협력할 수 있고, 용수·전력 등 반도체 생산라인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도 풍부하다. 텍사스 지역 다양한 정보기술(IT) 인력과 대학에서 우수 인력을 수급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테일러시의 적극적인 구애도 한몫했다. 앞서 테일러시는 삼성전자에 10년간 재산세의 92.5%, 이후 10년간 90%, 그 후 10년간은 85%에 해당하는 보조금 제공을 약속했다. 업계 관계자는 “테일러시와 테일러시가 속한 윌리엄슨카운티 등에서 삼성전자가 받는 세금 감면 혜택은 1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테일러 공장 완공 땐, 애플·퀄컴 등 대형고객 끌어올 기반 마련”

23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의 투자 사실을 발표하는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운데)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사진 삼성전자]

23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의 투자 사실을 발표하는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운데)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사진 삼성전자]

그렉 애벗 주지사는 이날 주도(州都)인 오스틴에 있는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을 “역사적 발표”라고 부르며 “이번 투자로 일자리 2000개가 새로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약 3분 40초간의 발언에서 네 번 삼성과 김 부회장을 향해 “땡큐”를 외쳤다. 현지 매체인 테일러 프레스는 브랜트 라이델 테일러시장의 말은 인용해 “삼성의 이번 투자 결정은 1870년대 철도가 깔린 이래 지역 경제에 가장 중요하고 중대한 발전”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의 이번 신규 파운드리 부지 확정은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차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미국과 반도체 동맹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주역으로 미국 내 입지를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최종 부지 선정 전 백악관 핵심 참모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신규 라인 건설로 경기도 기흥·화성·평택과 미국 오스틴·테일러를 잇는 삼성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가 완성됐다”며 “고객사 수요에 보다 신속한 대응은 물론 새로운 고객사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 추격전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8%, 삼성전자 14%였다. 하지만, 첨단 공정인 10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시장만 보면 약 6대 4 정도로 양강 구도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삼성이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를 완공하면 TSMC에 치우쳤던 애플·퀄컴·AMD 등 미국의 대형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며 “이러면 파운드리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에 삼성은 내년 상반기에 최신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적용한 3나노 기반의 반도체를 양산할 예정이다. GAA는 반도체 칩의 기본 소자인 트랜지스터를 더 작고 빠르게, 적은 전력만 소모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은 “삼성이 GAA 양산에 성공하면 최첨단 서버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스템온칩(SoC) 물량을 TSMC에서 충분히 빼앗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테일러 신규 공장과 최신 공정 기술 확보로 삼성 파운드리가 TSMC를 제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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