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성윤 공소장 압색'에 들끓는 검사들…"수사기록 까보자"

중앙일보

입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 수사팀 검사들에 대해 공소장 유출 혐의로 압수수색을 통보하자 검찰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이날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e-PROS)’를 통해 “부당한 표적·보복수사” “위법한 압수수색”이라며 집단적으로 공수처를 비판하고 나섰다.

수원지검 형사3부는 앞서 5월 12일 이 고검장을 지난해 6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긴급출국금지(출금) 의혹을 수사하려던 안양지청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수사를 방해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로 불구속기소했다. 이 고검장의 공소사실은 기소 이튿날인 13일 검찰 안팎에 사진 파일로 공유돼 언론에 보도됐다. 이후 친여(親與) 성향의 시민단체가 성명불상의 검사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고, 공수처는 약 일주일간 검토 끝에 지난 5월 이 사건을 정식 입건하고 수사3부(부장 최석규)에 배당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출국금지 의혹 수사를 무마하려던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출국금지 의혹 수사를 무마하려던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6개월간 잠잠하던 공수처는 전날 수원지검 수사팀에 “오는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 서버가 위치한 대검 정보통신과와 수원지검에서 진행할 압수수색에 참여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수사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현재 이 고검장 등의 수사무마 사건 재판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팀 검사들만을 대상으로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또 수사팀이 지난 4월 공수처가 김진욱 처장, 여운국 차장의 이성윤 고검장 ‘황제 조사’ 논란을 해명하면서 허위 보도자료를 냈다는 의혹을 수사한 데 대한 보복 수사로도 의심된다고도 주장했다.

수사팀은 “법무부 장관 지시로 대검에서 진상조사를 한 결과 수사팀은 (공소장 유출 사건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고 있고 감찰 조사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엔 수사팀에 공감하는 검사들의 댓글이 적잖게 달렸다. 한 검사는 “수사팀이 작성한 공소장을 굳이 검색해서 확인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표적 수사를 벌이는 무도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한 부장검사는 “스스로 존립 근거를 부정하고 있는 기관”이라고 비판했고, 또 다른 검찰 간부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니까”라고 적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 도중 법무부의 직무대리 불승인(파견해제)으로 소속청으로 복귀했던 임세진 부산지검 공판1부장(전 평택지청 형사2부장)은 이날 별도의 글을 통해 “저와 김○○ 검사가 지난 3월 소속청으로 복귀한 건 각종 언론에서 보도돼 포털 검색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만약 이 고검장 기소일에 저와 김○○ 검사가 수원지검 수사팀에 속해 있다는 내용의 수사기록으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았다면 이는 법원을 기망하여 받은 것으로 위법한 압수수색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허위의 수사기록으로 법원을 기망하여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임 부장검사는 이어 “앞으로 권력자들이 싫어하는 사건이나 공수처 관계자들에 대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에 대해 피의사실공표나 공무상비밀누설이라는 특정 시민단체의 고발장만으로 압수수색이 계속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압수수색에 참여하는 한편 공수처에 관련 수사기록 열람·등사도 신청할 계획”이라고 적었다.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수원지검 인권보호관(공보관)이던 강수산나 인천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강 부장검사는 이날 ‘감시사회에서 생존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코로나19 장기화로 회의와 대변 접촉을 줄이고 메신저와 쪽지로 의사소통하는데, 언제든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건 향후 메신저를 이용한 자유로운 소통을 상당히 제약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썼다.

강 부장검사는 그러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수사와 공판을 힘겹게 이어가는 검사들에게 이렇게까지 심리적 압박을 가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특정 사건 수사와 재판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뿐 아니라 감찰·수사로 이어지는 괴롭힘을 당한다면 향후 사명감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검사들이 얼마나 남을 수 있을까요”라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