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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 확 줄이고 '학점제 강행...교육계 "대못 박기 멈춰라"

중앙일보

입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4일 오전 세종시 해밀초등학교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4일 오전 세종시 해밀초등학교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주요 과목 수업을 대폭 줄이고,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을 확정한 교육과정 개편 시안을 두고 교육계에서 우려가 잇따른다. 교육 체계는 바꾸면서 입시 개편은 다음 정부로 미뤄 '떠넘기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24일 교육부는 세종시 해밀초등학교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브리핑을 통해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계획을 밝혔다.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2025년부터 고교에서는 학사운영 기준이 ‘단위’에서 ‘학점’으로 바뀌고, 총 수업시간은 2560시간으로 지금보다 330시간 준다.

공통과목인 국어·수학·영어·사회는 각각 10단위에서 8학점으로 이수 기준을 크게 줄였다. 고교 3년 동안 국·영·수 수업 시간은 총 105시간 준다. 대신 민주시민·노동·환경 등 다양한 가치를 반영한 선택과목을 수강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학생 선택권을 늘린다는 취지다.

"고교학점제 준비 안 돼...대못 박기 멈춰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들이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고교학점제 도입 중단과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 전면 개정 등을 교육 공약으로 반영해달라고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들이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고교학점제 도입 중단과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 전면 개정 등을 교육 공약으로 반영해달라고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원단체들은 고교학점제 시행에 대해 비판 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교원 확충과 대입 개편 등 전제 조건이 준비되지 않아 현장에서는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며 "준비도, 합의도 실종된 교육과정 대못 박기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해 무리하게 필수이수학점(공통과목)을 줄이고, 자율이수학점을 늘린 점을 비판했다. 감축 논란 끝에 현행 6학점을 유지하기로 한 한국사를 언급하며 "사회·과학도 필수학점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8월 한국교총이 전국 고교 교사 22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3%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에 반대했다. 교원 확충과 학사운영 개편 등 학교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미 고교학점제를 시범 운영하는 연구학교 교사도 64.2%가 반대했다.

교육부 "모든 과목에 '민주시민교육' 편제"...교원단체 반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7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학교부터 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7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학교부터 노동교육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필수학점을 줄이는 대신 확대하기로 한 자율이수학점의 내용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한국교총은 모든 교과에 민주시민교육 내용을 편제하기로 한 점을 비판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최근 경험에 비춰보면 민주시민·노동인권교육 등은 가치중립적이기보다는 특정 가치만 부각되는 게 현실"이라며 "모든 교과에 민주시민교육 내용을 편제하게 한 것은 특정 이념‧가치의 과잉"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약 10만여명의 학생·학부모·교사 등이 참여한 '국민참여단 설문조사’에서 민주시민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1%에 그쳤다. 인성교육‧인문학적 소양‧진로직업교육 등에 다른 교육 영역보다 낮은 지지를 받았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고교에 정보 교과를 신설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정보 관련 교과 이수 시간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실과 혹은 기술·가정 교사가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 등을 맡는 점을 두고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교사 대상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제대로 된 수업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대입 개편은 다음 정부로 미뤄..."혼란 생길 것"

2022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8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전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8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전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교육부는 교육과정 개편 방향을 밝히면서 구체적인 대입 제도 개편은 다음 정부로 미뤘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체제가 그대로 지속하지는 않는다"며 "(대입 개편은) 정시·수시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로 해결될 수 있지 않다"고 말했다.

큰 틀의 변화는 예고했지만, 구체적 개편안은 2024년에 발표한다. 유 부총리는 "합의 필요한 정책은 국가교육위를 통해야 하는데, 설립이 좀 늦어지고 대입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대입 개편안 발표를 미룬 이유를 설명했다.

교육계에서는 2024년까지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서울의 한 진학 담당 교사는 "공통과목 중심의 현행 수능을 그대로 두면 학생들이 입시 과목만 선택하게 되고, 고교학점제는 의미가 없어진다"며 "가장 중요한 입시 정책을 다음 정부로 미룬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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