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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세대 걸쳐 번식력 급감" 살충제에 벌벌 떠는 벌, 인간도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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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해바라기에 앉은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벌이 해바라기에 앉은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2%. 해마다 전 세계에서 기후 변화, 살충제 사용 등으로 사라진다고 알려진 곤충 개체 수다. 이처럼 생존을 위협받는 곤충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벌'이다. 벌이 살충제에 노출되면 여러 세대에 걸쳐 번식력 급감 등 큰 피해가 누적된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이 줄어들면 농업·식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UC 데이비스 연구팀은 과학 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이러한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독성 강한 살충제 '이미다클로프리드'에 벌이 노출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자손 생산에서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는 게 핵심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간 살충제가 생물 환경에 해로운 걸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은 많았지만, 장기간에 걸쳐 곤충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논문이 살충제가 벌 생태에 미치는 장기적 여파를 일부나마 보여주는 것이다.

연구팀은 약 2년에 걸쳐 벌이 이미다클로프리드 살충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추적 관찰했다. 실험 대상은 홀로 생활하는 야생 꽃가루 매개 곤충인 '과수원뿔가위벌'로 택했다. 이미다클로프리드는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신경 자극성 살충제 성분 중 하나다. 벌에 큰 해를 줄 수 있어 유럽연합(EU)에선 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미국에선 해당 성분이 함유된 제품 400개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

태국에서 기체 형태의 살충제를 뿌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태국에서 기체 형태의 살충제를 뿌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분석 결과 유충일 때 이미다클로프리드에 노출된 벌은 화학물질 접촉 경험이 전혀 없는 벌에 비해 자손 생산이 20% 적었다. 성체일 때도 살충제에 한 번만 노출되면 대조군과 비교해 30%가량 자손 수가 줄어들었다. 특히 살충제 영향은 점차 누적해서 나타났다. 유충, 성체일 때 각각 이미다클로프리드에 노출된 벌은 자손 감소 비율이 44%까지 올랐다.

살충제는 단순히 번식력뿐 아니라 암수 성비와 벌이 벌집을 짓는 비율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변수까지 고려하면 2년간 살충제에 노출된 벌은 일반적인 벌과 비교했을 때 개체 수 증가율이 71%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의 평균 수명은 일벌(꿀벌) 기준으로 2~3개월 정도다. 단순히 한 세대로 피해가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듭해서 번식력 감소 등의 부작용이 이어지는 셈이다.

연구에 참여한 UC 데이비스의 클라라 스툴리그로스(생태학 전공)는 "이미다클로프리드는 모든 식물 조직에 존재하는 농약 성분으로 벌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번 연구는 내년에 살충제 사용이 금지되더라도 올해 노출된 부작용이 그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 성장해 내년 농작물을 수분시킬 준비를 하는 애벌레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스페인의 한 양봉업자가 벌집에 있는 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스페인의 한 양봉업자가 벌집에 있는 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EPA=연합뉴스

"만약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고작 4년 더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내놓은 유명한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경고처럼 벌이 사라지는 현상은 이미 현실이 됐다.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의 분석에 따르면 2006∼2015년 확인된 벌의 종은 1990년대보다 25%가량 감소했다. 미국, 유럽 등에선 꾸준히 벌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살충제, 기후 위기 등으로 벌이 점차 줄어들면 인간도 직격탄을 맞게 된다. 2015년 발표된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꿀벌 같은 꽃가루 매개 곤충들이 완전히 사라지면 전 세계 과일 생산량의 22.9%가 급감할 것으로 추정된다. 채소 생산량의 16.3%도 감소할 것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한 해 142만명의 사람들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보고서를 통해 꿀벌이 줄면 생태계와 식량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살충제에 따른 벌 번식력 감소가 단순히 곤충 세계의 일로 끝나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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