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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내손 놓고 처음 떠나는 날…꼭 손에 쥐고 읽어야할 책 [오밥뉴스]

중앙일보

입력 2021.11.24 06:00

업데이트 2022.03.02 15:28

ㆍ 한 줄 평 : “너도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있지?” 하고 묻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ㆍ 함께 읽어보면 좋을 버나드 와버의 다른 책
『아빠, 나한테 물어봐』 만추의 계절, 아빠가 아이와 읽으면 더할 나위 없는 그림책.
『미안해, 친구야』 친구한테 샘 날 수도 있어.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야. 여전히 친구를 사랑하니까!
『용기』 절판돼 도서관에서조차 구하기 힘들지만, 영문판으로라도 꼭 읽어야 할 명작.

ㆍ 추천 연령 : 『아빠, 나한테 물어봐』 는 만 3세 정도면 아주 즐거워 해요. 나머지 책은 주인공 나잇대인 7~9세 정도가 좋아할 것 같아요.
(※그림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 연령은 서사의 구조나 주제 등을 고려하여 제안하는 참고 사항일 뿐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지난해 가을, 아이가 처음으로 옆 동네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태우고 미끄러지듯 동네를 벗어나는 버스 꽁무니를 보면서 괜히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저렇게 커서 혼자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가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양육자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으시죠?

어른이 된다는 건 더 넓은 세계로 나간다는 의미일 겁니다. 집에만 있던 아기가 자라 집 앞 어린이집에 다니더니 10분 거리 학교에도 가고, 어느새 버스를 타고 옆 동네 학원까지 갑니다. 지하철을 타고 도시 끝에 있는 학교에 가고, 옆 도시에 있는 회사에 가는 날도 곧 올 것만 같습니다. 여행을 가겠다며 태평양을 건너는 날도 오겠죠. 『처음 친구 집에서 자는 날』은 부모와 집을 떠나 어른이 되는 첫 경험,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버나드 와버의 『처음 친구 집에서 자는 날』은 아이라가 단짝 친구 레지네 집에 초대 받아 자러 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버나드 와버의 『처음 친구 집에서 자는 날』은 아이라가 단짝 친구 레지네 집에 초대 받아 자러 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아이라는 단짝 친구 레지에게 초대를 받습니다. 자기네 집에 자러 오라고요! 아이라는 정말 신이 났죠. 그런데 한가지 고민이 생깁니다. 잘 때 늘 안고 자는 곰 인형 빠빠가 문젭니다. 가져가자니 레지가 놀릴 것 같고, 놓고 가자니 혼자 잘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라는 용기를 내 레지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있잖아, 너 곰 인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한데 레지는 곰 인형 얘기는 못 들은 척 딴소리만 합니다. 결국 아이라는 빠빠를 두고 가기로 하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빠빠를 보면 놀릴 줄 알았던 레지가 잠들기 전 슬그머니 서랍으로 가더니 곰 인형을 꺼내는 겁니다. 곰 인형 이름은 빠빠만큼 유치한 푸푸고요. 아이라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갑니다(네, 아이라는 레지 바로 옆집에 살아요!). 그리곤 빠빠를 들고 당당하게 돌아오죠.

새로운 세계, 새로운 경험은 설렙니다. 하지만 동시에 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죠. 긴장도 되고요. 뭔가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왠지 나만 이렇게 벌벌 떨고 있을 것만 같아 초라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라가 그랬던 것처럼요. 하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나답게 하면 충분합니다. 곰 인형 이름이 좀 유치하면 어떤가요. 레지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붙여주었는 걸요. 게다 서랍 속에 숨겨두기까지 했죠.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유치하고 나약한 존재예요. 그러니 좀 긴장해도, 좀 초조해도 괜찮습니다.

버나드 와버의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섬세한 그의 성품이 느껴집니다. 아이라의 감정 변화를 이렇게까지 조밀하게 관찰하고 그려낼 수 있다니요.

『단짝 친구가 이사 가는 날』에선 레지가 차로 1시간 거리로 이사를 하는데요, 레지는 서운하기 짝이 없는 아이라 앞에서 만날 때마다 이사 가게 될 동네에 대해 엄청난 자랑을 늘어놓죠. 그런 레지를 보며 속이 상한 아이라는 레지의 단점을 떠올리며 자신이 레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단짝 친구가 이사 가는 날』은 단짝 친구 아이라와 레지가 헤어지는 과정을 담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별이 끝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다.

『단짝 친구가 이사 가는 날』은 단짝 친구 아이라와 레지가 헤어지는 과정을 담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별이 끝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다.

“레지는 점심을 먹을 때마다 입을 쩍 벌리고 웃어. 입맛 떨어지게 입속 음식을 다 보여주면서 말이야. 레지가 그럴 때면 정말 싫어. 또 하나 말해 줄까?”

마침내 아이라는 레지가 빨리 이사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데 정작 이사하는 날 레지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렇게 자랑을 하더니, 사실 아이라와 헤어진다는 사실을 회피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든 법입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사 간 레지가 아이라를 초대했고, 덕분에 아이라는 새로운 동네에 가게 되거든요. 이별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별은 늘 새로운 만남과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삶이 그렇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되는 법이니까요.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가 자신의 SNS에 “글이 각별히 뛰어난 그림책 장인”이라며 버나드 와버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대단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상황이나 단짝 친구가 이사하는 상황, 정말 친한 친구가 내가 맡고 싶은 신데렐라 역할을 나보다 더 잘해 그 배역을 맡게 되는 상황(『미안해, 친구야』)처럼 어떤 상황을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해내며 공감을 끌어내거든요. 그래서인지 지난해 가을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동네를 벗어났던 저희집 어린이는 버나드 와버의 그림책을 보며 이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나도 이런 적 있는데.”

버나드 와버 덕에 자신의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 모양입니다. 그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죠. 곧 아이가 또 다른 버스를 타고 더 멀리 갈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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