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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무인차단기 알아서 작동? 경찰·구급차 황당 ‘번호판 교체’

중앙일보

입력

순찰차 번호판을 앞 세자리가 '998'인 긴급자동차 번호판으로 교체하고 있다.'[연합뉴스]

순찰차 번호판을 앞 세자리가 '998'인 긴급자동차 번호판으로 교체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찰차와 119구급차 등 긴급자동차가 유사시 아파트 단지나 영화관·지하상가·대형점포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전용번호판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 단지나 시설에 설치된 무인차단기가 전용번호판을 인식해 통과시키도록 바꾸는 작업은 예산지원도 없고, 의무도 아닌 탓에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행정안전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송석준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긴급자동차 전용번호판 현황'에 따르면 교체대상은 경찰청·해양경찰청·소방청 순찰차와 기동승합차, 119구급차로 모두 8582대다. 경찰청 6532대, 소방청 1770대, 해양경찰청 280대 등이다.

 앞서 행안부와 국토교통부는 범죄나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긴급자동차가 무인차단기에 가로막혀 제때 통과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올해 초 앞 세 자리가 998과 999로 적힌 긴급자동차 전용번호판을 도입했다.

 998과 999는 긴급자동차에만 부여되는 고유번호이기 때문에 식별이 용이할 거란 설명이다. 행안부는 998 번호를 먼저 사용하고 부족하면 999 번호도 쓸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해당 차량은 올해 말까지 번호판 앞 세 자리가 998로 적힌 번호판으로 전부 교체하게 된다.

긴급자동차 통과를 위해선 무인차단기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강갑생 기자]

긴급자동차 통과를 위해선 무인차단기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강갑생 기자]

 문제는 무인차단기가 998이나 999 번호가 적힌 차량은 통과시키도록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 의무가 아닌 해당 단지나 시설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무인차단기 프로그램 정비가 필요하다는 안내문만 보낼 뿐이다.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구청에서 긴급자동차 번호판 관련 알림을 보내왔는데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비용에 대한 예산지원도 없다. 해당 아파트나 다중이용시설에서 자체부담으로 무인차단기 프로그램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그레이드 진척이 더딘 데다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된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의 한 경찰관은 "긴급자동차 번호판만 달면 다 통과될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현장에선 여전히 무인차단기에 가로막힌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해당 단지나 시설이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도록 홍보·계도한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행안부의 장경미 디지털정부정책과장은 "업데이트 현황은 현실적으로 파악이 어렵다"며 "홍보와 계도를 강화할 계획으로 전체적인 업그레이드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119구급차의 번호판을 긴급자동차 전용번호판으로 교체하고 있다. [연합뉴스]

119구급차의 번호판을 긴급자동차 전용번호판으로 교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선에서는 관할 아파트 단지나 다중이용시설에서 긴급자동차 번호판을 무인차단기에 의무적으로 등록토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4월 홍기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주택에 긴급자동차 출동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단지 내 무인차단기에 해당 차량번호 등록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선 관할 아파트 단지에 경찰차나 소방차의 번호판을 미리 등록해놓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현행법상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강제할 수는 없다.

 송석준 의원은 "긴급자동차가 얼마나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느냐는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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