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양성희의 시시각각

그들에게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2021.11.24 00:45

업데이트 2021.11.2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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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성소수자 자녀를 품어내는 평범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사진 엣나인필름]

성소수자 자녀를 품어내는 평범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사진 엣나인필름]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갱년기를 지나고 코로나로 인한 길고 긴 ‘확찐자’의 삶을 지나니 몸이 달라졌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섰다가 깜짝 놀랐다. 선의 날카로움이라곤 찾을 길 없이 무너진 몸. 세월의 흔적이라 자위하지만, 변해 버린 몸에 일순 짜증이 치밀었다.
자기 몸에 대한 바디 이미지만큼 정체성이나 자존감 형성에 중요한 게 없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표준이 강하게 적용되는 여성들의 억압이 더 크지만 요즘은 남성들도 예외가 없다. 사회적 표준에 맞고, 잘 관리된, 젊고 아름다운 몸이 육체 자본이며 성공의 열쇠가 되는 시대다. 누구나 크고 작은 외모 강박,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런 건 어떤가. 여자로 태어났지만 불쑥 솟은 제 가슴이 너무 싫다. 내 몸이 아니라고 느낀다. 벗은 가슴을 보는 게 고통스러워 샤워할 땐 욕실 불을 끈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 충동이 일다가도 ‘이대로 여자로 죽긴 싫다’는 생각에 죽을 수조차 없다면. 그리고 자신을 “어디서든 돌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라 느낀다면.
지난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 나오는 20대 트랜스젠더 한결씨 얘기다. ‘너에게 가는 길’은 한결씨 같은 성 소수자 자녀를 둔 평범한 부모들의 이야기다. 상상도 못 했던 자식의 커밍아웃에 온 세상이 무너졌던 어머니들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소수자의 길에 동행한다. 50대 소방공무원인 한결씨 어머니는 “엄마가 밖으로 나도니 자식이 트랜스젠더가 된 거 아니냐”는 상급자의 핀잔을 듣지만, 휴가 신청 사유에 '자녀 성별 정정으로 법원 출석'이라 쓴다. 모녀, 아니 모자가 함께한 성별 정정의 여정은 길었다. 18종의 서류를 내야 하는 성별 정정 신청에는 성인이어도 반드시 부모 양측의 동의서가 필요했다. 한결씨 어머니도 오래전 이혼한 남편을 찾아가야 했다. 이 조항은 2019년 폐지됐지만 아직도 요구하는 재판부가 있다.
게이 혜준씨 어머니는 7년간 커밍아웃을 고민했다는 아들에게 “힘든 인생 살게 낳아서 미안해”라고 간신히 입을 뗐다. 꼬박 이틀 울고 훌훌 털었다고 생각했으나 진짜로 받아들이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영화의 엔딩은 20여 명의 부모가 “나는 트랜스젠더ㆍ동성애자 아무개의 엄마ㆍ아빠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성 소수자가 행복해질 권리는 당신이 행복해질 권리와 같다”는 마지막 대사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도 한참 눈물이 흘렀다.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가 드러나지 않고(비가시화), 보이지 않는 만큼 잘 알지도 못하니 나와 다름, 익숙하지 않음, 싫고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혐오와 차별에 이르게 되는 게 아닐까. 학창 시절 친구가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장애인 오빠의 존재를 고백한 적이 있다. 친구 오빠는 거의 집에만 있었고,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이제는 셀럽들이 장애인 자녀를 매체에 공개하는 게 쿨하게 여겨질 정도로 세상이 변했지만 성 소수자들의 비가시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영화 후반부에는 장애ㆍ인종ㆍ종교ㆍ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짧게 담겼다. 14년 전 처음 발의된 후 수차례 발의ㆍ폐기를 반복해온 차별금지법안은 이번 국회에서도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됐다. 여기서도 성 소수자가 가장 뜨거운 감자다. ‘그들에게 가는 길’이 아직도 멀다는 얘기다.
영화 속 부모들은 자식을 감싸 안지만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한결씨 어머니는 “가족들이 지지해 준다면 다복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도 다행이라고 말한다. (자녀들이) 더 단단해질 테니까”라고 말했다. 뭉클했다.
예전에 이 자리에 동성애에 대한 칼럼을 썼다가 “당신 자식이 동성애자가 돼도 이런 소리 할 거냐"는 항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그분께 이 영화를 권한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권리는
당신이 행복할 권리와 똑같아요"
성소수자 자녀 둔 부모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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