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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1년반 끈 윤건영 수사, 검사 5명 바뀐 끝에 약식기소로 봉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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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여권 실세 2명 솜방망이 수사 논란

국회에서 발언중인 윤건영 의원. 문재인 대통령의 19대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그는 문 대통령이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하는 몇 안되는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임현동 기자

국회에서 발언중인 윤건영 의원. 문재인 대통령의 19대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그는 문 대통령이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하는 몇 안되는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임현동 기자

차명 계좌 운영과 허위 인턴 급여 수령 혐의로 고발된 여권 실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해 서울 남부지검이 지난 17일 사기 혐의로 각각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범죄에 연루된 관계자가 물증을 제출하며 자수했음에도 기소까지 근 1년 반이 걸린 데다 공소시효(10년) 만료 임박 시점에 재판이 생략되는 약식기소로 수사를 종결했다. “여권 실세 봐주기”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남부지검은 차명 계좌 (횡령) 혐의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청와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이 사건은 친문 조직인 한국미래발전연구원(미래연)에서 회계 직원으로 일했던 김하니(35)씨의 지난해 5월 양심선언으로 점화됐다. 김씨는 ▶2011년 미래연 실장이던 윤 의원의 지시로 본인 명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미래연 자금 수천만원을 운용했고 ▶윤 의원의 요청으로 백원우(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당시 국회의원실에 인턴으로 등록한 뒤 여전히 미래연에서 일하면서 급여를 5개월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기·횡령 혐의 고발된 대통령측근
늑장 수사 검찰, 공소만료 직전 기소
회계 직원 자수, 물증 제출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횡령 불기소 논란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지난해 6월 김씨 주장을 바탕으로 윤 의원과 백 전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석달 넘게 참고인 조사조차 하지 않으며 수사를 미뤘다. 그러자 김하니씨가 “나도 공범”이라며 미래연 근무 당시 문건이 포함된 16장의 진술서를 들고 지난해 9월 중순 남부지검에 자수했다. 이 사실이 보도된 뒤 10여일 만인 지난해 9월 25일 남부지검은 법세련 이종배 대표를 불러 조사했다. 남부지검은 김하니 씨도 2차례 소환 조사했으나 그 뒤 1년 가까이 연락하지 않다가 지난 3일 전화로 추가 조사를 한 게 전부다. 윤건영 의원에 대해선 고발된 지 근 1년 만인 지난 5월 소환 아닌 서면 조사 한 번으로 그쳤다.

이렇게 수사가 소걸음을 하면서 담당 검사가 5명이나 바뀐 것도 이례적이다. 김씨는 “사건은 당초 중앙지검 형사4부(신형식 부장)에 배당됐으나 곧 남부지검 형사4부로 이관돼 이세진 부부장 → 권나원 부부장 → 신원 미상 검사 → 형사6부 조상규 검사로 이관을 거듭했다”고 전했다. 그는 “검찰이 감감무소식이라 나를 조사했던 조사관에게 지난해 말 전화를 했더니 ‘검사실에 사건을 송치했다’고 하더라. 담당 검사실에 연락하니 ‘수사 진행 중이라 말 못한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지난 8월 11일 돌연 조상규 검사가 전화를 걸어와 ‘사건이 내게 새로 배당됐으니 증거물을 다시 보내주고, 다음 주쯤 와 달라’고 해 즉시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고, 교통편까지 예약했는데 그 직후 ‘청사에 코로나가 발생했다’며 만남을 연기하더니 석 달만인 지난 3일 전화로 몇 가지 질문한 게 전부”라고 밝혔다.

김씨는 검찰의 기소에 대해 “내가 자수서와 함께 제출한 (증거) 자료들이 있는데도 횡령 혐의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문제로 삼지 않았다”며 “허위 인턴 건도 윤 의원과 백 전 의원이 국고 사기를 친 것인데, 벌금 총액은 600만원에 불과하다. 검찰이 입장을 밝혀야 할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자수 당시 ‘스모킹건’ 급 증거물을 상당수 제출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윤 의원이 2011년 미래연 실장 시절 작성한 회의자료라고 한다. 미래연이 추진한 용역 현황과 입금될 돈 액수가 명기돼있다고 한다. 김씨는 “용역 비용은 미래연 계좌에서 지출됐지만 대가는 차명 계좌에 들어왔다. 횡령 혐의가 확실하게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는 자신과 통화한  미래연 간부가 “윤건영 실장이 인건비를 받지 않기로 했는데 실은 차명계좌를 통해 받아간게 아닐까”라고 말한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다. 김씨에 따르면 윤 의원은 차명 통장을 ‘무자료 통장’이라 부르면서 “이메일로도 파일을 주고받지 말라”고 철통 보안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통장 파일명을 남들이 알아볼 수 없게 ‘무자’로 했을 정도라고 했다. 또 “허위 인턴 등록도 윤 의원이 내게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전언이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뉴시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뉴시스]

“2011년 7월초, 미래연 직원들이 전부 출장 나가 윤 의원과 나만 사무실에 있던 날, 윤 의원이 나를 부르더니 ‘백원우 의원실에서 고마운 제안을 해준 듯하다. 일은 미래연에서 하고, 봉급만 국회에서 받는다’고 말한 뒤 내 얼굴을 쳐다보며 답변을 기다리더라. 망설이다가 5분만에 응낙했다. 그러자 윤 의원은 ‘인턴 약정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면서 봉급 계좌란에는 내 차명 계좌를 적으라고 했다. 이후 매달 인턴 월급 105만원이 차명 계좌로 들어왔다.” 김씨는 “윤 의원의 지시로 내가 작성했던 인턴 약정서는 검찰이 직접 확보해 내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약정서에 쓰인 서명이 당신 쓴 것 맞냐’고 묻길래 맞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여당 인사들의 비리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조용한 게 씁쓸하다. 전·현직 국회의원의 비리 의혹이니 국민이 알권리가 있다”며 “나 역시 이 사건에서 완전히 결백한 건 아닌데 (검찰이) 언급이 없어 의아하다”고 덧붙였다. .

윤 의원을 고발한 법세련 이종배 대표도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그는 “내가 고발한 시점이 지난해 6월인데 검찰은 수사를 석 달째 미루다 김씨가 자수하고, 국정 감사가 임박하자 한차례 나를 불러 조사했다. 늦장·축소 수사의 전형”이라 했다. 그는 “1시간쯤 걸린 조사에서 검찰은 형식적인 질문들로 일관해 수사 의지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국정감사장에서 ‘왜 수사 안 하나’는 추궁을 들을까 봐 시늉 수준의 조사를 한 듯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국회의원이 세금 갖고 사기를 저질렀다면 엄벌해야 하는데 약식기소에 그쳤으니, 의원들이 마음 놓고 사기를 저지를 길을 검찰이 열어준 셈”이라며 “남부지검장이 ‘조국 불기소’를 주장하는 등 친여 성향을 보여온 심재철 검사인 점도 솜방망이 기소의 배경 아닌지 의심된다. 차명계좌 무혐의 처분은 항고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윤건영 의원 측은 “횡령 무혐의 처분은 당연한 결과이고, 인턴 채용 건 약식기소는 법원의 판단 전이라 입장 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는) 인턴 채용 건도 무죄란 입장인데, 이는 윤 의원이  백 전 의원에게 인턴 채용을 부탁한 일이 없고 채용 결정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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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건영 의원 검찰 수사' 관련 정정보도 〉

중앙일보 2021년 11월 24일 자 '1년 반 끈 윤건영 수사, 검사 5명 바뀐 끝에 약식기소로 봉합' 제하의 기사에서 "고발된 지 근 1년만인 지난 5월 소환 아닌 서면 조사 한 번으로 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윤건영 의원은 고발 이후 10개월째인 2021년 4월경 검찰의 서면조사에 응하였고 같은 해 10월경 검찰의 요구로 출석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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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의원 인사 청탁 의혹도 수사대상 아니라는 검찰

검찰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태년 의원의  ‘이스타 항공 사장 인사 청탁’ 의혹에 대해 “수사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나서 논란을 사고 있다. 이 의혹은 회삿돈 5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의원이 지난 9월 29일 재판에서 “2017년 3월 김태년 의원과 모 신문사 회장, (또 다른) 국회의원 등의 전방위 부탁을 받고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를 임명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이 사실이 중앙일보 보도로 알려지자 조수진 의원(비례·초선) 등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때 김태년 의원에 대한 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의원을 기소한 전주지검의 문성인 지검장이 “(수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취지로 답변하자, 조 의원은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문 지검장 답변이 상식에 맞느냐”고 추궁했다. 김 총장은 “당연히 범죄 혐의가 성립되는지 검토하고 있을 것이고 저도 적절한 지휘를(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조 의원은 전주지검에 김 의원을 수사했는지 질의했다. 그러자 전주지검은 “문제의 발언은 이상직 의원이 재판 중 방어권 행사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나온 단편적 주장으로서, 쟁점이 아닌 부수적 발언에 불과하고 전후 경위가 불분명한 진술로 취지나 내용이 불충분하다”며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조 의원은 “검찰이 무슨 근거로 이 의원 발언이 부수적·단편적 주장이라고 판단했는지 의문만 증폭시킨 무책임한 답변”이라며 “전주지검에 그런 결론을 내린 과정과 근거가 뭔지 추가 질의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