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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경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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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일본 작가 사사키 조의 소설 『경관의 피』는 경찰관 3대의 유장한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전후(戰後) 먹고 살기 위해 경찰관이 된 1대 안조 세이지는 주재소(駐在所, 파출소)에 상주하며 동네 경찰관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미제사건 조사 도중 의문사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 된 장남 안조 다미오는 잠입수사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다친 뒤 운명처럼 아버지가 일했던 주재소에서 근무하다가 인질범에게 납치된 어린이를 구하고 순직한다. 3대 안조 가즈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찰관이 된 뒤 할아버지의 죽음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소설 제목은 중의적 표현이다. 안조 가족을 비롯한 경찰관들이 감내해온 육체적·정신적 희생을 뜻하는 동시에 말 그대로 몸속에 흐르는 경찰관의 피를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경찰관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를 뜻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경찰관은 힘든 직업이다. 하지만 공복(公僕)으로서의 존재감이 그보다 확실한 직업도 드물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 및 모든 개인의 기본적 인권 보호, 사회공공의 질서 유지’를 경찰관의 임무로 규정한다. 이를 위해 경찰관은 필요할 경우 무기 사용까지 할 수 있다. 자유·민주 사회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소설 속 안조 세이지가 아들의 이름을 다미오(民雄)로 지으면서 “민주주의의 민, 영웅의 웅”이라고 설명한 건 상징적이다.

층간소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출동한 두 경찰관이 목전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을 막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범행 직후 현장을 이탈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까지 보였다. 이들이 소지한 무기는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가해자를 제압한 건  피해자의 가족이었다. 선배 경찰관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우리가 하는 일을 시민이 지지하는 한, 우리는 흑과 백의 경계 위에 서 있을 수 있어. 어리석은 짓을 하면 세상은 우리를 검은색 쪽으로 떠밀겠지.” “모든 것은 세상의 지지에 따른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경찰관이다.”

『경관의 피』 속 문답대로 경찰은 검은색 쪽으로 떠밀릴 위기에 처했다. 하루빨리 시민과 세상의 지지 회복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