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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7시간 반 연습한 천재 키신, 정공법 연주의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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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연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2006년 첫 내한 이후 다섯번째 한국 공연이었다. [사진 롯데콘서트홀]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연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2006년 첫 내한 이후 다섯번째 한국 공연이었다. [사진 롯데콘서트홀]

“지금도 10대 시절처럼, 전혀 잔꾀 부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22일 서울 잠실의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예프게니 키신(50)의 공연에 대해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한 말이다. 김주영은 또 “키신은 모든 마디, 모든 음 하나하나를 정공법으로 전력투구 했다”고 덧붙였다.

키신은 전형적인 천재형 피아니스트다. 러시아 태생으로 두 살부터 악보 없이 즉흥연주로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열 살에 데뷔했고, 특히 12세에 모스크바에서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2번 음반이 메가히트 하면서 세계의 스타가 됐다.

17세에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한 무대에 섰고, 19세에 뉴욕 카네기홀의 100주년 공연의 오프닝을 맡았다. 그래미상(2006)을 비롯해 숱한 상을 받았다.

2000년엔 그의 타고난 재능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예프게니 키신: 음악의 선물’이 제작됐다.

50대에 접어든 키신의 음악은 이런 화려한 이력을 비추는 대신, 부단한 노력과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2018년 이후 3년 만의 이번 내한 공연에서 그는 바흐로 시작해 쇼팽까지, 클래식 음악의 시대별로 고르게 작품을 골랐다. 바흐 토카타와 푸가, 모차르트 아다지오(K.540), 베토벤 소나타 31번, 쇼팽의 마주르카 중 7곡,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였다.

타고난 재능으로 음악을 꾸며서 만드는 부분은 없었다. 대신 정해진 속도와 박자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정공법으로 악보의 규칙을 지켜나갔다. 손끝은 10대 20대 시절처럼 단단했고, 소리는 꽉 차 있었다. 바흐는 격정적이었고 모차르트는 무뚝뚝한 편이었으며, 베토벤은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아주 느렸다. 하지만 모든 음을 정확한 타건으로 바르게 울려내면서 설득력을 갖췄다. 오랜 시간 수없이 연습한 결과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연주였다.

음악이 보여주듯 그는 여전히 학생처럼 연습한다. 일본 공연을 마치고 19일 한국에 도착해 20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3시간을 연습하고, 다시 오후 3시 30분부터 피아노 앞에 앉아 오후 8시까지 연습했다. 총 7시간 30분. 공연 관계자는 “21일에도 똑같은 시간에 연습했다”며 “공연 당일에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연습 시간을 줄였다”고 했다. 2009년 내한 공연의 기자회견에서도 키신은 한국의 인상에 대한 질문에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길밖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연습 시간이 길고, 그 외에는 잠을 자기 때문”이다.

22일 한국 청중은 특유의 열정으로 키신을 환영했다. 롯데콘서트홀의 티켓 1500여장은 예매 25분 만에 매진됐다. 키신은 앙코르로 4곡을 연주했다. 앙코르곡은 바흐의 코랄 ‘어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 모차르트 론도(K.485), 쇼팽 스케르초 2번, 왈츠 12번이었다. 길이와 난이도 면에서 만만치 않은 곡들을 30분 이상 앙코르로 이어가며 피아노와 함께 성실히 보낸 오랜 시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한국 공연을 마친 키신은 동일한 연주곡목으로 파리, 빈, 베를린, 바젤, 마드리드 등 유럽에서 내년까지 공연할 예정이다. 또 밴쿠버, 시카고, 뉴욕 등 북미에서도 독주회를 연다. 이후엔 헝가리의 명 피아니스트인 안드라스 쉬프와 모차르트, 슈만 등을 연주하는 듀오 콘서트가 계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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