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숙종 때도 전염병 땐 궁궐 출입 단속…"두창 걱정에 길쌈일도 멈췄다"

중앙일보

입력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2020년 초 대구 동산병원에 도착한 응원편지들을 모아 전시했다. 김정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2020년 초 대구 동산병원에 도착한 응원편지들을 모아 전시했다. 김정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이 특별전 ‘역병, 일상’을 24일 공개한다.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 특별전

역사적으로 역병이 돌았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조선시대 역병에 관한 기록을 남긴 ‘묵재일기’ ‘노상추 일기’ 등은 대중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역병에 관한 기록을 빼곡히 써넣었다. 김정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역병에 관한 기록을 빼곡히 써넣었다. 김정연 기자

통영 오광대 놀이에 등장하는 '손님' 탈에 찍힌 점도 두창(천연두) 자국, 1990년대 공익광고에도 '호환마마'의 무서움이 남아있을 정도로 전염병은 인간의 일상에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전시장 벽면에는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역병에 관한 기록을 활자로 빼곡히 채워넣었다.

숙종6년에도 "두창이 돌자 궁궐 출입자 단속"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20세기 초의 두창 예방 선전가. '추남 추녀들이여 벌집같은 그 얼굴은 종두를 아니한 천벌일세' 라고 썼다. 김정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20세기 초의 두창 예방 선전가. '추남 추녀들이여 벌집같은 그 얼굴은 종두를 아니한 천벌일세' 라고 썼다. 김정연 기자

조선왕조실록에는 숙종 6년인 1680년 두창이 돌자, 궁궐 출입자를 단속하고 과거시험도 창덕궁 인정전으로 옮겨 진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숙종이 두창을 앓은 적이 없어 면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종 대에는 서울의 콜레라로 러시아 통역관이 사망하기도 했고, 영친왕이 사신 접견을 미루기도 했다.

20세기 초 충청북도 위생과에서 발행한 '두창 유행 안내문'은 두창을 '손님'이라 칭하고, 예방접종과 위생을 강조했다. 이 시기 두창 예방 선전가는 두창 예방을 위한 접종을 강조하고,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벌집처럼 된다고 경고한다.

콜레라 쫓겠다며 '고양이 그림' 붙이던 미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콜레라에 걸리면 생기는 붉은 반점이 쥐에 물린듯하다고 해서 '쥐신이 들었다'고 여기기도 했던 당시 사람들은 고양이 그림을 대문에 붙여 쥐신을 쫓고자 했다. 김정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콜레라에 걸리면 생기는 붉은 반점이 쥐에 물린듯하다고 해서 '쥐신이 들었다'고 여기기도 했던 당시 사람들은 고양이 그림을 대문에 붙여 쥐신을 쫓고자 했다. 김정연 기자

전염병을 쫓는 방법도 갖가지였다. 1556년 조선 문신 이문건은 '가벼운 홍역이라 하더니 자세히 보니 두창이었다. 아이가 걱정되어 길쌈일도 멈추게 했다'며 '붉은 글씨로 역병을 쫓는 글자를 써서 문의 창에 붙였다'고 썼다.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가 1892년 쓴 '조선 기행'에는 콜레라를 막기 위해 집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는 풍습이 기록됐다. 콜레라에 걸리면 생기는 붉은 반점이 쥐에 물린 듯하다고 해서 '쥐신이 들었다'고 여겼던 당시 사람들이 쥐신을 물리친답시고 고양이 그림을 사용한 것이다.

"홍역 앓다 죽은 아이 제사 어떻게 하나" 300년 전에도 고민했다

전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은 현대와 다를 바가 없다. 1778년 '노상추 일기'에는 "두창을 앓는 아이가 어젯밤에 증세가 매우 심해져서 가래 끓는 소리가 밖까지 들렸으니 목숨을 구하지 못할까 염려되고 매우 걱정스럽다"는 아버지의 호소가 적혔다. 이 아이는 결국 사망했다. 1779년에도 '마을에 전염병의 기운이 있어서 제사를 간소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1786년 조선 문신 유만주도 홍역을 앓다 죽은 아이의 제사를 지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을 썼다.

현재의 코로나19도 기록으로 

2020년의 코로나19 기록도 전시에 담겼다. "올 게 오고야 말았다. 코로나 X끼 말이다…"라며 자가격리의 일상을 기록한 한 시민의 그림일기, 2020년 초 지역 코로나19 거점병원이었던 대구 동산병원 의료진이 받은 응원 편지 등이 현대의 기록으로 포함됐다.

결혼 소식을 전하며 미안함을 표현하는 청첩장, 종갓집 제사 후 음복을 대체한 도시락 재현품 등도 코로나19 시대의 기록으로 전시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택배상자, 마스크 등도 벽면 한켠에 놓였다.

나훈영 학예연구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민속’이고, 지금의 일상도 20년, 30년 뒤 돌아보면 기록으로 남은 ‘민속’”이라며 “과거, 현재, 미래에 늘 역병이 존재하지만 긴 시간을 보면 언제나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로 못 지낸 전통 ‘장승제’로 안녕 기원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시작에 앞서 민속박물관 입구 앞마당에 세운 장승. 왼쪽이 천하대장군, 오른쪽이 지하여장군이다. 김정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전 시작에 앞서 민속박물관 입구 앞마당에 세운 장승. 왼쪽이 천하대장군, 오른쪽이 지하여장군이다. 김정연 기자

24일 전시에 앞서 23일 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는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면 엄미2리의 전통 ‘장승제’도 진행됐다. 제관을 맡은 김주원(61)씨는 “대대로 내려온 장승제를 2년마다 마을에서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는데, 지난해 코로나19로 못 지낸 장승제를 이번에 지내게 되어 뜻깊다”며 “각종 재해나 질병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했다”고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