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총알 날아온다"…전두환 시구하던 날, 경호원으로 관중 채웠다 [전두환 1931~202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스포츠를 좋아한 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고인은 학창 시절 복싱 글러브를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복싱을 좋아했다. 축구도 꽤 즐겼는데,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육사 시절에는 축구부 주장을 맡았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1981년 제5공화국 출범 후, 한국 스포츠 부흥으로 이어졌다. 야구, 축구, 씨름 등 각종 스포츠의 프로화를 추진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개최하고, 88년 서울올림픽 유치도 해냈다. 이에 앞서 82년 체육부를 신설했는데, 초대 장관이 최측근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하는 전대통령

대통령,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하는 전대통령

스포츠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만은 아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컸던 국민들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전 전 대통령은 프로야구 출범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고교야구 열기를 발판삼아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등 연고제로 시작된 프로야구를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현재의 프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 당시 전 대통령이 시구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검정 구두를 신고 그라운드에 나와 공을 던졌다. 연습을 많이 해서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하게 공을 던졌다.

당시 관중은 3만여명에 이르렀다. 그중에 상당수가 경호원이었다.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여파로 인해서였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의자가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 관중을 전부 앉으라고 했다. 시구할 때 앞에 서 있던 심판도 경호원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시구만 하고 경기를 다 보지 않았다고 한다.

1983년 프로축구 개막전 할렐루야-유공경기 관전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포토]

1983년 프로축구 개막전 할렐루야-유공경기 관전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포토]

1982년 제12회 대통령컵국제축구대회에서 시축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포토]

1982년 제12회 대통령컵국제축구대회에서 시축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포토]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했다. 특히 83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박종환 전 대표팀 감독과 인연이 깊다. 박 전 감독은 "청와대로 들어갈 때는 검문도 받지 않았고, 명절 때마다 200만원씩 보내줬다"고 전했다. 직접 축구를 했던 전 전 대통령은 축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고 한다. 박 전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이 돼 A매치를 치를 때, 전 씨가 중계방송을 보다가 휴식시간에 전화를 걸어 작전 지시를 내렸다는 일화도 있다. 83년 5월 8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첫 경기 시축자도 전 전 대통령이었다.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 [중앙포토]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 [중앙포토]

프로스포츠 열풍을 타고 전통문화인 씨름도 83년 프로화했다. 당시 씨름 TV 중계 시청률은 최고 65%였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등 씨름 스타가 배출됐다. 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씨름 결승 시간이 미뤄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엘리트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태릉선수촌에 자주 가서 격려했고, 국제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 축전을 보냈다. 전두환 정권에서 대통령 축전 문화가 처음 생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씨와 배드민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씨와 배드민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배드민턴 사랑도 유별났다. 백담사에 있을 때 본격적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코리아오픈 대회 때는 열일 제쳐두고 경기장을 찾을 정도였다. 재임 기간에는 배드민턴 선수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시범 경기를 지켜보고, 퇴임 후에는 연희동에서 동호인들과 배드민턴을 했다. 노년에는 골프도 꽤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