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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가 핵심...심기경호 장세동, 5공 창업공신 '쓰리허' [전두환 1931~20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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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사람들은 하나회로 요약된다. 정권 2인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의 핵심 측근 그룹이었던 '쓰리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 심기경호의 원조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대다수가 하나회 멤버였다.

 1988년 1월 5일 노태우 차기대통령의 예방을 받고 새해인사를 나누는 전두환 대통령. 중앙포토

1988년 1월 5일 노태우 차기대통령의 예방을 받고 새해인사를 나누는 전두환 대통령. 중앙포토

 1990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백담사 은거 2주년 법회에 한복차림으로 참석하여 기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0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백담사 은거 2주년 법회에 한복차림으로 참석하여 기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 전 대통령은 측근 중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장 오랜 친구였다. 육사 11기 동기생으로 가장 먼저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 때 자신이 지휘하던 제9보병사단에서 2개 보병연대를 동원해 서울에 진입시켰다. 쿠데타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자연스럽게 5공화국의 2인자란 시선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3월 전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명됐다. 전 전 대통령은 “오래 미뤄온 숙제를 끝마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회고록)고 회고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급랭했다. 특히 1988년 3월부터 약 2년간 진행된 5공 청산이 둘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놨다. 친인척들이 구속되는 등 정치적 부침을 겪은 전 전 대통령 부부는 1988년 11월 강원도 백담사로 769일에 걸친 정치적 유배를 떠나야했다.

 허화평(오른쪽) 전 의원과 허삼수 전 의원. 중앙포토

허화평(오른쪽) 전 의원과 허삼수 전 의원. 중앙포토

'쓰리허' 가운데 두 허씨(허화평·허삼수)는 군에서의 인연을 바탕으로 5공을 만든 창업 공신이었다. 허화평 전 의원은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시절 비서실장(대령)으로 12·12 군사반란의 실무 기획 역할을 맡았다. 청와대에서 그의 직책은 대통령의 ‘비서실 보좌관’이었다. 상징적 2인자 자리였다. 대통령 결재를 받거나 불려온 사람들은 허 전 의원에게 사전조율·사후평가를 받아 가는 게 관례였다고 한다. 그러나 권력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면서 그는 1981년 12월 정무1수석으로 좌천됐다.

허삼수 전 의원 역시 12·12 군사반란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사령관으로 있던 국군보안사의 인사처장이었다.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연행했으며, 허화평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1980년 준장 진급과 함께 예편한 직후 사정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둘을 끌어내린 건 1982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었다. 당시 영부인 이순자 여사의 작은 아버지 이규광씨가 사건에 연루되면서, 두 사람은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사퇴를 건의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이 때를 기점으로 둘을 5공 핵심에서 배제했고, 그해 12월 둘은 청와대를 떠났다.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 중앙포토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 중앙포토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은 1980년 9월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에 임명돼 관제 축제인 ‘국풍81’을 기획했다. 광주민주화운동 1주기를 앞두고 시선을 돌리려는 목적이란 지적을 받았다. 두고두고 논란이 된 언론통폐합과 이에 따른 신방겸영 금지, 언론기본법 제정 역시 그가 주역이었다. 그는 5공 막바지까지 승승장구했다. 1982년 1월에는 문화공보부 차관에 임명됐고, 이후 대통령 정무 1수석, 국토통일원 장관을 맡았다.

국회청문회에 출석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오른쪽). 중앙포토

국회청문회에 출석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오른쪽). 중앙포토

장세동 전 부장은 5공 전반기 3년 7개월을 경호실장으로, 후반기 2년 3개월을 안기부장으로 지냈다. 장 전 부장의 충성도는 맹목적이란 평가도 받는다. 특히 대통령의 기분상태까지 챙기는 ‘심기경호’의 원조로 유명하다. 전 전 대통령의 신뢰 역시 전폭적이었다. 1983년 10월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직후, 장세동 당시 경호실장은 사표를 냈지만 전 전 대통령이 반려했다. 역설적으로 장 전 부장의 맹목적 충성이 전 전 대통령을 민심과 괴리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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