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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학 ‘녹취록 유죄협상’ 통했다…‘대장동 패밀리’ 유일 불구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 전담 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22일 민간사업자 측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56)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48) 변호사를 구속기소하면서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53) 회계사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정 회계사는 이른바 ‘대장동 패밀리’ 중 유일하게 구속을 피한 피고인이 됐다. 정 회계사가 녹취록 제공 등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한 결과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22일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를 구속기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현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22일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를 구속기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현관의 모습. 연합뉴스

檢 “정영학, 특정범죄 신고자로 판단” 

김만배씨 등은 오는 24일 첫 재판을 받는 유동규(52·구속기소) 전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공사) 기획본부장과 공모해 화천대유·천화동인(1~7호) 측에 이익을 몰아주고 공사 측엔 최소 1827억원(배당이익 651억원+시행이익 1176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를 받는다.

이 중 정 회계사의 경우, 2015년 2월 공모지침서를 민간사업자에 유리하도록 설계하고 공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등 배임 공모 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구속은 면하게 됐다. 이와 관련, 중앙지검은 이날 보도자료에 정 회계사의 신병과 관련한 별도의 항목을 만들어 “수사 초기 검찰에 자진 출석해 관련자들의 대화 녹취록 제공 등 주요 혐의사실을 포함한 실체 진실 발견을 위해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감안, 불구속 상태로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회계사를 특정범죄신고자보호법(이하 범죄신고자법) 2조에 따른 특정범죄 중 부패범죄(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특경법상 배임·횡령 등) 신고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범죄신고자법은 범죄를 신고하는 등의 행위로 그와 관련된 자신의 범죄가 발견된 경우 그 범죄신고자 등에 대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16조). 앞서 정 회계사는 2015년 수원지검 특수부의 대장동 개발 비리 수사 때도 수사에 협조하면서 처벌을 피했다.

한국에는 미국 등 영미법계와 다르게 공식적으론 ‘유죄협상(plea bargaining)’ 제도가 없지만, 수사에 도움을 주는 피의자엔 검찰이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사에 협조하거나 피의사실을 인정하는 경우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70조)인 ▶증거인멸 염려 ▶도주 우려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 회계사가 수사 초반 녹취록 19개와 사진·자술서 등을 스스로 제출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사건의 공범을 밝히는 데 역할을 했다면 ‘개전(改悛)의 정(情)’(뉘우치는 마음)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이 같은 경우 재범 위험성이 낮아 양형에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 주요 혐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 주요 혐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특정 피고인 불구속 사유 설명 이례적” 

다만,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밝히면서 특정 피고인에 대해 범죄신고자법을 근거로 들며 불구속 사유를 설명한 건 이례적이란 지적도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정 회계사만 봐줬다는 여론을 피하려 선제적으로 논리를 찾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범죄신고자법 16조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재판부에 형의 감경을 호소하며 제시하는 단골 법조문이지만, 받아들여진 건 많지 않다. 앞서 대법원 2부는 2019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 중 한 명인 고영태(45)씨가 자신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원심이 선고한 형(징역 1년 6월, 추징금 2200만원)을 범죄신고자법에 따라 감경·면제해 달라며 상고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임의로 형을 감면할 수 있을 뿐, 이를 감면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범죄신고자법은 미국의 증인보호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국은 1999년 제정했다. 당초엔 강력범죄에 대한 형사 절차에서 자수·신고 등 자발적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 수사 협조자에 대한 신변안전조치 등 보복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를 추가·개정해 왔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정 회계사에 대한 신변안전조치 등에 관해 “상세하게 안전조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수사 초기 자술서를 제출한 정민용(47·전 공사 투자사업파트장) 변호사에 같은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데 대해선 “특정범죄에 대한 수사단서 제공, 진술, 증언, 그 밖의 자료제출 행위 등 특정범죄신고자로서 요건을 갖췄는지 법과 절차에 따라 해당성 유무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 회계사는 향후 재판에서도 검찰 측에 유리한 증인으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검찰이 보도자료라는 공식 문건에 보호 근거를 명시한 만큼 구형 단계에서부터 공범인 김씨, 남 변호사, 유 전 본부장 등과 달리 형이 대폭 감경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그는 뇌물공여·횡령,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등을 덧댄 김씨, 남 변호사와 달리 특경법상 배임 혐의로만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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