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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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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올해는 우리나라가 남극대륙을 처음으로 탐사한 지 36년이 되는 해입니다. 1985년 11월 26일, 윤석순 한국남극관측탐험대장이 이끄는 17명의 대원이 남극 킹 조지 섬에 있는 칠레 마쉬 기지에 첫발을 내딛음으로써 극지 탐사 본격화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남극 최고봉인 4897m의 빈슨 매시프 정상 공격팀과 과학자들인 조사연구팀으로 구성된 탐험대는 도착 즉시 등반팀을 떠나보내고 구소련의 벨링스하우젠 기지와 중국의 장성 기지 중간 바닷가에 8개의 크고 작은 텐트로 베이스캠프를 구축했습니다. 태극기와 남극기지라는 현수막을 게양한 후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이튿날, 윤 단장은 베이스캠프 뒷산에 올라 바위벽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의 남아들이 인류 공영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여기 남극에 첫발을 디디다”란 동판을 박았습니다. 등반팀도 사력을 다한 도전 끝에 세계 여섯 번째로 빈슨 매시프 정상 정복에 성공해 전 세계에 그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이후 한국의 극지 진출은 사뭇 눈부십니다. 남극 탐사 1년만인 1986년 11월,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8년 2월에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됐습니다. 2002년 4월에는 국제북극과학위원회에 가입하고 북극 다산과학기지를 개설했습니다. 2004년 4월에는 극지연구소가 설립됐으며, 2009년 11월에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건조돼, 그해 12월 남극으로 첫 출항하였습니다. 2014년 2월에는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가 준공돼 우리나라는 남극에 두 개의 기지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남극대륙 진출 36주년
기후 변화 대처 극지 연구 중요
절박함의 상징이 글래스고 협약

극지 연구가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급격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인류의 미래에 대한 대책이 화급하기 때문입니다. 남북극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으며, 세계 각처에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생태계 변화 현상도 초래하고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오염된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인류가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가 우주 탐사에 나서는 것도 결국은 지구의 대안을 찾는 노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까마득한 미래의 이야기일 뿐 우리가 살아야 할 최적의 행성은 지구입니다. 세계 197개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과학자들이 영국의 글래스고에 모여 기후 대책을 논의해 협약을 발표한 것도 후손에게 살 수 없는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번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지난 2015년 채택된 파리협약에서 합의한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각국이 탄소 감축 목표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인 석탄 발전이 ‘단계적 퇴출’에서 ‘단계적 중단’으로, 마지막에 ‘단계적 감축’으로 바뀌어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러시아·인도 같은 친 화석연료 국가들의 반발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탄소 배출량을 55% 감축해야 한다고 분석합니다. 워싱턴포스트의 피리드 자카리아 칼럼니스트는 “기후 정책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념적 순수성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또한 개발도상국의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가스로 대체하고 탄소 제로 에너지원인 핵발전을 활용하는 한편 모든 부분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급진적인 대체 에너지 정책이 대혼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도 동참하지 않은 2030년대에 석탄 발전소를 닫는다는 글래스고 선언에 한국이 서명하자 실현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외국에 대해서는 핵발전의 당위성에 동조하고 한국산 원전 건설을 권장하면서, 국내에서는 억제하는 이중성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 정부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듯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겠다 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탈원전 반대를 외치고 있어 이 문제가 이번 대선의 표심을 좌우할 쟁점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원전 정책의 지형이 뒤바뀔 것입니다.

남극대륙탐사의 문을 연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은 40년이 되는 2025년에 극지방송국과 극지박물관을 설립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또한 남극대륙탐사 36년사를 준비하다가 지난 2월 갑자기 숨졌습니다.  그와 함께 남극대륙에 첫발을 디뎠던 17명 가운데 4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남극대륙에 첫발을 디딘 11월 26일을 ‘한국 극지의 날’로 제정해 극지와 지구 미래 연구의 이정표로 삼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