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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째 미완성 ‘날아라 슈퍼보드’ 복간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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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허영만 화백이 26년만에 복간된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를 들고 있다. KBS에서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42.8%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지만, 1993년 연재하던 만화잡지 '만화왕국'이 폐간되면서 미완의 상태로 중단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허영만 화백이 26년만에 복간된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를 들고 있다. KBS에서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42.8%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지만, 1993년 연재하던 만화잡지 '만화왕국'이 폐간되면서 미완의 상태로 중단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치키치키 차캬차캬 초코초코초”

설령 만화를 잘 모르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대사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손오공이 변신할 때 외우는 주문이다. 지금은 ‘타짜’ 같은 성인만화로 더 유명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허 화백은 어린이의 우상이었다.

1988년 만화잡지 ‘만화왕국’에서 첫선을 보인 ‘날아라 슈퍼보드(초기엔 ‘미스터 손’)’는 근두운 대신 슈퍼보드를 타고, 여의봉 대신 쌍절곤을 휘두르는 손오공을 등장시켜 화제가 됐다. 현대적 손오공은 20세기 키즈들을 매료시켰고, 그 인기 덕에 1992년 동명의 애니메이션(KBS)은 시청률 42.8%를 기록했다.

하지만 ‘날아라 슈퍼보드’가 미완인 채로 끝났다. 1993년 연재되던 ‘만화왕국’이 폐간해서다. ‘날아라 슈퍼보드’가 최근 26년 만에 만화(전 10권)로 복간됐다. 출판사 가디언 측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아 다시 만들었다”고 했다. 복간본을 낸 허 화백을 15일 만났다.

많은 작품 중 왜 ‘서유기’를 택했나.
“작품 자체가 정말 만화적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병원에 입원했는데, 박기당씨가 그린 『손오공』 양장본을 선물로 받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머리에 남은 것을 재해석해 만화로 그려보자는 생각을 하다가, 새로 창간된 ‘만화 왕국’에 제안한 것이다.”
스케이트보드와 헬멧, 쌍절곤 등의 아이템이 화제가 됐다.
“당시 한강 둔치에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많이 탔다. 아이들이 쓴 헬멧을 보고 구상했는데 헬멧을 계속 쓰면 머리가 얼마나 가렵나. 그래서 그 위에 작대기를 하나 꽂았다.”
애니메이션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시청률 42.8%는 최고 기록이다.
“당시 식당에 가면 어디서나 TV에서 ‘날아라 슈퍼보드’가 보였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엉터리였다. 도저히 볼 수 없어 돌아앉아 밥을 먹었다. 슈퍼보드가 날아가거나 쌍절곤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속도감이나 타격감, 액션 등이 전혀 살지 않았다. 당시 극화 수준이 낮았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으로 돈은 많이 벌었겠다.
“그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작가는 별로 받지 못했다. 200만~300만원 받은 거로 기억한다. 시청률이 아무리 올라도 인센티브는 없었다. 오히려 만화잡지에선 A급 대우를 해줬으니 거기서 더 많이 받았다.”
만화 잡지의 전성기인 1980~90년대 최고의 작가로 군림하지 않았나.
“그때 탑은 이상무 화백이고, 조금 뒤에 이현세 화백이 있었다. 난 항상 2등이었다. 2등도 괜찮다. 그 정도면 편집자가 작품에 간섭을 안 하거든 (웃음). 얼마를 벌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문하생 시절부터 일을 잘해 남들보다 2배 정도 받기는 했다.”
KBS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를 기업 광고에 활용한 SK이노베이션. [연합뉴스]

KBS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를 기업 광고에 활용한 SK이노베이션. [연합뉴스]

80~90년대 활동하던 화백들은 대부분 2000년대 들어서 작품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반면 허 화백은 2000년대에도 ‘식객’ 등으로 전성기를 달렸다.

90년대 중반 이후 더 주목을 받았다.
“90년대 이후 실력 있는 신인들이 많이 나왔다. 그때 나는 40대였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마석에 가 1년간 있었다. 한 번은 미술품을 모작하는 내용의 일본 만화를 봤는데, ‘세상에 이런 만화를 그리다니…’ 충격이었다. 솔직히 대다수 한국 만화가들은 책상 속에서 머리만 굴려 그렸다. 그런데 일본 만화가들은 취재를 해 만화에 어마어마한 정보를 넣더라. 만화책을 돈 내고 봐도 그 이상의 소득을 얻게 한 것이다. 그때 든 생각이 ‘남들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 현장감을 살리고 정보를 넣자’고 결심했다.”
취재 중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세일즈맨’을 처음 취재할 때는 대우자동차 문래동 영업소에 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거기 소장이 자동차를 전국 두 번째로 많이 판 사람이라더라. 그 사람을 취재하고 부족한 건 일본 노무라 증권에서 나온 세일즈 관련 책을 구해 읽었다. ‘타짜’ 때는 지리산으로 가서 도박에서 은퇴한 두 사람을 취재했다.”
‘식객’‘타짜’‘미스터 큐’ 등 유독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작품이 많다.
“작품에 ‘슈퍼맨’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다른 작가들에 비해 동네에서 흔히 만날 법한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니 방송이나 영화에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것 같다.”

복간된 ‘날아라 슈퍼보드’는 미완성 그대로다. 요괴에게 납치된 삼장법사를 구하는 과정에서 멈췄다.

미완으로 마친 부분부터 다시 이어나갈 계획은 없었나?
“지금은 안 된다. 연재 당시엔 우리 애들을 보면 소재가 나왔다. 그런데 걔들이 이제는 술·담배도 하는 성인이 돼 어렵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이 상태에서 마무리해야지 더 건드리면 안 된다.”

허 화백은 10권 마지막 페이지에 “성품이 너무 좋아 매번 마귀들의 함정에 걸려 납치되기 일쑤인 삼장법사이지만, 미스터 손이 구하러 올 때까지 잘 이겨낼 것입니다. 다시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스터 손, 저팔계, 사오정을 앞세우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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