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키치키 차캬차캬 초코초코초”
설령 만화를 잘 모르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대사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손오공이 변신할 때 외우는 주문이다. 지금은 ‘타짜’ 같은 성인만화로 더 유명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허 화백은 어린이의 우상이었다.
1988년 만화잡지 ‘만화왕국’에서 첫선을 보인 ‘날아라 슈퍼보드(초기엔 ‘미스터 손’)’는 근두운 대신 슈퍼보드를 타고, 여의봉 대신 쌍절곤을 휘두르는 손오공을 등장시켜 화제가 됐다. 현대적 손오공은 20세기 키즈들을 매료시켰고, 그 인기 덕에 1992년 동명의 애니메이션(KBS)은 시청률 42.8%를 기록했다.
하지만 ‘날아라 슈퍼보드’가 미완인 채로 끝났다. 1993년 연재되던 ‘만화왕국’이 폐간해서다. ‘날아라 슈퍼보드’가 최근 26년 만에 만화(전 10권)로 복간됐다. 출판사 가디언 측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아 다시 만들었다”고 했다. 복간본을 낸 허 화백을 15일 만났다.
- 많은 작품 중 왜 ‘서유기’를 택했나.
- “작품 자체가 정말 만화적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병원에 입원했는데, 박기당씨가 그린 『손오공』 양장본을 선물로 받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머리에 남은 것을 재해석해 만화로 그려보자는 생각을 하다가, 새로 창간된 ‘만화 왕국’에 제안한 것이다.”
- 스케이트보드와 헬멧, 쌍절곤 등의 아이템이 화제가 됐다.
- “당시 한강 둔치에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많이 탔다. 아이들이 쓴 헬멧을 보고 구상했는데 헬멧을 계속 쓰면 머리가 얼마나 가렵나. 그래서 그 위에 작대기를 하나 꽂았다.”
- 애니메이션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시청률 42.8%는 최고 기록이다.
- “당시 식당에 가면 어디서나 TV에서 ‘날아라 슈퍼보드’가 보였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엉터리였다. 도저히 볼 수 없어 돌아앉아 밥을 먹었다. 슈퍼보드가 날아가거나 쌍절곤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속도감이나 타격감, 액션 등이 전혀 살지 않았다. 당시 극화 수준이 낮았다.”
- 그래도 애니메이션으로 돈은 많이 벌었겠다.
- “그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작가는 별로 받지 못했다. 200만~300만원 받은 거로 기억한다. 시청률이 아무리 올라도 인센티브는 없었다. 오히려 만화잡지에선 A급 대우를 해줬으니 거기서 더 많이 받았다.”
- 만화 잡지의 전성기인 1980~90년대 최고의 작가로 군림하지 않았나.
- “그때 탑은 이상무 화백이고, 조금 뒤에 이현세 화백이 있었다. 난 항상 2등이었다. 2등도 괜찮다. 그 정도면 편집자가 작품에 간섭을 안 하거든 (웃음). 얼마를 벌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문하생 시절부터 일을 잘해 남들보다 2배 정도 받기는 했다.”
80~90년대 활동하던 화백들은 대부분 2000년대 들어서 작품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반면 허 화백은 2000년대에도 ‘식객’ 등으로 전성기를 달렸다.
- 90년대 중반 이후 더 주목을 받았다.
- “90년대 이후 실력 있는 신인들이 많이 나왔다. 그때 나는 40대였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마석에 가 1년간 있었다. 한 번은 미술품을 모작하는 내용의 일본 만화를 봤는데, ‘세상에 이런 만화를 그리다니…’ 충격이었다. 솔직히 대다수 한국 만화가들은 책상 속에서 머리만 굴려 그렸다. 그런데 일본 만화가들은 취재를 해 만화에 어마어마한 정보를 넣더라. 만화책을 돈 내고 봐도 그 이상의 소득을 얻게 한 것이다. 그때 든 생각이 ‘남들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 현장감을 살리고 정보를 넣자’고 결심했다.”
- 취재 중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 “‘세일즈맨’을 처음 취재할 때는 대우자동차 문래동 영업소에 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거기 소장이 자동차를 전국 두 번째로 많이 판 사람이라더라. 그 사람을 취재하고 부족한 건 일본 노무라 증권에서 나온 세일즈 관련 책을 구해 읽었다. ‘타짜’ 때는 지리산으로 가서 도박에서 은퇴한 두 사람을 취재했다.”
- ‘식객’‘타짜’‘미스터 큐’ 등 유독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작품이 많다.
- “작품에 ‘슈퍼맨’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다른 작가들에 비해 동네에서 흔히 만날 법한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니 방송이나 영화에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것 같다.”
복간된 ‘날아라 슈퍼보드’는 미완성 그대로다. 요괴에게 납치된 삼장법사를 구하는 과정에서 멈췄다.
- 미완으로 마친 부분부터 다시 이어나갈 계획은 없었나?
- “지금은 안 된다. 연재 당시엔 우리 애들을 보면 소재가 나왔다. 그런데 걔들이 이제는 술·담배도 하는 성인이 돼 어렵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이 상태에서 마무리해야지 더 건드리면 안 된다.”
허 화백은 10권 마지막 페이지에 “성품이 너무 좋아 매번 마귀들의 함정에 걸려 납치되기 일쑤인 삼장법사이지만, 미스터 손이 구하러 올 때까지 잘 이겨낼 것입니다. 다시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스터 손, 저팔계, 사오정을 앞세우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