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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초파리’ 덕분에…수면장애 치료 실마리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구의 자전으로 발생하는 빛, 어둠, 온도 등 외부 자극에 대응하기 위해서 생명체는 24시간마다 달라지는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지구의 자전으로 발생하는 빛, 어둠, 온도 등 외부 자극에 대응하기 위해서 생명체는 24시간마다 달라지는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초파리의 생체 리듬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견됐다. 사람의 수면 장애를 치료하거나 식물의 개화를 조절하는 데 실마리가 되는 기초 연구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이종빈·임정훈 UNIST 교수팀이 수면 주기를 조절하는 생체시계 유전자를 발견하고, 신경생물학적 원리를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수면 조기 조절하는 유전자 발견

생명체는 일주기성 생체리듬(circadian rhythm·24시간마다 달라지는 생물학적 주기)을 가지고 있다. 지구의 자전으로 발생하는 빛, 어둠, 온도 같은 외부 자극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나팔꽃이 낮에 피고 밤에 지거나, 해가 뜨고 질 때 사람이 수면·신진대사 등 생리 기능을 하는 것도 생체시계 덕분이다. 제프리 홀 미국 메인대 교수 등 3인은 지구의 자전 주기에 따라 생명체가 어떻게 생체리듬을 조절하는지 설명한 공로로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밤에 졸리고 아침에 깨는 이유

이종빈·임정훈 교수팀은 제프리 홀 교수 등이 받은 노벨상 연구를 발전시켰다. 기존 연구가 생체시계를 구성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들은 생체시계 신경세포로부터 시간에 대한 정보가 행동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부지런 초파리(busy-run drosophila)’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초파리는 여느 초파리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잠을 적게 잔다. ‘부지런하다’는 한국어를 어원으로 이 돌연변이 초파리를 명명했다고 한다.

돌연변이 초파리의 일주기성 행동 리듬 장애. 빛과 어둠이 12시간 간격으로 반복되는 조건(LD)과, 24시간 내내 어두운 상황(DD)에서, 정상초파리(wild-type)와 돌연변이 초파리(탱고10)의 움직임을 비교해봤더니, 돌연변이 초파리의 행동 주기가 불규칙했다. [사진 UNIST]

돌연변이 초파리의 일주기성 행동 리듬 장애. 빛과 어둠이 12시간 간격으로 반복되는 조건(LD)과, 24시간 내내 어두운 상황(DD)에서, 정상초파리(wild-type)와 돌연변이 초파리(탱고10)의 움직임을 비교해봤더니, 돌연변이 초파리의 행동 주기가 불규칙했다. [사진 UNIST]

연구진은 생체시계가 망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지런 초파리에서 특정 유전자(‘탱고10’) 변이를 발견했다. 이 돌연변이 초파리의 특정 신경세포(페이스메이커 신경세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24시간 주기로 보여야 하는 신경 말단의 모양 변화(신경 가소성)가 없었고, 신경세포도 과도하게 흥분해 있었다. 신경말단에서 분비하는 물질(색소확산인자·Pigment-Dispersing Factor)도 비정상이었다.

결국 ‘탱고10’ 유전자가 고장 나면 특정 신경세포(페이스메이커)가 흥분 상태를 유지해 수면 주기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페이스메이커는 24시간 주기 정보를 뇌의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해 모든 신경세포가 동일한 주기를 갖도록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신경생물학적 원리도 밝혔다. 탱고10 유전자가 단백질 분해 과정(유비퀴틴화·ubiquitination)을 매개해 페이스메이커 신경세포의 기능과 수면 조절에 관여했다. 단백질 유비퀴틴화는 쓸모가 다한 단백질을 분해하는 반응이다.

이종빈 연구교수는 “특정 단백질 복합체(‘탱고10-퀄린3’ 복합체)가 시냅스(신경세포끼리 연결되는 부분)에서 단백질 유비퀴틴화를 조절해 수면 주기를 결정하는 시간 정보를 전달한다는 증거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4시간 주기별 인간의 생체리듬. [사진 플릭커]

24시간 주기별 인간의 생체리듬. [사진 플릭커]

“수면장애 치료 단서”…美 PNAS 게재

이를 통해 연구진은 새로운 생체리듬 조절 모델도 제시했다. 탱고10 유전자가 페이스메이커 신경세포의 흥분을 제어하면, 이를 통해 시간 수면 등 24시간 주기의 행동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세포 내 칼륨 이온의 양은 신경세포 흥분성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탱고10이 특정 칼륨 이온 채널을 통해 이러한 세포 흥분성을 제어한다는 가설이다.

임정훈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탱고10은 생체시계의 시곗바늘을 돌리는 톱니바퀴 역할을 하는 유전자”라며 “이 같은 가설을 전기 생리학 실험과 계산생물학 모델링으로도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탱고10 유전자와 수면장애의 관련성을 규명한다면 수면장애 치료 등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오는 23일 게재될 예정이다. 한국연구재단 바이오의료기술 개발사업과 창의도전연구기반 지원사업이 이번 연구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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