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소할테면 하라했더니 기소"…국가에 3억 소송낸 판사

중앙일보

입력 2021.11.22 05:00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가 지난 3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가 지난 3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 1심 무죄를 선고받은 방창현(48·사법연수원 28기)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가 검사의 공소권 남용과 피의사실공표를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3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판사 14명 가운데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를 낸 건 방 부장판사가 처음이다. 검찰의 공소장과 1심 재판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는 어떻게 달랐기에 방 부장판사는 손해배상 소송까지 내게 된 걸까.

통진당 지방의원 소송 담당 재판부 중 유일하게 기소돼 1심 무죄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방 부장판사는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검찰의 잘못된 기소로 인해 정신적 충격과 명예가 훼손되는 피해를 봤다며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방 부장판사는 소장에서 검찰이 사실관계를 왜곡해 공소장에 기재하고, 증거도 없이 기소를 진행해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한다. 방 부장판사는 2015년 당시 전주지법에서 맡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의 행정소송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에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한 뒤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들도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자 법원에 잇따라 퇴직처분 무효 소송을 냈다. 검찰은 당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헌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보수 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통진당 지방의원 사건’을 담당하던 전주지법이나 서울행정법원, 광주지법 사건에 개입하려 했다고 의심했다.

방 부장판사는 통진당 지방의원 퇴직 무효소송과 관련해 행정처가 접촉한 여러 재판부 중 1명이었는데 검찰은 방 부장판사만 행정처에 자신의 재판 관련 심증을 누설하고(공무상 비밀누설), 행정처 요구에 따라 주심 판사의 판결문을 고쳤다(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는 혐의로 2019년 3월 기소했다.

검찰은 방 부장판사의 공소장에서 “행정처 지시를 받은 심경 당시 심의관으로부터 ‘지방의회 의원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본안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니 잘 검토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행정처에 ‘본안 판단을 할 것이고, 지방의회 의원의 청구를 인용할 것’이라는 취지로 재판장인 자신의 심증을 알려줬다”고 기재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방 부장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윤종섭)가 인정한 내용은 전혀 달랐다.

2015년 9월 심 전 심의관은 “국정감사를 준비 중”이라며 방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통진당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방 부장판사는 국정감사 대비 차원의 통화로 이해하고 공직선거법 쟁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제야 심 전 심의관은 행정처에서는 본안 판단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고, 필요하면 자료를 보내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방 부장판사 측은 행정처 요구를 먼저 듣고 심증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검찰이 사건의 선후 관계를 임의로 뒤바꾸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왜곡해 공소장을 작성했다고 주장한다.

행정처 요구로 주심 판사의 판결문을 고쳤다는 공소장 내용도 ‘허위사실에 의한 기소’라고 반박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당시 컴퓨터와 이메일 등 압수수색에서도 방 부장판사와 심 전 심의관 사이에는 위 한 차례 통화 외에 통진당 사건 관련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문건이 오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누구로부터 어떤 요구를 받았는지가 전혀 특정되지 않은 셈이다.

지난 18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최수환) 심리로 열린 방 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다. 방 부장판사를 대리하는 이승엽 변호사는 재판에서 “소설에도 누가·언제·무엇을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건 공소장은 그마저도 없다”며 “신화에나 나올법한 기재”라고 비판했다.

“이게 무슨 범죄냐, 할 테면 빨리 기소해 달라”했더니 괘씸죄 기소?

결국 방 부장판사의 1심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서는 법리상 죄가 되지 않고, 직권남용 혐의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방 부장판사는 소장을 통해 국가기관인 검찰이 사실을 왜곡해 공소장에 적고, 당시 행정처의 접촉을 받은 여러 재판부 중 자신만 콕 집어 기소한 점에 대해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정당한 공소권 행사를 벗어난 것”이라며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방 부장판사 측은 검찰 조사 당시 수사에 흔쾌히 응하지 않으며 ‘기소할 테면 빨리 기소하라’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이 실제 기소로 이어지지 않았나라고 의심한다.

방 부장판사에 대한 1회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소신껏 한 판단인데 이런 의심을 받는 것 자체를 납득할 수 없다”“이게 무슨 범죄냐, (기소할 테면) 빨리 기소해 달라. 판단을 받고 싶다”며 불쾌한 입장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방 부장판사의 진술이 나온다. 그의 진술 때문이었는지 방 부장판사는 관련 행정소송을 담당한 재판부 중 유일하게 기소됐고 1심 무죄를 받았다.

'정신적인 충격과 명예훼손'이 방 부장판사 측이 주장한 손해배상 소송의 이유다. 그는 기소 후 재판업무에서 배제됐다. 재판 시작도 전에 '검찰 수사 결과'라며 피의사실이 언론에 공표돼 '행정처의 요구에 따라 판결을 고친 판사'라는 치명적인 명예훼손을 당했다고도 했다. 방 부장판사의 소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 이원신)에 배당됐으며 아직 첫 재판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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