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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하도급 불법 파견 판결, 제조업 현실 외면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11.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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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직고용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내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불법 파견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산업계에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대법원이 현대위아 사내 하도급 근로자에 대해 최종적으로 불법 파견으로 확정하면서 후폭풍이 만만찮다. 최종심을 기다리는 포스코나 현대·기아차를 비롯하여 사내 하도급을 활용하고 있는 많은 회사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이러다가 사내 도급 자체가 금지되고 노동시장이 경직화해 기업 경쟁력이 약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불법 파견을 둘러싼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8년 파견법 제정에까지 연유한다. 파견법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고용 유연성을 높여 달라는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정됐다. 문제가 되는 도급·파견의 구별 문제는 이미 파견법 제정 당시에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도급과 파견은 태생적으로 그 구조가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행정관청은 일찍부터 양자를 구별하는 기준(지침)을 만들어 이에 대응해 왔다. 이 지침에 따라 하청회사가 원청회사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 경영권과 인사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도급으로 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파견으로 보는 판단 기준이 실무상 정착돼 있었다.

노동 현장엔 도급·파견 요소 혼재
급변하는 기업현장을 잘 살펴야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사법부가 불법 파견 소송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사법부는 종전의 행정부 유권해석에 더해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원청 회사 조직에의 편입 정도, 지휘·명령 및 인사·명령의 행사 여부, 업무의 전문성과 조직·설비의 여부 등 세분된 독자 기준을 제시하면서 사내 하도급의 인정 기준이 더욱 엄격하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으로 불법 파견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제조업에서 널리 활용되는 노무 도급의 경우 도급적 요소와 파견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양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종전까지 적법한 도급이 소송에서 불법 파견으로 판단되는가 하면,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심급과 담당 판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원·하청이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을 공유했다는 것을 이유로 이를 지휘·명령으로 보아 불법 파견으로 판정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는 사법부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가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업 현장은 IT(정보기술)의 발달로 자동화·전산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제조업의 경우 제품의 발주에서부터 납품에 이르기까지 전 생산과정이 MES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같이 산업 현장은 스마트·팩토리를 향해 진화하고 있는 데 비해 사법부는 아직 아날로그적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견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불법 파견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들과는 달리 파견을 전문 지식 등을 필요로 하는 32개 업무에만 허용하고 정작 파견이 필요한 제조업 등에서는 이를 금지한다는 데 있다. 철강·자동차·조선 등 제조업에서는 고용 유연성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도급 방식에 의해 외부 노동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불법 파견을 둘러싼 시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다. 사법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지엽적인 사실관계에만 치우치지 말고 개방적인 관점에서 파견·도급 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모호한 판단 기준으로 원·하청 간에 형성된 유기적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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