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정동의 축적의 시간

혁신기술 출발점은 “왜”…묻고 또 물어라

중앙일보

입력 2021.11.22 00:32

업데이트 2021.11.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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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연진화와 다른 기술진화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죽음의 소멸(Death of death)’. 몇 년 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들었던 흥미로운 발표 제목이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연사는 유전자검사 비용이 매해 10분의 1 이하로 급격히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인공장기 생산비용의 급격한 감소 추세 등 여러 자료를 숨 가쁘게 제시했다. 결론인즉슨,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머지않은 장래에 모든 인간이 저렴한 비용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맞춤장기를 쉽게 교체해가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하게 되리라는 전망이었다. 휴식시간에 그 발표가 단연 화제였지만, 흥미롭게도 영원히 산다면 연금 문제는 어떻게 될지,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지 등 삶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193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구호를 다시 생각나게 했다. ‘과학은 발전하고, 산업은 적용하며, 인간은 순응하다.’

도전적 질문이 새로운 세상 열어
기술은 인간의 욕망에 맞춰 발전
즉석사진은 꼬마 궁금증서 착안
노벨상도 최초 질문자에 돌아가

기술은 스스로 발전한다는 착각

영상통화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미국 통신사 AT&T가 50년 전 내놓은 영상통화 시스템 ‘픽처폰’. 통화하는 상대방 얼굴뿐 아니라 그래픽 등 다양한 데이터를 보여줄 수도 있다. [사진 AT&T 히스토리센터]

영상통화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미국 통신사 AT&T가 50년 전 내놓은 영상통화 시스템 ‘픽처폰’. 통화하는 상대방 얼굴뿐 아니라 그래픽 등 다양한 데이터를 보여줄 수도 있다. [사진 AT&T 히스토리센터]

유토피아 같은 기술의 미래 전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첨단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로봇이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하고, 인간은 원하는 여가생활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술발전의 가속적 추세는 거역할 수 없는 밀물처럼 여겨진다.

자연궤적(natural trajectory)이라는 표현이 있다. 기술의 발전역사를 보면 몇 가지 뚜렷한 경향이 보인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기계화다. 과거 사람의 근육으로 하던 것이 동물의 힘으로 대체됐고, 증기기관과 모터를 거쳐 로봇으로 진화해온 궤적이다. 자동화나 알고리즘화도 또 하나의 궤적이다. 18개월마다 반도체 칩의 집적도가 2배씩 올라가리라고 예측한 ‘무어(Moor)의 법칙’도 자연궤적의 대표적인 예다.

이런 자연궤적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기술발전의 로드맵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다음 버전의 반도체를 개발하는 회의장에서 무어의 법칙을 벽에 걸어 놓고 어떻게 2배의 집적도를 달성할 것인지 고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캐빈 켈리의 생물계 구분

캐빈 켈리의 생물계 구분

기술예측 전문가인 캐빈 켈리는 이런 생각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테크니움(technium)’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지구상에는 동물계·식물계·균계·유색조식물계·원생동물계·세균계 등 6개 생물계가 있는데, 기술이 7번째 계로서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그 이름이 바로 테크니움이다. 기술이 생물처럼 스스로 진화한다는 것인데, 비유하자면 반도체 칩이 더 집적도가 높아지고, 속도가 더 빨라지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해서 새로운 기술을 얻는다는 기발한 상상이다. 언뜻 주변을 찬찬히 되돌아보면 기술이 날로 다양해지고, 발전하면서 서로 얽혀 거대하고 상호 보완적인 네트워크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테크니움이 우리 옆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느낌도 아주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이 스스로 발전한다는 상상은 착각일 뿐이다. 기술은 인간이 욕망하는 만큼 발전한다. 반대로 비록 구현이 가능하더라도 인간이 원하지 않는 기술은 쉽게 선택되지 않는다.

화상전화 상용화 쉽지 않았던 이유

화상전화는 1876년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했을 당시 이미 영상도 전송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을 만큼 오래된 개념이다. 1964년 AT&T는 테스트모델과 공중전화용 영상부스까지 내놓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많은 모델이 나왔으나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2010년 스티브 잡스가 4G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야심 차게 화상전화를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기술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원인은 인간의 심리적 저항에 있었다. 가족이나 연인을 제외하고, 직장 상사 등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음성이라는 최소한의 소통채널만으로 대화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을 회복했을 때 인간의 요구가 변화해서 상사와 통화할 때도 화상으로 연결하는 것이 상식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기술은 인간이 원하는 만큼 발전한다.

테크니움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더라도 기술생태계는 다른 6가지 종류의 생물계와 진화 메커니즘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생물계 진화에서는 인간의 의도와 상관없이 유전자의 무작위적 변이와 환경적 선택이 핵심이다. 그러나 기술 진화에서는 인간의 의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물이 빛과 같은 외부적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면, 인간은 자신만의 상상과 욕구, 그리고 의미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기술의 조합을 시도하고, 의지에 부합하는 대안을 선택한다.

인공지능 기술과 개인정보의 충돌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방향이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관심이 증대함에 따라 과거와 같이 무제한적인 빅데이터의 이용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요구를 반영하여 빅데이터가 아니라 스몰데이터 혹은 완전한 데이터가 아니라 일부 정보가 삭제된 불완전한 데이터에서 추론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적용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설명가능 인공지능(explainable AI)’ 기술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추세다.

국가적인 아젠다도 더 이상 정확하고 빠른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부터 기술의 발전방향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지난 4월 인공지능 기술의 모습을 다듬어 가기 위한 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행동양식에 왜곡을 가져와서는 안 되며, 특정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취약해지는 방식이어서도 안될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 인간을 점수화해서 부당한 불이익을 초래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집행을 목적으로 한 식별기술은 엄격한 조건 하에만 허용하는 것으로 규율하고 있다. 이런 규율의 집합은 유럽이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요약한 것이며, 이에 맞추어 인공지능 기술개발 방향은 휘어갈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능동적 의지에 따라 발전한다는 생각을 좀 더 확장해보면,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의 출발점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혁신적인 기술은 모두 지배적인 모델과 추세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뭔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 기술도 창업자의 세 살배기 딸이 “사진은 왜 찍고 바로 볼 수 없느냐”라고 황당하게 질문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사진의 지배적 모델은 찍고 나서 작업실에 가서 오랜 현상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지만, 이 지배적 교과서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당돌한 질문이 사진기술의 새로운 진화를 촉발한 것이다. 모든 질문이 가치로운 것은 아니지만, 질문이 없으면 기술진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기술선도국은 질문하는 환경 조성

기술의 발전추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던지게 되는 질문은 ‘어떻게(how)’다. 무어의 법칙이 성립한다는데, 다음 버전을 어떻게 빨리 달성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처럼…. 그러나 혁신적 기술을 얻고자 한다면 “왜(why)”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무어의 법칙도 얼마든지 깨질 수 있고, 다른 법칙을 만들 수도 있다.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든 새로운 온라인 거래방식을 고민하든 기존의 추세와 관성을 거슬러 세 살배기 아기같이 나의 궁금증과 욕구에 기반하여 황당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질문이 많은 사회, 그런 당찬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답을 찾아 시도하는 연구자와 기업가가 많은 국가가 기술선도국가다.

노벨상 이야기를 많이 한다. 노벨상은 기존 추세에서 성능이 더 뛰어난 기술을 만들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지식의 카테고리가 생길 때 그 최초의 질문자에게 수여되는 것이다.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의 등장도 마찬가지다. ‘왜’라는 질문에 기초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장르가 생길 때 혁신기업이 탄생한다. 불과 10년 전 이름조차 생소한 우버가 공유경제라는 비즈니스의 장르를 열게 된 것도 “왜 택시는 항상 그렇게 타야 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대만의 TSMC로 대표되는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창업자 모리스 창이 “왜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항상 같이해야 하나”라고 질문한 데서부터 그 모든 진화 과정이 시작됐다.

이런 질문이 억눌리지 않고, 답을 찾는 여정에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기술선도국의 책무다. 기술선도국의 자격은 질문의 시작에 있다.

모비온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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