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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바이든과 시진핑의 ‘민주’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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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영상으로 첫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미·중의 대결 구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저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중 간 전선은 무척이나 길고 그 폭 또한 깊다. 경제에서 외교안보, 이데올로기 공방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부닥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이 그간 아킬레스건처럼 최대의 약점으로 지적돼온 ‘민주(民主)’의 문제에서 반격을 시작해 눈길을 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중국을 공격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게 바로 중국에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두 개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오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영상으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 16일 오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영상으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민주냐 전제(專制)냐’.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시진핑 주석을 때리고 싶을 때마다 요긴하게 쓰는 말이다. 지난 2월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을 향해 “민주주의적인 구석이라곤 전혀 없다(doesn’t have a democratic bone in his body)”고 말해 시 주석의 심기를 긁었다. 4월엔 미·중 관계의 핵심을 “민주주의와 전제정치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는 12월 9~10일 이틀 동안 세계 108개 국가를 초청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그동안 ‘쿼드’나 ‘오커스’ 등 일부 국가를 모아 반(反)중국 전선을 형성하던 데서 나아가 세계적인 반중국 블록 구성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의 조치에 ‘이에는 이’로 대항해오던 시 주석이 가만있을 리 없다.
지난달 중순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중앙 인민대표대회 업무회의가 신호탄이다.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과 왕치산(王岐山)국가 부주석 등 중국 최고 지도부가 총출동한 자리에서 시 주석은 도대체 ‘민주’가 무얼 말하고 누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중국식 민주’가 어떤 것인지 미국을 겨냥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12월에 개최될 미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그저 미국의 계산대로 흘러가게 둬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아울러 이제는 서방과 ‘민주’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해석권을 놓고 한판 붙자는 야심이 번득인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 수세적인 국면에서 탈피해 공세적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의 집무실 바로 옆 회의실인 루스벨트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자리했다. TV 화면으론 시 주석의 모습이 보인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의 집무실 바로 옆 회의실인 루스벨트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자리했다. TV 화면으론 시 주석의 모습이 보인다. [AP=뉴시스]

다소 길긴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중국식 민주’가 무얼 말하는지 보자. 시 주석은 우선 “민주는 전 인류의 공동가치로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이 시종 중요한 이념으로 견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도 민주의 가치를 매우 중시한다는 말로 중국 공산당이 이 좋은 가치에 반하는 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발언이다. 이어 시 주석은 “민주는 소수 국가의 특허가 아니다”라며 중국 관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인 “민주가 서방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렇다면 “한 나라가 민주인가 비(非)민주인가”는 어떻게 따질 것인가. 시 주석은 그 잣대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 “인민이 투표권을 가졌는지 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인민에게 광범위한 참여권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두 번째, “인민이 선거 과정에서 어떤 구두승낙을 받는지를 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선거 후 이런 승낙이 얼마나 실현됐는가를 봐야 한다”. 세 번째, “제도와 법률이 어떤 정치과정과 정치규칙을 규정하는가를 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제도와 법률이 진정으로 집행되는가를 봐야 한다”. 네 번째, “권력 운행의 규칙과 과정이 민주적인가를 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권력이 진정으로 인민의 감독과 제약을 받는가를 봐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식 민주’를 내세워 서방의 소수 국가가 제멋대로 다른 나라의 민주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식 민주’를 내세워 서방의 소수 국가가 제멋대로 다른 나라의 민주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이게 무슨 말인가. 시 주석의 말은 이어진다. “인민이 투표 시에만 소환돼 깨어나고 투표 후엔 휴면기에 들어간다면, 인민이 경선 시 번지르르한 구호만 듣고 경선 후엔 발언권이 없다면, 인민이 투표할 때만 관심을 받고 선거 후엔 냉대를 받는다면 이런 민주는 진정한 민주가 아니다”. 현재 많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선거할 때만 유권자로서 대접을 받고 선거 후엔 선출된 지도자로부터 종종 소외되곤 하는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이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다고 할 수도 없는 중국이 민주사회가 현재 노정하고 있는 병폐 중 하나로 형식적인 ‘투표권’만 있지 실제적인 ‘참여권’이 없다고 꼬집는 셈이다.
시 주석은 또 ‘민주’를 둘러싸고 서방과의 ‘제도 싸움’도 마다치 않는다. 그는 “한 국가의 정치제도가 민주인가, 또 유효한가”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로 여덟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1) “국가 지도부가 법에 따라 질서 있게 교체되는가”, 2) “전체 인민이 법에 따라 국가와 사회업무, 경제와 문화사업을 관리하는가”, 3) “인민군중이 이익요구를 원활하게 펼칠 수 있는가”, 4) “사회 각 방면이 유효하게 국가의 정치생활에 참여하는가”, 5) “국가의 정책결정이 과학화, 민주화를 실현하는가”, 6) “인재가 공평경쟁을 통해 국가 관리 시스템에 진입할 수 있는가”, 7) “집권당이 헌법과 법률 및 규정에 따라 국가업무를 수행하는가”, 8) “권력 운용이 유효한 제약과 감독을 받는가”.

중국 공산당 중앙 인민대표대회는 지난달 13~14일 이틀 동안 중국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중국식 민주’에 관한 회의를 개최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공산당 중앙 인민대표대회는 지난달 13~14일 이틀 동안 중국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중국식 민주’에 관한 회의를 개최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말은 비단이다. 중국이 과연 그런가. 시 주석은 “그렇다”는 입장이다. ‘중국식 민주’를 통해서라고 말한다. ‘중국식 민주’는 무얼 말하나. 시 주석의 말을 들어볼 때 ‘중국식 민주’의 형식은 ‘인민대표대회’ 제도를, 내용은 ‘전과정(全過程) 인민민주’를 가리킨다. ‘인민대표대회’는 크게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와 지방의 각급 인민대표대회로 나눌 수 있다. 국회 격인 전인대는 명목상 중국의 최고 권력기구이지만 당의 방침을 추인하는 ‘거수기’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방의 향, 진, 현 인민대표대회는 직접선거를 실시하고 그 위 단계의 성(省)이나 시, 자치구 등에서는 아래 단계의 인민대표대회에서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간접선거가 실시된다.
중국은 향, 진, 현 등의 직접선거와 그 위 단계의 간접선거를 예로 들며 중국에서도 선거가 실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때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으로 불렸던 향, 진, 현 등의 직접선거도 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아 여느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지만 시 주석은 이 인민대표대회 제도를 “중국의 국정과 실제에 부합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보장하는 좋은 제도로서 인류의 정치제도 역사에 있어 위대한 창조”라고 추켜세운다. 따라서 인민대표대회 제도를 굳건히 견지하는 가운데 ‘전과정인민민주’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게 시 주석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중국식 민주’의 내용에 해당하는 ‘전과정인민민주’는 무얼 말하나.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중국식 민주 이야기를 잘 설명해야 한다”고 말해 중국 체제에 대한 우월성을 과시하려 한다는 분석을 낳았다. [중국 신화망 캡처]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중국식 민주 이야기를 잘 설명해야 한다”고 말해 중국 체제에 대한 우월성을 과시하려 한다는 분석을 낳았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 주석이 ‘전과정 민주’라는 말을 처음 꺼낸 건 2019년 11월 초 상하이(上海) 시찰을 나갔을 때다. 이때 시 주석이 “인민민주는 일종의 전과정 민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지난 3월 ‘전과정 민주’가 ‘전인대 조직법’과 ‘전인대 의사규칙’에 들어가 ‘법과 규칙’의 위상으로 올라갔고,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 행사 때 시 주석이 “전과정인민민주를 발전시키자”고 말해 이때부터 ‘전과정인민민주’라는 말로 굳어졌다. 시 주석은 “중국의 민주제도는 전과정인민민주로서 과정민주와성과민주를 실현하고, 절차민주와 실질민주를 실현하며, 직접민주와 간접민주를 실현하고, 인민민주와 국가의지를 서로 통일시키는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진실한 사회주의 민주”라고 말한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식 민주인 전과정인민민주는 서방 민주와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 번째, 서방의 민주는 ‘인민 주권’을 표방하지만, 실천에 있어서 서로 다른 이익집단 간의 다툼에 불과할 뿐인데 전과정인민민주는 이런 이익집단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서방 민주는 민주를 단순히 ‘경쟁성 선거’로만 이해해 민주의 후속 절차인 관리와 감독에 소홀한데 전과정인민민주는 선거에서 감독까지 모든 걸 포함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 대선 시 벌어진 의회 난입사건 등을 거론하며 중국식 민주가 낫다고 주장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영상을 통한 첫 정상회담에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영상을 통한 첫 정상회담에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 주석의 말은 계속된다. “국제사회에서 어느 나라가 민주인지 아닌지는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일이지 자기가 늘 옳다고 생각하는 소수 국가가 제멋대로 평가하고 판단해선 안 된다”. “민주 실현이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다”. “단일한 잣대로 인류의 오색찬란한 정치문명을 심사하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등.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여러 문제점을 내포한 건 맞다. 보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중국식 민주’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하는 말과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의 한 인권 운동가는 시 주석의 말을 “중국에도 민주가 있다고 그저 우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중국 후베이(湖北)성의 한 인권 운동가는 “직접선거가 실시되는 기층 인민대표대회 선거를 풀뿌리 선거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인민대표대회 사무실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중국의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민대표대회 대표가 누군지도 모르고, 또 각급 인민대표대회가 어떻게 정부에 대한 감독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며, 중국 지도자는 어떻게 선출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에선 ‘민주’의 토대인 ‘언론의 자유’가 없다. 중국 언론은 스스로 자신의 성(姓)이 중국 공산당의 ‘당(黨)’이라고 한다. 이런 언론 환경에서 ‘민주’를 이야기하는 건 ‘사치’이자 ‘어불성설(語不成說)’이란 비판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밤(미국 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영상을 통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밤(미국 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영상을 통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러나 어찌 됐든 시 주석은 이제 ‘중국식 민주’의 기치를 올렸다. 바탕엔 그동안 중국을 괴롭혀온 ‘민주’에 대한 해석권을 서방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겠다는 야심이 보인다. “민주는 장식품이 아니다”라며 “민주는 그저 장식으로 배치하는 게 아니고 인민의 필요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각국 인민의 권리이지 소수 국가의 특허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이제 미·중 간 ‘민주’를 둘러싼 또 하나의 전장이 열렸다. 문제는 이게 미·중 간의 다툼에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의 미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당장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은 우리나라는 어떤 자세로 회의에 임할지도 큰 관심이다.

서방이 중국에 붙이던 두 딱지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바이든, 12월 '민주주의 정상회의' 열어 반중국 블록 구성 #시진핑, ‘중국식 민주’ 내세워 서방의 ‘민주’ 해석권에 도전 #“민주냐 비민주냐는 그 나라 국민과 국제사회가 평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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