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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보여주기 이벤트에 그친 ‘국민과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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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 대통령, 국정 자성보다 치적 홍보에 중점  

동떨어진 현실인식에 관권선거 논란 우려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KBS1 방송에서 100분간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국민 패널 300명이 참여한 타운홀 미팅 형식이었다. 청와대가 ‘각본 없는 소통의 장’이라 선전한 행사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한 모양새였다. 국민이 고통받는 핵심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대신 지난 임기 4년 반 치적 홍보에 치중한 양상이 뚜렷했다.

청와대가 지역·세대를 망라해 엄선했다는 참석자들부터 “임기 중 잘한 일과 아쉬운 일이 뭐냐” 같은 현안과 빗나간 질문을 하기 일쑤였다. “코로나 방역 성공은 대통령의 영도력 덕분” “대통령님, 지난 4년 반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같은 우호적 발언도 잇따랐다.

문 대통령의 발언과 답변 역시 대통령 스스로 언급했듯 ‘자화자찬’이란 비판을 듣기에 충분했다. 부동산과 실업 등 민생 현안보다 코로나 방역 성공과 국격 상승 등 임기 중 성과 홍보에 상당 시간이 소요됐다. 대통령은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3000여 명 발생하는 상황에서 “우리 백신 접종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K방역을 비롯해 경제·민주주의·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라 위상이 세계 톱10으로 높아진 게 가장 큰 성과였다”고 강조했다. 백신 도입 지연 등 코로나 방역의 문제점을 자인하는 대목에서조차 “우리보다 접종률이 높은 나라는 세계에서 3개국뿐” 같은 말로 ‘성과’를 앞세웠다. 100분이란 제한된 시간에 대화 주제를 5개나 잡은 점도 심도 있는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국민의 고통에 대한 대통령의 동떨어진 현실 인식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청년 실업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고용이 99.9% 회복됐다”며 “질적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대답을 하는 데 그쳤다. 부동산 폭등에 대해서도 “이제는 부동산이 안정세로 접어들었고, 다음 정부까지 어려움이 넘어가지 않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겠다”고 대답했다. 부동산 폭등에 낙담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이 듣기엔 안이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행사는 대선을 불과 109일 앞두고 열렸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선거 관련 발언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행사의 대부분을 국정 실패에 대한 자성 대신 업적 홍보에 집중했으니 관권 선거 논란이 불거질 우려도 크다. 문 대통령은 행사 말미에 “세계 톱10 국가 국민의 자부심을 가지라”고 강조했는데, 자부심은 통치권자가 강요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궁금한 사안을 언제든 자유롭게 물을 수 있고, 대통령은 투명하게 답변하는 게 당연시되는 나라라면 국민의 자부심은 절로 생기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