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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상황서 우왕좌왕하다 신변보호자 피살…"112시스템 한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 피의자가 대구에서 긴급 체포돼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낮 12시40분쯤 대구 소재 한 숙박업소에서 피의자를 체포했다. 뉴시스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 피의자가 대구에서 긴급 체포돼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중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낮 12시40분쯤 대구 소재 한 숙박업소에서 피의자를 체포했다. 뉴시스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숨진 사건을 두고 경찰 사이에선 “112위치추적시스템의 한계”라는 목소리가 높다. 112시스템을 적용한 신변보호 장치인 ‘스마트워치’의 위칫값 오차로 경찰관들이 허둥대는 사이 피해자가 전 남자친구로부터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와이파이·위성 아닌 기지국 값 잡혀” 

21일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인 30대 여성 A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19일 스마트워치 비상 버튼을 총 두 차례 눌렀다. 오전 11시 29분에 첫 호출을 한 뒤 4분여가 지난 11시 33분에 또다시 호출을 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정확도가 낮은 기지국(Cell) 위칫값만 잡혔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112신고 등이 들어오면 기지국뿐 아니라 시차를 두고 뜨는 와이파이(Wi-Fi)나 위성(GPS) 위칫값을 복합적으로 따진다”며 “하지만 사건 당시 피해자는 건물 안에 있어 GPS 값 등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당시 피해자가 있었던 서울 저동 오피스텔로부터 500m 떨어진 서울 명동으로 출동했다. 명동에 피해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2차 신고 접수 후 기지국 위칫값의 오차 범위를 고려해 피해자 거주지 수색에 나서기로 했다. 1차 신고가 있은 지 12분이 지나서야 경찰은 피해자를 찾았지만 이미 피의자(30대 남성)로부터 수차례 흉기에 찔린 뒤였다.

경찰청은 현행 112위치추적시스템의 한계를 개선하고자 지난달 말부터 신변보호 위치확인시스템을 개발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지국과 Wi-Fi, GPS를 동시에 활용하는 ‘복합 측위’ 방식”이라며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위치추적 시간은 3초 이내로, 오차 범위는 50m 이내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트폭력 그래픽. 중앙포토

데이트폭력 그래픽. 중앙포토

“기술 의존보단 사람 중심 대책도 필요”    

A씨가 ‘최후의 방어막’으로 스마트워치를 선택한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가 1년여간 스토킹에 시달려오면서 대비책으로 휴대전화 긴급구조요청(SOS) 서비스도 설정했다는 A씨 지인들 증언이 나오면서다. 이 시스템은 위치 정확도가 비교적 높은 GPS 기반인 데다 위급한 당사자의 위치 주소와 로드맵, 녹음 파일 등을 지정자에게 전송해준다.

이에 휴대전화 SOS 서비스처럼 피해자가 능동적으로 본인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고민해야 한다는 게 현장 경찰관 의견이다. 112상황실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경찰이 신고자의 위치를 조회하는 현재의 시스템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며 “기지국뿐 아니라 Wi-Fi와 GPS 위칫값 등을 확인해도 건물의 정확한 층수나 호실까지 알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12신고를 할 경우 ‘살려달라’ ‘도와달라’라고 말하는 대신 정확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계적·기술적 결함을 따지기보단 ‘사람’에 초점을 맞춘 해결책을 내놓는 게 본질이라는 전문가 진단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람을 해치겠다고 마음먹은 범죄자를 어떻게 기계나 기술로만 막을 수 있나?”라면서 “경찰이 현장에 빨리 갔지만, 피해자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리를 뜬 사례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스토킹처벌법을 강화하긴 했지만, 피의자를 피해자로부터 아예 분리한 뒤 교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경찰에게도 대응 매뉴얼이나 직무 몰입 등을 지속해서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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