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눈에 띌듯 말듯…창덕궁 후원 정자, 건축 아닌 자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56)

우리나라에서 음양오행사상과 풍수지리사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정립되었으며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편안하고 거슬림이 없는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묘사할 때 자연스럽다는 말을 쓴다. 인위적이지 않고 순리적이라는 표현인데, 자연이라는 말은 도가의 사상을 그 근원에 두고 있다.

몽유도원도. [사진 Wikimedia Commons]

몽유도원도. [사진 Wikimedia Commons]

동양인은 손으로 꾸미는 정원에도 유유자적하던 자연에 대한 경험을 재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정원은 자연의 형상을 최대한 그대로 두고 즐기며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인간을 위한 조형물조차 모든 요소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할 수 있게 하여 최대한 자연을 그대로 두고 즐기려 하였다. 한국의 정원은 인위를 가급적 배제하려 노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원에는 인공의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 구성하고 사람이 그 상황에 몰입하려 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은 왕실 정원을 조성하는데도 그대로 적용되어 왕이 거닐던 궁궐의 후원을 보면 아직도 원림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즐겨 찾는 장소에 건립된 정자나 물길은 자연에 그대로 스며들어 마치 원래부터 자연의 일부였던 것처럼 보이게 했다.

창덕궁 후원

옛날에 어떤 나무꾼이 산에 갔다가 노인들이 바둑 두는 걸 구경하다가 돌아와 보니, 몇 백 년이 흘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 우리는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자신이 꿈에 본 선경 ‘무릉도원’을 안견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를 실경으로 재현한 듯 한 창덕궁 후원을 들여다본다.

창덕궁의 후원은 야산을 이용해 그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조선왕실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조성된 제왕의 휴식공간이다. 궁궐의 휴식 공간은 후원, 북원(北苑), 금원(禁苑), 상원(上苑)또는 내원(內苑)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창덕궁 후원의 매력은 그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다 보여주지 않고 굽이굽이 언덕을 돌아갈 때마다 다양한 표정을 내보이는 데 있다. 점점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일체가 되게 하는 것이 창덕궁 후원의 모습이다. 마치 선비들이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찾아 떠나는 풍류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조선의 왕들은 나랏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신하들과 함께 후원을 찾고 그곳에서 자연을 감상하고 시를 지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우리 조상들이 인공 구조물인 집이나 정자를 지을 때, 그들이 어떻게 자연을 배려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구조물을 배치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창덕궁 부용정. [사진 문화재청]

창덕궁 부용정. [사진 문화재청]

우선 자연을 닮아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옛사람의 자연관과 자연 속에 인위적으로 구성된 최소한의 건축적 개념을 이해해야만 한다. 한국인은 가우디(스페인 건축가)처럼 자연을 표현주의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성립하는 방식을 최우선으로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능적인 건축이 아니라 자연의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시적인 공간으로 들어가 자연과 합일하는 감성을 즐겼다. 예컨대 궁궐의 후원은 사람들이 걸으면서 스스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몰입의 장소로 조성되었다. 이때 인공 구조물인 정자의 배치는 충분히 시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적 역할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연출되는 자연의 모습을 공유하며 여러 사람의 다양한 감성을 표출하는 풍류의 개념으로 그곳을 찾았다. 이는 창덕궁의 후원이 단지 시각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운 자연적 공간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곳 후원에서 부용지 일대, 애련정, 관람정권역, 옥류천 일대를 찾아가면서 옛 선비들이 자연을 찾아들어갔던 무이구곡을 즐겨보기 바란다. 무이구곡은 중국 푸젠성에 있는 우이산의 아홉 굽이 계곡으로 주희(朱熹)가 일찍이 이곳에 머물며 ‘구곡가(九曲歌)’를 지었다고 한다. 성리학자들은 산수에 아홉 굽이를 설정해 마치 도산에 주자가 은거한 것처럼 의미를 두고 깊고 깊은 아홉 구비의 산수를 즐겼다.

창덕궁 후원 정자의 건축기법 비교

이제 조선 사람들이 궁궐의 후원에 정자를 지으면서 어떤 자연관을 건축에 도입하려 했는지도 살펴보도록 하자. 창덕궁 후원의 네 개 영역에 흩어져 있는 작은 정자들이 있다. 연꽃이 활짝 핀 형상의 부용정, 사모정자 애련정, 육각정인 존덕정, 부채형 정자 관람정, 천지인의 조화 둥근 지붕의 청의정 등 이다. 약 30만㎡의 후원 안에 겨우 한칸 자리 정자들이 눈에 띌듯 말듯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창덕궁 후원의 정자를 보면서 그것을 건축으로 보지 않고 그냥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 칸짜리 정자가 크게 위용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니 물에 비친 모습에서는 물결로 보고, 나뭇가지 사이로 어른거린 지붕모양에서는 초록이나 단풍이 먼저 눈에 띌 것이다.

이렇듯, 궁궐 후원이란 인위적인 건축이 최소화된 원유(苑囿)공간이다. 자연에 의지해 조영(造營)하고 수목, 물, 정자 등을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해 구성한 것이다. 건물을 완성하고 나서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하면 건축물의 이름을 쓴 편액을 달아 건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문양이나 주련으로 건축물로서의 물성을 떠나 시공간을 초월한 의미를 둔다. 대부분 작은 공간에 크나큰 자연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유공간의 정자는 작으면 작을수록 그 안에서 대자연의 운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정자 배치의 공간구성에서 물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원지방이라는 사상적 개념 속에 우주관을 집어넣고, 물과 물고기의 관계로 군신간의 화합을 의인화하고, 물속에 발 담그고 탁족하는 정자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게다가 땅을 파서 만든 못(연지)에 건물의 자태를 투영시키기도 하고 그 물에 비친 하늘의 경치를 빌려오는 차경의 멋도 있다. 존덕정 영역에서는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물가에 조그만 정자를 다양하게 배치하기도 했는데, 물에 배 띄우고 놀던 관람정, 하늘에서 물가 내려다보는 승재정, 왕의 말씀을 스스로 실천한 존덕정이 서로 가까이 있다.

이렇듯 제왕이 후원의 경관을 즐기고 휴식하기 위해 지은 정자는 대부분 작은 규모로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특히 유럽의 건축이 인위적인 아름다움으로 디자인된 기하학적 화려함과 비교했을 때, 조선의 한옥은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그 숨겨진 의미와 상징에 있어서는 큰 우주를 포용하는 자연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궁궐 후원에 펼쳐진 정자 역시 매우 소박하고 절제된 조선 선비의 차원 높은 미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