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명하면 팔자 고친다?···"목동도 아닌데 왜 목동이냐" 갈등

중앙일보

입력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아파트 ‘개명’에 정성을 쏟고 있다. 아파트 이름이 집값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해 기존 아파트의 브랜드 이름을 바꾸고 더 고급화하려는 전략이다. 일부 입주민 커뮤니티에서는 아파트 이름 변경이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이름 후보군을 만들어 주민투표를 거치는 등 적극적으로 ‘네이밍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사람도 일 안 풀리면 이름을 바꾸는데…”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바라 아파트 모습. 기사와 관련없는 사진. 뉴스1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바라 아파트 모습. 기사와 관련없는 사진. 뉴스1

최근 서대문구의 한 신축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서는 아파트 이름에 들어간 ‘에코’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A주민은 “개명하고 ‘팔자’를 고쳐야 한다. 에코보다는 더 고급스러운 이름으로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다른 입주민들도“사람도 일이 안 풀리면 이름을 바꾼다. 가재울에서 DMC로 바꿔 미분양을 떨쳐냈다면 이젠 DMC에서 서대문으로 이름을 바꿔 단지의 가치를 올려야 할 때”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파트 이름 변경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대안으로는 ‘에코○○’대신 ‘그랑○○’이라는 브랜드명을 넣자는 의견, 서대문이라는 지리적 특색을 살리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과 방배동에 있는 그랑○○ 아파트가 유명하니 같은 이름으로 고급화 전략을 펼치자는 논리다. 또 인근 아파트에 DMC 브랜드가 늘어 ‘서대문’을 넣으면 차별화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브랜드로 고급화하려는 게 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민 B씨(30)는 “네이밍 전쟁보다는 먼저 생활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브랜드명 바꾸는 데에 너무 혈안이 되어있다”고 털어놨다.

“목동도 아닌데 왜 목동?”

신월2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아파트 개명으로 논란이 일었다. 커뮤니티 캡쳐

신월2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아파트 개명으로 논란이 일었다. 커뮤니티 캡쳐

아파트 개명 문제로 주민들이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서울 신월동의 한 아파트는 이름 변경을 하려다 ‘아파트 명칭 변경 제안서’가 커뮤니티 등에 퍼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제안서에는 아파트 명칭 후보를 주민들의 수기로 받았다. 이에 일부 주민들은 “목동센트럴 △△△△” 등 후보군을 추천했는데 이에 반감을 가진 주민들이 “목동도 아닌데 왜 목동이냐” “그냥 삽시다” 등의 항의 글을 적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목동’으로 시작하는 간판을 달기로 했지만, 양천구청 측이 명칭 변경을 거절하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이에 입주민대표 측은 구청을 상대로 아파트 명칭 변경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시장 왜곡 우려에 아파트 개명 막기도

현재 아파트 명칭은 입주민의 80%가 찬성하고 해당 시공사가 브랜드 사용에 동의하면 행정절차를 거쳐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이름 변경이 불가능한 적이 있었다. 2006년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정부가 아파트 명칭 변경을 막았다. 입주민이 원한다고 해서 아파트 명칭 변경을 허용하면 가격 왜곡과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아파트에 한해서만 아파트 개명을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네이밍 전쟁’이 부동산값에 민감해진 세태를 반영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명예교수는 “아파트의 명칭만 바꾼다고 그 아파트의 가치가 달라지진 않지만, 고급 브랜드일수록 아파트 가격이 높아지는 현상을 그대로 이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최근 부동산값이 폭등하면서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주민들이 확실히 늘어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