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블 마동석 제쳤다...감독 데뷔작으로 1위 오른 20년차 배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장편 연출 데뷔작 '장르만 로맨스'로 단숨에 개성 강한 신인 감독으로 주목받게 된 20년차 배우 조은지를 1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NEW]

장편 연출 데뷔작 '장르만 로맨스'로 단숨에 개성 강한 신인 감독으로 주목받게 된 20년차 배우 조은지를 1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NEW]

“촬영하면서 ‘파이팅’을 엄청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저 자신한테도 주문을 걸었죠.”

코미디 영화 ‘장르만 로맨스’(17일 개봉)로 장편 연출 데뷔한 배우 조은지(40)의 소감이다. 개봉 전날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조 감독은 “지금도 긴장되고 떨린다”며 웃었다.
영화는 이혼‧동성애‧사제지간‧비밀연애 등 얽히고 설킨 애증의 관계를 류승룡‧오나라‧김희원‧이유영‧성유빈‧무진성 등 배우들의 유쾌한 호흡으로 공감가게 풀어냈다. ‘파이팅’의 주문이 통한 걸까. 개봉 첫날 마블 액션 영화 ‘이터널스’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고, 사흘간 누적 관객 14만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기록했다.

"잔잔히 빵 터진다" 박스오피스 1위 데뷔

메가박스 예매앱 관객 평에도 “연기가 맛깔 난다” “너무 솔직하다” “잔잔히 빵 터진다” 등 호평이 많다. 조 감독은 각본까지 직접 쓴 단편 연출작 ‘2박 3일’으로 2017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과 주연배우(정수지)의 연기상 2관왕을 받기도 했다. 첫 상업영화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상황을 배우들의 맛깔난 연기로 와 닿게 그리는 특유의 연출로 단숨에 개성 강한 신인감독으로 부상했다.

영화 ‘눈물’(2001)로 연기 데뷔해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인간실격’까지 장르를 넘나든 20년차 배우경력 덕분일까. “배우 마음을 이해하는 감독”(이유영)이란 칭찬도 많다. 이 영화를 ‘장르가 조은지’라 자부한 류승룡은 “조은지 감독은 배우가 어떻게 구현해내야 할지 정확히 설명하되 항상 소곤소곤 다른 스태프‧배우들이 못 듣게 배려해줬다”며 이를 “황제 케어”에 빗댔다. 조 감독은 오히려 “과찬”이라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임상수·허진호…배우로서 만난 감독님들 참고했죠

또 “배우로서 출연작에서 도움 받은 디렉션을 많이 참고했다”고 했다. “임상수 감독님(‘눈물’)은 제가 놀라야 하는 장면이면 저한테 얘기 안하고 상대 배우한테 디렉션을 주신다. ‘갑자기 툭 쳐봐’ 해서 제가 자연스럽게 놀라는 장면을 표현해주셨다. 허진호 감독님(‘인간실격’)은 인물이 가진 감정선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바로 이전에는 이랬는데 이 장면에선 어떤 마음일까, 배우 생각도 많이 물어봐 주신다”면서다.
이번 영화가 처음엔 출연 제의인 줄 알았단다. “친분이 있던 제작사 대표님이 별다른 말 없이 시나리오가 있다고 보여주셨어요. 이유영 배우가 연기한 ‘정원’ 역인 줄 알았어요. 연출 제의란 걸 알고부터 고민이 엄청 많았죠.”

영화 '장르만 로맨스'에서 주인공 현(류승룡)의 아들인 고등학생 성경(성유빈, 오른쪽)은 이웃의 엉뚱한 주부 정원(이유영)과 생각지 못한 일탈을 겪게 된다. [사진 NEW]

영화 '장르만 로맨스'에서 주인공 현(류승룡)의 아들인 고등학생 성경(성유빈, 오른쪽)은 이웃의 엉뚱한 주부 정원(이유영)과 생각지 못한 일탈을 겪게 된다. [사진 NEW]

어떤 고민이었나.  

“시나리오는 재밌는데 내가 연출한다고? 일단 내가 각색해볼 테니 대표님이 생각한 ‘결’과 맞는지 얘기해달라고 했다. 한 달간 각색해 ‘결이 같다’는 피드백을 받고 2~3일 더 고민했다. 막연하게 ‘하고 싶다, 해야겠다’는 싶더라.”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끌렸나.  

“김나들 작가님의 말맛 나는 대사, 감정선이 와 닿았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

수신 거부 장면은 경험담, 실제 제 모습 많아 

원래 시나리오는 소설을 쓰는 대학생 유진(무진성)과 그가 짝사랑하는 유명 작가이자 대학교수 현(류승룡)의 이야기가 주축이었지만 각색을 통해 현의 이혼한 전부인 미애(오나라), 아들 성경(성유빈), 오랜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 순모(김희원), 엉뚱한 주부 정원(이유영) 등 주변 인물들도 함께 성장해나가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확장시켰다.
동성애자 대학생과 유부남 교수, 이혼한 부부와 자녀, 남고생과 이웃의 30대 주부 등 현실이라면 민감하게 여겨질 법한 갈등을 불편하지 않은 웃음으로 버무려낸 점도 돋보인다. “현실적인 상황의 코미디를 접목하면 관객들이 그들의 관계나 캐릭터 설정보다 감정을 더 따라와주지 않을까 했다“고 조 감독은 설명했다.

'장르만 로맨스'에서 이혼한 뒤에도 아들 문제로 하루가 머다하고 만나는 현(류승룡)과 미애(오나라). 배우들의 순발력 강한 코믹 호흡이 짠내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사진 NEW]

'장르만 로맨스'에서 이혼한 뒤에도 아들 문제로 하루가 머다하고 만나는 현(류승룡)과 미애(오나라). 배우들의 순발력 강한 코믹 호흡이 짠내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사진 NEW]

“캐릭터마다 저의 모습도 많이 담겨있죠. 순모가 수신 거부당한 장면은 제 경험담이었어요. 유진이 ‘바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상처를 받아요’ 하는 대사도 인간관계에서 제가 느낀 것을 투영했죠.”

캐스팅도 절묘하다.  

“지금 배우들이 딱 연상됐다. 류승룡 선배님은 상대에 따라 어떤 디테일을 살릴지를 잘 아신다. 김희원 선배님은 본래 감수성 풍부하고 섬세하다는 말을 들었다. 오나라 선배님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tvN) 정희 캐릭터가 미애와 내면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성유빈 배우는 ‘미스터 션샤인’(tvN)에서 처음 봤는데 그 나잇대의 연기 내공에 되게 놀랐다. 연기할 때 거침이 1도 없고 이해력이 빠르다. 이유영 배우는 일차원적인 감정도 묘하게 풀어낸다.”

글 쓰며 마음 달래다 감독 데뷔까지 하게 됐죠 

모델로 일하다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갓 스무살 영화 '눈물'로 배우가 됐다는 조은지 감독은 배우로든, 감독으로든, 자신을 불러주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했다. [사진 NEW]

모델로 일하다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갓 스무살 영화 '눈물'로 배우가 됐다는 조은지 감독은 배우로든, 감독으로든, 자신을 불러주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했다. [사진 NEW]

그의 연출 데뷔엔 글쓰기가 먼저였다. “글을 쓰면 뭔가 해소되고 저한테는 소통의 창구였다”고 했다. 2014년엔 그렇게 ‘이만원 효과’란 단편을 직접 연출했다. 아직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다. “카페에서 누군가 2만원을 잃어버렸는데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면서 그들의 성향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요. 출연 배우들과 편집본을 보긴 봤는데 언젠가 완성해야죠.”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쓴 게 단편 ‘2박 3일’이 됐다.
어릴 적 숫기 없고 친구가 많지 않았다는 그는 관계에 대해 늘 관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서 상대를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 때, 더 모르는 부분들이 쌓여서 오는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감독이든, 배우든, 저에게 자리가 주어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디든 가보려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