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코로나 이겨낸 당신 떠나라, 실크로드 대장정

중앙일보

입력 2021.11.20 08:00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91)  

“한(漢)나라 진(秦) 땅에 뜬 달, 흐르는 달빛이 명비(明妃)를 비추네. 한 번 옥관(玉關) 길에 오르더니, 서쪽으로 시집 간 명비(明妃) 돌아올 기약 없네. 연지산 긴 겨울에 눈꽃 다시 피는데, 고운 모습 시들어 오랑캐 땅에 묻혔네.”

“옥안장 말에 올라 한없이 눈물 흘리는 소군,
오늘은 한나라 궁녀, 내일은 오랑캐의 아내.”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시 2수이다. 날아가는 기러기가 왕소군을 얼핏 보고는 그 미모에 놀라 기절, 떨어져 죽었다고 하여 ‘낙안(落雁)’이란 별명이 있다. 절세미인이었지만, 궁녀의 얼굴을 그려 황제에게 바치는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간택되지 못한다. 그러다가 북쪽 오랑캐 흉노의 왕이 화친의 뜻으로 혼인을 요청하자 왕소군을 보내기로 한다. 흉노로 시집가던 날, 황제가 처음으로 소군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는 매우 놀란다. 이미 결정된 일이라 돌이킬 수는 없고, 화공 모연수의 목을 치고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한다. 이런 왕소군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고 왕오천축국전 혜초스님 발자취가 담긴 서역, 흉노, 돌궐 등 북방 유목민족의 땅이다.

실크로드에서 페르시아만은 육로와 해로가 마침내 접합되는 문명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사진은 페르시아만의 해상 실크로드와 초원 실크로드가 만났던 페르세폴리스 유적지. [사진 주강현]

실크로드에서 페르시아만은 육로와 해로가 마침내 접합되는 문명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사진은 페르시아만의 해상 실크로드와 초원 실크로드가 만났던 페르세폴리스 유적지. [사진 주강현]

코로나 끝나면 그들이 살던 서역을 실크로드 따라 한번 가보고 싶지 않은가. 역사의 발자취 따라 위대한 문화유산을 만나보는 대장정은 시안, 둔황을 거쳐 위구르의 땅 우루무치에 이른다. 제일 먼저 출발지 서안으로 가보자. 명나라 때는 ‘서쪽은 편안하다’는 뜻으로 서안으로 불렸고, 그 이전에는 ‘오랫동안 편안하다’는 뜻으로 장안으로 불렸던 곳이다. 중국 13개 왕조 1180년간 수도였고, 8000여 점의 말과 병사 유물이 있는 진시황의 무덤 병마용이 있다.

시안을 떠나 실크로드의 첫 관문이자 길목인 천수(톈수이)를 거쳐 하늘 문을 연 복희씨의 고장, 난주(란저우)로 간다. 중국몽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황하의 교통요지 간쑤성의 성도이다. 서역으로 가는 상인과 서역에서 사막을 건너온 상인들이 만나던 휴식처. 그곳에서 소동파의 동파육에 배갈을 곁들여 한잔하고, 초기 황하 문명을 간직한 간쑤성 박물관에 들러 당대의 유물들을 감상해보자.

다음 행선지는 만리장성 서쪽 끝에 있는 가욕관이다. 성루 건물이 웅장해 ‘천하제일 관문’이라 불린다. 동쪽 끝의 산해관과 함께 중국 장성 3대 경관으로 꼽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주위 둘레가 640m, 높이 10.4m로 흙으로 만든 성벽이다. 군사 요충지이자 서역으로 가는 출입국 관리소 역할을 한 곳이다. 고비 사막이 멀리 보이는 사막 한가운데 이런 성벽을 쌓은 것이 놀랍다.

다음은 돈황(둔황)이다. 타림 분지 동쪽, 사막의 오아시스에 지어진 도시로 동서 교역의 출발점이자 실크로드 마지막 기착지다. 낙타에 짐을 싣고 험준한 톈산산맥을 넘어온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이 ‘이제 다 왔구나’ 안도의 숨을 내쉰다는 바로 이곳. 그 유명한 둔황 석불은 천 년을 두고 실크로드를 동서로 왕래하던 구법자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팠던가 보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기에 이런 석굴을 천 개나 만들었을까. 동서의 민족이 만나고 종교가 교차하는 곳, 모래바람 속 황량한 서역의 끝자락에서 위대한 문화유산을 감상해 보기 바란다.

황량한 땅에서 긴 세월을 이어온 실크로드를 따라가보면 그들의 음식도, 문화도, 풍경과 인종도 모두 각양각색이다. 사진은 중국 우루무치 사막. [EPA=연합뉴스]

황량한 땅에서 긴 세월을 이어온 실크로드를 따라가보면 그들의 음식도, 문화도, 풍경과 인종도 모두 각양각색이다. 사진은 중국 우루무치 사막. [EPA=연합뉴스]

실크로드 여정의 마지막 기착지 우루무치.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이다. 서역 최대의 도시로, 이슬람 문화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유구한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위구르인은 투르크계 민족이다. 744년 제국을 세웠을 만큼 강성했으나 지금은 위구르족 탄압이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춤과 노래는 선율이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해 들을수록 빠져든다. 그들의 독특한 문화가 오래 보존되기를 바란다.

여정이 못내 아쉬운가. 그렇다면 좀 더 욕심을 내어서 톈산산맥을 넘어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갈 수 있다. 실크로드 총 길이는 장장 6400㎞에 이른다.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길은 톈산남로, 북쪽 길은 톈산북로라 부른다. 타클라마칸은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의 위구르어이다. 당나라 스님 현장은 이 사막을 대당서역기에서 회고하기를.

“사람들이 지나간 후에 어떤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으니 사람들은 길을 잃고 헤맨다. 사방에 황사만 가득하니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죽은 자의 해골을 주워 모아 표지로 삼는다. 여기에는 물도 없고 풀도 없고, 모래폭풍이 일면 사람이고 짐승이고 정신을 잃고 망연자실해진다.”

사는 게 힘들고 코로나에 지쳤는가. 모든 것 밀쳐두고 저 먼 곳 아득한 서역으로 떠나 보자. 황량한 땅에서 긴 세월을 살아왔던 그들. 음식도 문화도 풍경과 인종도 독특하고 각양각색이다. 천 년 전 낙타 타고 사막을 가로 지르던 대상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실크로드 대장정 한번 떠나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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