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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백화점서 군산 이성당·대전 성심당 빵 살 수 있는 거 제 덕이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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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백화점(百貨店). 수많은 상품을 종류별로 진열하고 파는 대규모 소매점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분명했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10여 년부터는 저마다 백화점을 찾는 이유가 다양해졌다. 백화점 내 음식점에서 식사하거나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듣거나 식품관에서 먹거리를 사는 식이다. 되레 물건을 사려는 수요는 줄었다.

같은 제품이라면 집안에서 온라인으로 좀 더 싸게 사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백화점의 치열한 고민이 시작된 것도 이때쯤부터다. 일단 고객이 백화점에 와야 물건을 팔던, 음식을 팔던 매출을 올릴 수 있어서다. 윤향내(43)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크래프트 프로젝트(Craft Project) 팀장은 이런 고민의 중심에 있다. 프랑스에서 제과‧요리 관련 직종에 종사하다가 2010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한 이후 줄곧 ‘맛집’ 유치와 자체 식품 브랜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윤향내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크래프트 프로젝트 팀장이 '6시 오븐'의 대표 제품인 사워도우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롯데쇼핑]

윤향내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크래프트 프로젝트 팀장이 '6시 오븐'의 대표 제품인 사워도우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롯데쇼핑]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군산 ‘이성당’의 단팥빵, 이에 못지않은 역사를 자랑하는 대전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를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은 윤 팀장 덕분이다. 윤 팀장은 “롯데백화점에 가면 유명한 빵집의 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방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예상대로 빵을 사러 왔다가 다른 매장에서 옷이나 화장품을 사거나 백화점을 오지 않던 고객의 방문을 끌어내 ‘분수 효과’를 톡톡히 냈다”고 말했다.

전국의 수많은 맛집 중에서도 빵집에 집중한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국민 먹거리’라서다. 윤 팀장은 “연령대나 성별에 상관없이 밥 못지않은 주식이 빵이라는 점이 끌렸다”고 말했다. 7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노포 유치는 쉽지 않았다. 이성당 대표를 만나기 위해 3개월을 꼬박 이틀에 한 번씩 매장을 찾았다. 빵만 사고 돌아오기도 하고 매장 의자에 마냥 앉아있기도 했다. 윤 팀장은 “설득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국 진정성”이라며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진정성을 드러낸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판알보다 ‘셰프의 마음’에 집중” 

제과 관련 전문성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주판알이 아니라 셰프의 입장에서 백화점에 입점했을 때 가장 걱정하는 점,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를 통해 제시한 방안이 ‘오픈 키친’이다. 예컨대 롯데백화점 내 성심당 매장에선 튀김소보로를 만드는 과정을 실제로 볼 수 있다. 매장 안에서 주요 공정을 처리한다. 윤 팀장은 “빵은 사람‧시간‧정성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데, 배송 등의 과정을 거치면 본점의 맛이 훼손될 것을 가장 걱정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점처럼 각 매장을 작은 공장으로 꾸며서 직접 만드는 프로세스를 갖췄다”고 말했다.

맛집 유치에 이어 윤 팀장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자체 베이커리 브랜드인 ‘6시 오븐’이다. 좀 더 롯데백화점의 색을 담은 특화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윤 팀장은 “이성당이나 성심당도 롯데백화점에만 단독 입점했지만, 좀 더 마니아층을 백화점으로 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아이템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자체브랜드인 '6시 오븐'의 대표 제품. [사진 롯데쇼핑]

롯데백화점 자체브랜드인 '6시 오븐'의 대표 제품. [사진 롯데쇼핑]

6시 오븐의 대표 제품은 ‘사워도우’다. 얼핏 돌멩이 같은 모양의 사워도우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시큼한 맛이 나는 ‘식사빵’이다. 천연발효종을 사용해 반죽한 뒤 오븐 속 돌판에 얹고 스팀을 가하면 반죽이 확 부풀면서 뻥 터진다. 이 빵을 굽기 위한 오븐 가격만 5000만원이다.

6시 오븐은 2018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첫 매장을 연 후 현재 본점‧노원점‧동탄점에 매장이 있는데, 매장별로 한 달 평균 8000개가 팔린다. 윤 팀장은 “사실 매출 증대를 노렸다면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빵을 만들어야 하지만, 확실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기 위해 좋은 장비는 물론 건강한 식사빵이라는 이색적인 콘셉트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전남 나주 남파고택(박경중가옥)의 장을 활용한 자체 음식점인 ‘남파고택’도 비슷한 이유로 탄생했다. 윤 팀장은 “종가 어르신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지만, 300년을 이어 내려온 종갓집의 장맛을 많은 사람이 맛보게 하자는 각오로 매달렸다”며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 같은 음식을 내놓기 위해 지속해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팀장의 목표는 ‘단골 만들기’다. 그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저번에 먹고 맛있어서 또 왔어요’라는 말”이라며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 백화점의 숙제이자, 나의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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