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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담장 안의 정의, 담장 밖의 정의…이 문구 지키려면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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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정의란 무엇인가』는 영미권을 통틀어 8만권 정도 팔렸는데, 한국에서는 무려 200만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샌델 교수의 내한 공개 강연에는 1만4000석 규모의 대학 노천극장이 청중으로 넘쳐났다고도 하니, 한국 사람들의 정의에 대한 관심과 열의,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 유독 많이 팔렸다. 한국 사회의 정의에 대한 갈망을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8월 20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강연을 한 모습. 중앙포토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 유독 많이 팔렸다. 한국 사회의 정의에 대한 갈망을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8월 20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강연을 한 모습. 중앙포토

그런데, 위 책이 ‘가장 많이 팔리고도 가장 읽히지 않은 책’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 걸 보면, 그만큼 ‘정의’는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인 반면 너무나 철학적이고 난해한 주제로 인식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진리에 맞은 올바른 도리’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의의 개념일 것이다. 아울러 정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실제 상황에서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의는 같은 것일까?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하여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의는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명상록『팡세』에서 “한 줄기의 강이 가로막는 가소로운 정의여! 피레네 산맥 이편에서는 진리, 저편에서는 오류”라고 말함으로써 정의의 상대성을 명쾌하게 지적하였다. 정의로움에 대하여 나만이 옳다는 독선을 경계해야 하는 대목이다.

최근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선택적 정의’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기존에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표현이다. 여야 간의 정쟁과 그사이에 끼인 검찰의 법 적용을 두고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폄하할 때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보편타당해야 할 정의를 자기편에는 유리하게, 상대편에는 불리하게 적용하는 것을 선택적 정의라고 개념화한 것 같다. 정의는 보편적으로 정당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만약 편을 갈라 우리 편은 무엇을 해도 정의롭고 상대편은 무조건 정의롭지 못하다는 선택적 정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차라리 불의(不義)라고 보는 것이 맞다.

 검찰 CI의 5개 직선 중 중앙에 있는 칼의 형상은 정의를 뜻한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모습. 연합뉴스

검찰 CI의 5개 직선 중 중앙에 있는 칼의 형상은 정의를 뜻한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모습. 연합뉴스

그렇다면 검사에게 있어 정의란 무엇일까? 검사의 정의도 일반인들의 보편적 정의 감정에 포용 돼야 할 것이나, 검사는 정의 실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이므로 일반인보다 더욱 실천적인 정의가 요구된다. 로마신화 속 정의의 여신이자 정의(Justice_)의 어원인 ‘유스티티아(Iustitia·그리스 신화의 디케)’ 이래 법(Ius)과 정의(Iustitia)는 동일시돼 왔다. 이는 법이 곧 정의이므로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를 ‘Ministry of Justice’라고 하고, 대법관은 정의 그 자체를 의미하는 ‘Justice’라고 한다.

검사는 임관하면서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겠다’는 ‘검사선서’를 함으로써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검찰의 정신을 담은 검찰 CI(Corporate Identity)의 다섯 개 직선 중 중앙에 있는 칼의 형상은 정의를 의미한다. 이러한 검사의 다짐과 검찰의 상징은 법의 공정한 집행을 통한 정의 실현이 검사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임을 역설하고 있다.

검사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한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Giving people what they deserve)’이 정의라고 설파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검사가 실현할 정의는 죄를 지은 만큼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보다 지나치거나 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즉 검사가 너무 가혹하게 검찰권을 행사하거나 반대로 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당사자나 공동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검사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지난 5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임명장을 받은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박범계 장관은 이 자일에서 "검찰청 담장 안팎의 정의가 서로 달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뉴스1

지난 5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임명장을 받은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박범계 장관은 이 자일에서 "검찰청 담장 안팎의 정의가 서로 달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1000명의 사람은 1000개의 정의를 말한다. 그렇다고 검찰청 담장 안팎의 정의가 서로 달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파스칼의 말에 못지않은 명언으로 검사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말이다. 다만 ‘검찰청 담장 밖의 정의’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의 선택적 정의가 아니라 국민들의 보편타당한 정의일 때 위 말은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검사는 범죄를 대상으로 법을 집행함에 있어 ‘정의의 사도’로서 정의실현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하지만, ‘나만이 정의롭다’라고 생각하는 확증편향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검사는 피레네 산맥의 저쪽이든, 검찰청 담장 밖이든 나만의 정의가 아닌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편타당한 정의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검사는 정의의 상대성을 인정하여 나만 옳다는 독선에서 벗어나되, 공평함을 상실한 선택적 정의에는 빠지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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