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놔두고 흉기 난동 현장 이탈한 경찰관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0 00:29

업데이트 2021.11.2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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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01면

경찰의 부실 대응이 논란이 되는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의 현장 출동 경찰관 2명이 19일 대기 발령 조치됐다. 송민헌(52) 인천경찰청장이 “철저한 감찰을 진행하겠다”고 사과한 지 하루 만이다. 해당 경찰관은 인천경찰청 논현경찰서 관할 한 지구대 소속 A경위와 B순경이다. 이들은 지난 15일 오후 5시 6분쯤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에서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자가 중상을 입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층간소음이 흉기 난동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사건 당일 오후 12시 50분쯤 빌라 4층에 사는 가해 남성(48·구속)이 소란을 피운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아래층에 사는 남성이었다. 3층의 피해 가족은 3개월 전 이사 온 4층 남성과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이사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경찰은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혐의로 조사할 테니 추후 경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4시간여 뒤 “4층 남성이 현관문을 발로 차고 있다”는 3층 남성의 신고가 다시 경찰에 접수됐다. A경위와 B순경이 현장에 출동했다. 출동 당시 A경위는 3단 봉과 권총을 소지했고 B순경은 3단 봉과 테이저건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은 양측의 말다툼이 이어지자 이들을 분리했다. A경위는 가해 남성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신고자인 3층 남성을 빌라 밖으로 데려가 조사했다. B순경은 3층에서 신고자의 부인과 딸에게서 피해 사실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3층으로 내려온 가해 남성이 B순경을 밀친 뒤 3층 남성의 부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B순경은 무전기로 구급차를 찾는 등 지원 요청을 하며 현장을 이탈해 1층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1층에 있던 피해자의 남편은 비명을 듣고 3층으로 올라갔지만, A경위와 1층으로 내려온 B순경은 건물 밖에 머물다 뒤늦게 합류했다. 이들은 사건 경위 조사에서 “빌라 공동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곧장 피해자 남편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다른 주민의 도움으로 공동현관문 문을 열고 3층으로 올라갔을 땐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 남성을 막고 있었고, 피해자는 목 부위를 다치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그의 딸도 얼굴과 손 등을 다친 상태였다. 가해 남성과 몸싸움을 벌인 신고 남성도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가해 남성을 체포한 뒤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했다.

피해자 측은 경찰의 현장 대응이 부실했다고 반발했다. 현장을 이탈하고 뒤늦게 올라오는 등 경찰의 대처가 늦어져 가해 남성이 피해 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관 현장 이탈, 어떤 경우도 정당화 안 돼”

피해 남성이 힘이 빠진 가해자를 결박한 뒤에야 경찰이 도착했다는 게 피해자 측의 주장이다. 목 부위를 흉기에 찔린 피해 여성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피해 가족 측은 19일 중앙일보에 “경찰관이 뛰쳐나가는 것을 본 피해자 가족의 딸이 가해 남성을 막아섰는데 엄마가 피를 흘리면서도 ‘다친다’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며 “딸은 ‘지금도 엄마의 말이 환청처럼 들린다’며 잠도 못 자는 등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경찰관이 흉기를 휘두르는 가해자 앞에 피해자들을 남기고 현장을 이탈할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피해자를 버리고 도망간 경찰 파면 요구”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B순경이 신입이라 사건 대응에 미숙했던 것 같다. 현장을 떠나면 안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현장 매뉴얼에 따르면 대상자가 경찰이나 제삼자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상태라면 테이저건 등을 사용할 수 있다”며 “당시 상황이 테이저건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요건은 충족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장 출동 경찰관이 이를 인식했는지는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관 집무집행법상 경찰관이 범죄 현장을 이탈했다면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되기 힘들다”며 “무전기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테이저건 등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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