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자 닉슨 대통령 되자 미·중 관계 더 얼어붙어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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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29면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03〉

닉슨은 대만에 신경을 썼다. 키신저의 두 번째 베이징 방문을 앞두고 캘리포니아 지사 레이건을 대만에 특사로 파견 했다. 오른쪽 첫째가 국민당 주석 장징궈. 왼쪽 셋째와 넷째는 총통 옌자간 부부. 1971년 10월 9일, 타이베이. [사진 김명호]

닉슨은 대만에 신경을 썼다. 키신저의 두 번째 베이징 방문을 앞두고 캘리포니아 지사 레이건을 대만에 특사로 파견 했다. 오른쪽 첫째가 국민당 주석 장징궈. 왼쪽 셋째와 넷째는 총통 옌자간 부부. 1971년 10월 9일, 타이베이. [사진 김명호]

1955년에 시작된 미·중 대사급 회담은 합의를 도출하기 힘들었다. 1969년 1월 반공주의자 닉슨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되자 양국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취임 1주일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뉴욕타임스 기자가 손을 들었다. “공산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닉슨은 단호했다. 중국의 적대 행동을 열거했다. 여지도 남겼다. “저들이 변하기 전에 우리의 정책이 변할 일은 없다.” 당시 중국은 문혁 3년째, 미 제국주의와 소련 수정주의 타도로 온 중국이 난리를 떨 때였다.

중, 미 제국주의·소련 수정주의 비판

아유브 칸의 뒤를 이은 파키스탄 대통령 야히아 칸(오른쪽)은 닉슨의 중국 방문을 위한 키신저의 베이징 극비방문에 큰 역할을 했다. [사진 김명호]

아유브 칸의 뒤를 이은 파키스탄 대통령 야히아 칸(오른쪽)은 닉슨의 중국 방문을 위한 키신저의 베이징 극비방문에 큰 역할을 했다. [사진 김명호]

중국 외교부도 성명을 냈다. “조국을 배신하고 도망친 전 네덜란드 주재 외교관 랴오허수(廖和淑·요화숙)를 미 중앙정보국이 미국으로 빼돌렸다. 중국 인민과 전 세계 인민은 역대 미국 정부의 의발(衣鉢)을 계승한 닉슨 정부의 의도를 똑똑히 봤다”며 2월 20일로 예정된 135차 중·미 대사급 회담 불참을 선언했다.

닉슨은 월남전쟁을 확대시켰다. 취임 3개월 후 주월 미군이 50만명에서 53만5000명으로 늘어났다. 미군 폭격기와 함정이 수시로 중국 영공과 영해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중국은 엄중한 경고가 고작이었다. 소련도 중국을 건드렸다. 우수리강에 있는 작은 섬 전바오다오(珍寶島)에서 소련변방군이 중국변방군을 기습했다. 사상자가 발생한 중국은 소련에 항의했다. 무지막지한 용어도 서슴지 않았다. 소련 정부의 대응도 강경했다. “원래 우리 영토다. 중국변방군이 우리 땅에 침입했다. 공격도 중국 측이 먼저 했다.” 소련은 여론 매체를 총동원했다. “중국 군대가 국경선을 넘어왔다”며 국내외에 선전 공세를 퍼부었다. 미국주재 소련대사가 미 국무장관 로저스에게 전바다오 사건을 상세히 설명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중국도 발끈했다. 열흘간 27개 성과 자치구에서 소련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연인원 4억명이 동원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소련도 18개 도시에서 중국 성토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다. 모스크바에서는 성난 시민 10만명이 중국대사관을 에워싸고 중국타도를 외쳐댔다.

저우언라이와 슝샹후이. [사진 김명호]

저우언라이와 슝샹후이. [사진 김명호]

복잡한 배경 속에 중국공산당 9차 전국대표자대회가 열렸다. 회의는 미 제국주의와 소련 수정주의 비판으로 일관했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 2년 전 문혁의 와중에서 밀려난 천이(陳毅·진의), 네룽쩐(聶榮臻·섭영진), 쉬샹첸(徐向前·서향전), 예젠잉(葉劍英·엽검영) 등 4명의 개국 원수(元帥)가 중앙위원으로 복귀했다. 회의를 마친 마오쩌둥이 원수들에게 두 가지 임무를 줬다. “각자 베이징에 있는 공장에 가라. 말단 조직에서 작업하며 사업을 지도해라. 천이의 책임하에 공동으로 국제정세를 연구해서 서면으로 보고해라. 구체적인 내용은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에게 들어라.” 저우는주도면밀했다. 외교부와 외사 관련 기관에 있는 전문(電文)과 정보자료 외에 미국, 대만, 홍콩, 일본의 중요 언론에 보도된 중국 관련 기사를 원수들에게 배부했다. 일 할 공장도 직접 선정했다. 천이는 차량 수리공장, 예젠잉은 신화 인쇄창, 쉬샹첸은 차량 부품공장, 네룽쩐은 화공 약품 공장에 배정했다. 공장 책임자들에게도 지시했다. “매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일간 원수들의 노동과 휴식시간, 음식, 안전, 직공들이 원수들을 대하는 태도에 만전을 기해라. 궁금한 점은 예의를 갖춰 물어보고, 원수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라.” 원수들은 나머지 4일간은 국제관계 자료를 열람하고 매달 두 번 토론회를 열었다.

마오, 미·소에 대응할 묘책 찾기 부심

신중국은 파키스탄과 우의가 돈독했다. 1963년 3월 베이징을 방문한 파키스탄 대통령 아유브 칸(오른쪽 둘째)과 외무장관 알리 부토를 접견하는 마오쩌둥. 왼쪽 첫째가 천이. [사진 김명호]

신중국은 파키스탄과 우의가 돈독했다. 1963년 3월 베이징을 방문한 파키스탄 대통령 아유브 칸(오른쪽 둘째)과 외무장관 알리 부토를 접견하는 마오쩌둥. 왼쪽 첫째가 천이. [사진 김명호]

홍위병들에게 혼이 나고 현직에서 쫓겨난 원수들은 국제정세를 연구하라는 마오 주석의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연구 결과가 주석의 심의를 거친 9차 대회 결의 내용과 다를 경우 보고서를 작성할 일도 난감했다. 마오도 원수들의 우려를 알고 있었다. 저우언라이를 통해 연구의 필요성을 전달했다. “주관적 인식은 객관적 실제와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이다. 객관적 실제는 부단히 발전하고 변하는 속성이 있다. 주관적 인식도 발전과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 기존의 생각이나 결론도 부분적으로, 혹은 전부 바꿔야 될 시점이 있다. 지금 국제사회는 복잡하다. 모든 역량을 비판, 투쟁, 개조에 치중하다 보니 국제문제에 소홀했다. 네 사람은 전략과 안광(眼光)이 뛰어난 원수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성숙한 방법으로 나를 보좌해라.” 주의사항도 구두로 전했다. “토론 내용은 비밀에 부쳐라. 토론에 타인의 참가는 불허한다. 비서들을 대동하지 마라. 입이 싸고 자신을 원수들과 대등하게 보는 습관이 있다. 밖으로 새 나가면 홍위병들이 원수들에게 무슨 난동을 부릴지 모른다. 보조 인원은 국제문제에 정통한 캐나다 대사 슝샹후이(熊向暉·웅향휘) 한 사람만 배정한다. 미·중·소 삼각관계를 세밀히 살피고 대처 방안을 강구해라.”

원수들은 매주 4일간 저우언라이에게 공급받은 자료에 매달렸다. 외국어에 능통한 슝샹후이는 외국자료 번역으로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같은 자료를 봐도 해석은 제각각 이었다.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서로 반박하고 설득하다 보니 다들 녹초가 됐다. 토론회는 6차례, 총 17시간이 걸렸다. 일치된 의견을 천이가 정리했다. 중·미관계 부문만 소개한다. “미국은 중국과 소련의 모순을 이용하려 하고, 소련은 중국과 미국의 모순을 이용하려 한다. 우리는 소련과 미국의 모순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삼국시대, 유비는   손권과 연합해 조조에 대항했다. 지금 국제정제는 삼국시대와 다를 바 없다. 중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연합해 국경을 마주한 소련을 견제해야 한다. 닉슨이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세스크와 파키스탄 대통령 아유브 칸과 나눈 대화를 보면 미국도 중국을 더 이상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멀리 떨어진 루마니아보다 우리와 우의가 돈독하고 거리도 가까운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에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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