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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세상 속 침묵의 외침 빛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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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18면

나무와 돌의 작가 최병훈

지난해 가을 미국 휴스턴미술관 신관 개관에 맞춰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 웨이웨이 등 세계적인 작가 8명과 함께 의뢰받은 조각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아트 퍼니처’ 디자이너 최병훈(69·전 홍익대 미대 학장)이 개인전을 시작했다. 12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침묵의 메시지’(A Silent Message·12월 12일까지)다.

“어지럽고 요란한 세상에 침묵이 주는 의미를 전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붙였어요. 지금까지 해온 ‘태초의 잔상(Afterimage of Beginning)’ 시리즈의 최신작 중심으로 꾸며보았습니다.”

20대 때 마야·잉카 문명 등 값진 체험

인도네시아 현무암인 바잘트로 만든 ‘아트 벤치’에 앉은 최병훈 작가. 거친 돌모래를 깎아내고 단단한 검정 속살을 그라인더로 갈아내 맨질맨질하게 만들었다. 신인섭 기자

인도네시아 현무암인 바잘트로 만든 ‘아트 벤치’에 앉은 최병훈 작가. 거친 돌모래를 깎아내고 단단한 검정 속살을 그라인더로 갈아내 맨질맨질하게 만들었다. 신인섭 기자

최병훈의 작품들은 그러나 침묵하지 않는다. 검정 우레탄으로 마감한 미국산 물푸레나무는 표면 위로 우아한 나뭇결을 드러내고, 울그락불그락한 형상의 괴석과 모래흙 속에 ‘먹’을 숨긴 인도네시아산 현무암은 그런 나무를 듬직하게 떠받치고 있다. 나무와 돌, 원시와 현대, 자연과 인공, 맨질맨질함과 까끌까끌함, 무광택과 옻칠의 자르르한 윤기 같은 서로 극렬하게 대비되는 요소가 절묘한 충돌과 균형을 이루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상념에 빠지게 한다.

3개의 전시장은 각각 ‘빈장의 공간’ ‘빈상의 공간’ ‘빈좌의 공간’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빈’은 ‘비어있다’는 의미일 수도, ‘빛난다(彬)’는 뜻일 수도 있다. ‘장’은 물건을 넣어두는 가구, ‘상’은 작은 테이블, ‘좌’는 긴 의자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의 작품은 공예이면서 가구이자 조각이기도 한데, 이런 장르 구분이 다 부질없다며 그가 일찌감치 표방한 것이 ‘아트 퍼니처’다. 1993년 첫 개인전 때부터 나무는 물론 아크릴과 알루미늄까지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제가 목공예 작가인데, 꼭 나무만 사용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한국에서 처음으로 ‘아트 퍼니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가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직장생활 덕분이다. 제대 후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디자인실에서 근무하면서 ‘수출 입국’의 기치 아래 세계 곳곳에 우리 물건을 판매하는 자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관용여권을 들고 현지 출장을 떠난 스물 예닐곱 젊은이에게 멕시코의 마야 문명, 아프리카 세네갈의 원시 예술, 페루의 잉카 문명은 요즘 말로 어마무시한,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리비아 출장길에 경유했던 로마에서 고대 유적지 돌무더기가 준 감흥도 빼놓을 수 없다.

“엄청난 행운이었죠. 그 나이에 인류의 문명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었다는 것이요. 정말 가슴이 뛰고 소름이 돋았어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 지구 반대편에도 엄청난 게 있구나’하는. 그 뒤로 오래된 유적지나 폐사터를 탐방하는 게 제 여행의 주요 조건이 됐어요.”

두 번째 기회는 작가 등용문이던 ‘국전’에서 입선, 특선 등을 여러 차례 수상하다가 마침내 1987년 제2회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었다. “그때 핀란드 해외여행권을 부상으로 받았어요. 경기대 교수 시절이었는데, 덕분에 88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 미대에서 연구교수로 지내며 유럽의 최신 디자인 경향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산 물푸레나무와 자연석을 결합한 ‘태초의 잔상 020-542’(2020). [사진 가나아트센터]

미국산 물푸레나무와 자연석을 결합한 ‘태초의 잔상 020-542’(2020). [사진 가나아트센터]

내친김에 이듬해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 객원교수를 역임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데 진력했다. ‘자연 그대로의 미가 최선이다. 그것을 작품 안에 채우지 말고 덜어내고 비워내자-.’ 그의 철학이 담긴 작품을 프랑스 파리 최고의 예술가구 전문 화랑인 ‘다운타운 갤러리’가 눈여겨보았고 96년 첫 전시를 열었다.

“제 오프닝 날 아침에 근처에 있는 다른 갤러리들을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제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로 들어갔는데, 제 작품들이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유럽의 작가들과 확실히 달랐어요. ‘아, 이런 담백함 때문에 내 작품을 전시하겠다고 한 거구나, 앞으로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를 현장에서 깨달은 거죠.”

세 번째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조경용으로 국내에 수입된 인도네시아산 현무암 ‘바잘트(basalt)’를 2012년 무렵 접하게 된 것이다. 모래흙으로 된 돌 껍질 속에 검디검고 매끈하고 단단한 ‘속살’을 가진, 특이한 돌이었다. “처음에 한 덩어리를 사서 2년 정도 보고만 있었어요. 이걸 어떻게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가 서예의 ‘일필휘지’의 느낌을 살려, 붓 획을 긋듯 속살을 드러내고자 했죠.”

2014년 뉴욕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은 거친 돌덩어리에 새겨진 굽이치는 계곡물과 잔잔한 호수의 명경지수 같은 작품을 보며, 명상에 빠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돌은 수억 년의 시간이 응집된 대상이잖아요. 거기에 제 감성과 터치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아주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돌 찾으려 전국수석지도 만들어”

정년 퇴임을 한 지도 몇 년이 지났지만, 그는 회고전을 할 생각이 없다. 회고전은커녕,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세계적인 미술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거기에는  “내 작품보다 더 훌륭한 작품들이 등장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탓에 최근 2년간 베니스에는 가질 못했지만, 대신 방향을 국내로 돌렸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 일원에서 열린 수묵비엔날레도 다녀왔다.

“작가는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죠. 교단에 있을 때도 학생들에게 늘 ‘여행을 떠나 가슴 뛰는 일을 찾아보라’고 당부하곤 했어요. 제가 직접 겪었으니까. 저는 지금 돌 찾는 여행을 하고 있어요. ‘전국수석(水石)지도’도 만들어 놓았죠. 좋은 돌을 만나면 좋은 작품이 또 나오겠죠. 저의 종점이 어딜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포브스 12월호에서 보다 상세한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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