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드론 강사, 57세 스타트업 인턴…“정년 없이 계속 도전”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0 00:02

업데이트 2021.11.2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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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06면

제2의 인생 일구는 ‘액티브’ 시니어들

은퇴 후 드론 레크리에이션 강의를 하고 있는 ‘드론 그랜파’ 강호식씨. 정준희 기자

은퇴 후 드론 레크리에이션 강의를 하고 있는 ‘드론 그랜파’ 강호식씨. 정준희 기자

“100세 시대에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퇴직 후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재취업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의 소나무를 드론으로 소독할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그길로 드론 학원에 등록했어요. 왕복 4시간 거리의 학원에 다니면서 드론에 푹 빠졌습니다. 일을 그만둬야겠단 결심이 설 정도였죠. 딸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아빠는 누굴 가르치는 걸 좋아하잖아. 아빠 그거 딱 맞아’라며 응원해주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 62세, 드론 강사로서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직장에 있을 때의 수입과 비교하면 적은 강사료지만, 수강생들의 피드백이 곧 제 원동력입니다.”

생활비 벌고 자아실현 위해 재취업

33년간 직장생활을 한 강호식(65)씨는 훨훨 나는 드론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KBS에 공채로 입사했던 강씨는 기술과 행정 업무를 넘나들며 경력을 쌓았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약 연장 제의도 받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단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우연히 만난 드론에 빠진 그는 14세 청소년들과 경쟁하며 드론 교관 자격증을 따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드론 활용법을 가르치는 ‘드론 그랜파’가 된 배경이다.

과거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곽정숙(65)씨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시니어 돌봄 전문가로 변신했다. 아동과 노인은 엄연히 다른 존재지만, 둘 다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으로서 갈고 닦은 손재주와 소통 능력은 경로당 코디네이터, 시니어 케어 매니저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10년 차 시니어 돌봄 전문가다. 곽씨는 “치매에 걸리면 요양 시설부터 알아보는 문화를 바꾸고 싶다”며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대상자 중심의 돌봄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퇴직 후 치킨집 창업을 고민하던 시니어 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활동적인 제2, 제3의 인생을 사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변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5~79세 가운데 재취업 의사를 밝힌 사람은 68.1%로, 10년 전(2011년 58.7%)과 비교해 약 10%포인트 증가했다. 은퇴 후에도 자아실현을 위해 사회 일선에 나선다는 의미다. 이들은 노후 생활비를 마련(58.7%)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33.2%) 재취업에 도전한다. 경로당 방문, 지하철 종점 여행이 유일한 취미였던 전통적 시니어와는 다른 모습이다.

시니어 모델 패션쇼 참가자들. [뉴시스]

시니어 모델 패션쇼 참가자들. [뉴시스]

이들은 온라인 소비시장에서도 큰손이다. 그동안 2030 세대가 주 고객이었던 배달 앱, 온라인 쇼핑몰에는 최근 50대 이상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다. 지난 8월 하나금융연구소 ‘세대별 온라인 소비행태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년 대비 배달 앱 서비스 결제 규모는 50대에서 163%, 60대 이상에서 142%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몰 쿠팡의 결제금액 증가율도 60대 이상(148%), 50대(123%) 순으로 높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액티브 시니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호황을 누린 세대”라며 "일정 수준 이상 자산이 축적돼 있어 노년에도 자기자신을 위해 소비할 여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라고 전했다.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전통적 시니어와 달리 자기의식과 목표 지향성도 뚜렷하다. 강씨는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 강사 직종 특성상 진입 장벽이 높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니 극복할 수 있었다”며 “여러 분야를 경험한 수강생들과 교류하며 삶의 지혜를 배워가고 있다”고 전했다. 곽씨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액티브 시니어의 길을 선택했지만, 돌아보니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앞으로도 인생 3모작, 4모작에 계속 도전할 계획”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시니어 전문성 발휘 돕는 정책 부족”

퇴직 후 30대 스타트업 대표와 일하는 이장희씨.

퇴직 후 30대 스타트업 대표와 일하는 이장희씨.

현대,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에서 20년간 광고, 홍보 캠페인을 진행했던 이장희(57)씨는 영화 ‘인턴’(2014)의 주인공이 됐다. 30대인 스타트업 대표와 함께 일하게 된 것. 그는 퇴직 후 자신의 경험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중소기업 전문인력 사업에 도전했다.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의한 곳도 있고, 외부 강의 요청도 물밀 듯 들어왔다. 하지만, 치매 환자였던 할머니와 거동이 불편하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시니어 헬스케어 기업 ‘세븐포인트원’의 인턴직을 선택했다.

그는 “젊었을 땐 경쟁에서 이기는 게 최고인 줄 알고 앞만 보면서 달려왔지만 그게 행복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내가 가진 능력이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정년 없이 앞으로도 계속 일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8월 인턴을 수료한 그는 현재 세븐포인트원의 마케팅 총괄(CMO)을 맡고 있다. 이씨를 고용한 이현준 세븐포인트원 대표는 “2030 세대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미리 챙겨주고, 사업 진행 방향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준 존재”라며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청년 못지않은 열정으로 어떻게든 회사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에 대표인 저도 많이 보고 배운다”고 답했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80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 중 고령 인구의 비중도 16.4%로 늘어나 한국은 2025년이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될 전망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부양해야 할 인구도 점점 늘어난다”며 “액티브 시니어의 커리어와 노동력을 활용한다면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 인턴 사업에 참여한 플레이시드스쿨 홍원희 대표는 “시니어 인구는 늘어나는데, 이들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은 아직 부족하다”며 “청년들이 사회에 진입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니어 인력을 활용한다면 세대 갈등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년 연장, 청년 일자리 안 줄게 충분히 논의 후 결정해야
2019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65세 정년 논쟁’에 불씨를 붙였다. 당시 재판부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법·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가동 연한을 65세로 상향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대비하려면 고용(정년) 연장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해 정년 연장이 본격적으로 화두에 올랐다.

정년 연장 또는 폐지는 해외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독일은 2029년까지 정년을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한 독일은 늘어나는 사회보장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고령화와 인력 부족을 겪는 일본은 지난 4월 근로자가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이 노력해야 한다는 ‘고령자고용안정법’을 법제화했다. 미국과 영국은 나이를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여론에 각각 1986년, 2011년에 정년을 폐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용시장은 이들 국가와 다르다.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청년 체감경제고통지수는 집계 이래 최고치(27.2)를 기록했다. 청년 인구가 줄어들어 구인난에 신음하는 일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독일과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6월 완성차 업계에서 일하는 MZ세대 직원이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년 연장 법제화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었다.

고령화 속도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년 연장 논의를 피하긴 어렵지만, 사회적 합의에 다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정년 연장 수혜자가 5명 늘어날 때 청년층 일자리는 1개씩 줄었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이 급격하게 이뤄지면 부작용이 상당할 수 있다”며 “정년을 증가시킬 필요성은 높지만,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증가시켜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일본처럼 최소 5년에서 20년까지의 긴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화 사회에서는 연금 수령 기간을 늦출 수 있도록 일자리를 오래 유지해야 후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며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정 교수는 다만 “정년을 법적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노사 간의 충분한 의논을 통해 결정해야 하며, 청년 일자리가 축소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령자 고용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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