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뛰자 아파트 어린이집 줄폐원, 아이 어디 맡기나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0 00:02

업데이트 2021.11.20 00:09

지면보기

763호 03면

위기의 가정어린이집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가정어린이집의 피해 구제 방안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가정어린이집의 피해 구제 방안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경기 하남시에 사는 최예진(가명·33)씨는 최근 자녀가 다니는 가정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폐원 소식을 들었다. 내년에 당장 어린이집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아파트 단지 내 125㎡ 규모로 개원한 어린이집은 입주 당시 전세가가 4억원 초반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9억원대에 거래될 만큼 값이 껑충 뛰었다. 집주인은 어린이집 측에 현 시세인 14억원에 매매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어린이집 원장은 “매매는 어려운 상황이라 차라리 전세가를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하는 걸 제안했지만, 집주인이 막무가내로 매매가 아니면 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20여 명의 아이들은 내년에는 다른 단지 어린이집을 찾아야 할 상황이다. 최씨는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해도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 주변 가정어린이집 3곳이 모두 폐원하고 1개만 남은 상황”이라며 “그곳도 이미 정원이 꽉 차서 대기가 긴데 다니던 곳마저 갑자기 사라진다니 앞으로 애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의 전셋값 폭등에 가정어린이집이 때아닌 폐원 위기에 몰렸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대폭 올리거나 계약 연장을 거부해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로 인해 맞벌이 부모의 출퇴근이 정상화되면서 보육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지만 문 닫는 어린이집이 속출하며 보육 공백이 예고된다. 가정어린이집은 개인이 가정 또는 그에 준하는 곳에 설치·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말한다. 대개 아파트 단지 내 1층을 임대해 인근 주민들의 보육시설로 활용한다.

정부는 임대차 시장 안정화와 세입자 보호 차원으로 지난해 7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전·월세 계약을 한 차례 더 연장하자고 요구할 수 있다. 임대료도 종전 계약의 5% 이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문제는 가정어린이집이 주택임대차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법은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만 해당하기 때문에 가정어린이집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 또한 사업자등록증이 아닌 비영리법인 고유번호증을 발급받는다. 결과적으로 상가 임대차보호법에도 해당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은 3만5352개로, 이 중 약 44%인 1만5529개가 가정어린이집이다. 영·유아 보육의 절반가량이 가정어린이집에서 이뤄지지만, 그 수는 해마다 감소세다. 2016년 전국 2만598곳에 달한 가정어린이집은 5년 동안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1만5529곳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과 경기의 가정어린이집은 각각 34.2%, 19.4% 줄어 다른 지역에 비해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가정어린이집의 경우 다른 기관에 비해 0~1세 아동의 보육 비중이 높아 보육 대란의 우려가 더 크다.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가정어린이집이 임대차 보호법 사각지대에 놓여 문제가 발생한 사실은 인지한다”면서도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영유아 감소로 전체 어린이집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정어린이집의 감소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국 어린이집 수는 2013년 4만3770곳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세다. 그러나 일선 어린이집과 학부모의 반응은 다르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 1층에서 10년 넘게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김성미(가명·52)씨는 “10년 전까지 어린이집 수가 꾸준히 증가한 것은 그만큼 맞벌이 가정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국공립이나 민간어린이집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보육 수요를 담당해 온 가정어린이집이 상당 부분 폐원하면 아이들을 맡길 곳이 사라지고, 보육교사가 일자리를 잃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6월 출산한 유지은(33)씨는 내년 3월부터 인근 가정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고 일터로 돌아갈 예정이다. 유씨는 “아이가 크면 사설 유치원이나 학원 등의 대안이 있지만, 돌도 안된 아이를 맡길 곳은 어린이집이 유일하다”며 “1자녀 맞벌이로 국공립 어린이집은 (대기가 길어) 꿈도 못 꾸고, 그나마 자리가 있는 곳이 가정어린이집인데 가까운 곳이 계속 문을 닫아 옆 동네까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어린이집 폐원이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와 가정어린이집 임대차 보호를 위한 국민고충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연합회는 이 자리에서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가파른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어린이집이 재계약 시점에서 평균보다 높은 시세로 계약하지 않으면 폐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10월 가정어린이집 대출에 대한 LTV 완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중 은행의 대출 기피 현상이 지속하고 있어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중규 연합회장은 “가정어린이집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주택·상가임대차보호법 예외 조항으로 가정 어린이집이 포함될 수 있도록 법적 보호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가정어린이집에 이자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민원이 제기됨에 따라 연말에 지침 개정 전 지자체와 시설 등의 의견을 종합해 지원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