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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2] 라이더의 성지 피반령, 고갯마루 밑엔 라이더의 '묘지'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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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02면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2> 라이딩 행렬 줄 잇는 피반령

“찾아오는 오토바이·자전거 수가 승용차와 맞먹는 고개.”

피반령은 라이더들의 성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고갯마루 부근에서 자전거 라이더와 오토바이 라이더가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충북 청원군 가덕면 방향으로 동시에 질주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피반령은 라이더들의 성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고갯마루 부근에서 자전거 라이더와 오토바이 라이더가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충북 청원군 가덕면 방향으로 동시에 질주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한 라이더가 한 말이다. 허언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15일, 평일임에도 오전 11시~오후 1시 승용차 32대가 지나갈 때 오토바이·자전거 27대가 지나갔다. 그렇다고 이 고개가 백두대간의 그것처럼 높이를 자랑하거나 절경을 선사하는 건 아니다.

피반령(皮盤嶺).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과 보은군 회인면을 잇는 해발 360m 고개다. 피반령은 오토바이와 자전거 라이더의 성지로 꼽힌다. 특히 충청권 라이더가 애용한다. 피·수·말·수·피(피반령~수리티재~말티재의 왕복)의 110㎞ 코스나, 피반령~대청호 일주 79㎞ 코스를 택한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문의대교 근처에서 바라본 대청호. 피반령 라이딩을 하는 라이더들은 이곳 문의대교까지 온다. 김홍준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문의대교 근처에서 바라본 대청호. 피반령 라이딩을 하는 라이더들은 이곳 문의대교까지 온다. 김홍준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문의대교 근처에서 바라본 대청호. 라이더들은 치반령~수리티재~말티재 루트(왕복 110km)를 가거나 피반령~대청호 일주 코스(79km)를 택한다. 사진 가운데에서 조금 오른쪽 너머에 피반령이 있다. 김홍준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문의대교 근처에서 바라본 대청호. 라이더들은 치반령~수리티재~말티재 루트(왕복 110km)를 가거나 피반령~대청호 일주 코스(79km)를 택한다. 사진 가운데에서 조금 오른쪽 너머에 피반령이 있다. 김홍준 기자

고개 이름 속 ‘피’에 얽힌 설화  

“어휴 말도 마. 주말이면 아주 득실득실 혀.”

피반령 고갯마루에서 20년째 장사를 하는 서복례(69)씨가 커피를 건네주며 말했다. 고개 밑 가덕면 인차리의 한 주민이 “좀 오는 가 봅디다”라고 말한 수준이 아니란 얘기다. 서씨는 “지난 주말만 해도 기념사진 찍으려고 이 표지석 앞에 줄을 쭉 설 정도”라고 말했다.

피반령 고갯마루 부근 오르막에서 라이더들이 힘을 내고 있다. 김홍준 기자

피반령 고갯마루 부근 오르막에서 라이더들이 힘을 내고 있다. 김홍준 기자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피반령 도로를 깔았는데, 예정보다 1년이나 늦게 끝난 난공사였다. 고갯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절박하게 이 고개를 애용했다.

중앙일보 1968년 10월 9일 자에는 이 험난함과 절박함이 보인다. ‘8일 하오 4시 30분쯤 충북 청원군 가덕면 계산리 속칭 피반령 마루에서 107명(다른 매체는 128명)을 태우고 청주로 가던 버스가 높이 75m의 바위 벼랑으로 굴러떨어져 13명이 숨지고(7명은 병원에서 사망) 94명이 몹시 다쳤다… 사고가 난 곳은 이쪽저쪽 30리 고개라고 불리는 경사 30도가량의 가파르고 좁은(길 너비 약 5m) 험한 길…. ’사고자 대부분이 보은에서 추석을 쇠고 일터로 돌아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1926년에 청주~보은 버스 운행이 시작됐는데, 광복 이후 이런 대형 교통사고가 3차례나 일어났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난 류정환 시인은 “험한 고개를 넘어야 했지만, 보은과 청주를 오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에 삶을 지탱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절실했다”고 밝혔다.

피반령

피반령

글자 ‘피’는 고개 이야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피(血)’의 설화다. ‘오리(梧里) 정승’ 이원익(1547~ 1634)이 경주 목사로 부임 중, 자신에게 농간을 부리는 현지 관리들로 하여금 손과 무릎으로 고개를 넘게 했다. 발에 피가 흥건해져 ‘피발’이 돼 넘었다고 해서 피발령, 나중에는 피반령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

그런데, 이원익이 태어나기도 전인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제16권, 충청 회인현)’에서는 이미 피반대령(皮盤大嶺)으로 부르며 ‘가장 높고 험한 곳’으로 표현했다. 게다가 조선 시대 경상도에는 상주·진주·성주 세 고을에 목을 두었지만, 경주에는 없었다. ‘이원익설’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피반령 고갯마루에서 충북 보은군 회인면 방향으로 향햐는 고갯길이 보인다. 고개 반대편의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방향보다 굴곡진 부분이 많아 라이더들이 긴장한다. 김홍준 기자

피반령 고갯마루에서 충북 보은군 회인면 방향으로 향햐는 고갯길이 보인다. 고개 반대편의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방향보다 굴곡진 부분이 많아 라이더들이 긴장한다. 김홍준 기자

‘피’와 관련된 설화는 또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의 정기가 예사롭지 않다며 고개에 이르러 산허리를 베게 했는데, 피가 철철 흘러 10리나 흘러내려 갔단다. 그래서 피반령으로 부르게 됐단다.

하지만 류정환 시인은 “옛날 벼농사가 성하지 않을 때 백성들이 주식으로 삼았던 기장(稷: 논에서 볼 수 있는 ‘피(稗)’와는 다르다)을 ‘피’라 했는데, 피밭이 있는 고개라는 말로 ‘피밭령’이라 불리던 것이 ‘피반령’으로 기록됐다는 설이 그럴듯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회인면에 인산객사(仁山客舍)가 있다. 1655년에 지어진, 관리와 외국 사신들이 묵던 곳이다. 그 앞에는 고추와 무를 말리고 있는 좌판이 펼쳐져 있을 정도로 한적하다.

고개 반대편 가덕면에는 외로운 석탑이 있다. 이 계산리 오층석탑은 드넓은 절터에 홀로 남아있다. 고려 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족히 5000㎡ 넘는 터를 지녔음에도 절은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미스터리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서 피반령을 넘으면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 인산객사(仁山客舍)가 있다. 조선 시대 출장 가는 중관리나 외국 사신이 머무른 곳이다. 이 정당은 1983년에 수리했는데 이때 발견된 문서에 의하면 효종 6년(1655)에 새로 지어지고, 순조 3년(1803)에 고쳤다. 김홍준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서 피반령을 넘으면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 인산객사(仁山客舍)가 있다. 조선 시대 출장 가는 중관리나 외국 사신이 머무른 곳이다. 이 정당은 1983년에 수리했는데 이때 발견된 문서에 의하면 효종 6년(1655)에 새로 지어지고, 순조 3년(1803)에 고쳤다. 김홍준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에 있는 계산리 오층석탑. 이곳에 있던 절은 고려 시대 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름도. 주춧돌 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이 드넓은 절터에 홀로 남은 탑은 1969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김홍준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에 있는 계산리 오층석탑. 이곳에 있던 절은 고려 시대 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름도. 주춧돌 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이 드넓은 절터에 홀로 남은 탑은 1969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김홍준 기자

2007년 청원상주고속도로(현재 청주상주고속도로, 당진영덕고속도로의 일부 구간)가 생기고 피반령 터널이 뚫리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험난함과 절박함이 묻어났던 피반령 옛길을 가지 않는다. 고개 양쪽에는 한적함과 외로움이 웅크리고 있지만, 고갯마루에는 라이딩의 흥분과 묘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과하면 종종 대가도 따르게 된다.

오전에는 자전거, 오후엔 오토바이 라이더 많아

“오전에는 자전거, 오후에는 오토바이, 늦은 오후에는 스포츠카가 등장합니다.”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피반령 고갯마루를 찍고 충북 청원군 가덕면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의 헤어핀(급격한 굴곡 구간)에서 자동차와 자전거, 오토바이가 교차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피반령 고갯마루를 찍고 충북 청원군 가덕면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의 헤어핀(급격한 굴곡 구간)에서 자동차와 자전거, 오토바이가 교차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노승현(33·대전)씨는 지난 15일 오토바이를 몰고 와 피반령 고갯마루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는 “피반령에 120~130회쯤 온 것 같다”며 피반령의 ‘흐름’을 알려줬다.

이미 오전에는 청주에서 자전거를 몰고 온 장철한(47)씨가 “올해 세 번째 피반령”이라며 고개를 넘었다. 자전거 라이딩 입문 10년 차라는 양건직(44·대전)씨와 동료는 “80㎞ 피반령~대청호 라이딩 중”이라고 했다. 양씨는 “고통스러운 업힐(오르막), 아찔한 다운힐(내리막)은 어느 고개에나 있다”면서 “하지만 피반령은 아홉 번 꺾인다는 난도와 묘미, 수리티재와 말티재(혹은 염티재)로 이어지는 관문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지는 매력이 충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굴곡진 헤어핀 같은 곳에서는 안전 또 안전이다”고 강조했다.

오후 2시가 넘자 과연 노씨의 말대로 오토바이 등장이 잦아졌다. 노씨는 서복례씨를 ‘이모’라고 불렀다.“으이그, 여기 오는 애들(라이더를 말함)이 다 이모라고 불러. 애들한테 제발 살살 몰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대서 그렇지.”  서씨는 “얼마 전에 오토바이 몰고 온 친구가 넘어지면서 저기 가드레일에 쏙 들어가기도 했다”며 “오토바이 엔진 소리에 시끄럽다고 고개 밑의 주민들이 민원을 넣기도 해서 경찰도 종종 올라온다”고 말했다.

피반령 고갯마루의 서낭당. 한 무속인은 이 서낭당에서 굿을 벌인 뒤, 유튜브에 ″죽은 이들의 혼이 너무나 센 곳″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홍준 기자

피반령 고갯마루의 서낭당. 한 무속인은 이 서낭당에서 굿을 벌인 뒤, 유튜브에 ″죽은 이들의 혼이 너무나 센 곳″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홍준 기자

보은경찰서 관계자는 “피반령은 장거리 라이딩의 입구 격이라는 걸 우리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피반령에서 사고예방을 위해 한국교통안전공단 등과 합동으로 지속적인 홍보와 단속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한 오토바이 라이더는 “불법개조와 과속은 지극히 일부 라이더들이 벌이는 행위인데 동호회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늦은 오후, 노씨의 말대로 스포츠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등장했다.

피반령 정상 표지석. 주말이면 라이더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설 정도다. 김홍준 기자

피반령 정상 표지석. 주말이면 라이더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설 정도다. 김홍준 기자

가드레일 밖 비탈엔 라이더 추모비
고갯마루에는 서낭당이 있다. 한 무속인은 “피반령은 한국전쟁, 교통사고 등으로 영적 기운이 강력한 곳”이라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드레일 밖에 서 있었다. 그 가드레일 아래 산비탈. 비석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라이딩을 사랑했던 이들을 기리며 북쪽 청주와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 2030. 생전에 신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이크 부츠도 있다. 라이더들의 성지 아래에는 라이더들의 추모비가 있는 것이다. 클라이머의 성지 인수봉 밑에 산악인 추모비가 있는 것처럼.

피반령은 도로 자전거(로드 바이크) 외에도 산악 자전거(MTB) 동호인들이 즐기는 곳이다. MTB 라이더들이 임도를 이용해 라이딩을 하고 있다. 이 근처에 '라이더의 묘지'가 있다. 2021.11.16

피반령은 도로 자전거(로드 바이크) 외에도 산악 자전거(MTB) 동호인들이 즐기는 곳이다. MTB 라이더들이 임도를 이용해 라이딩을 하고 있다. 이 근처에 '라이더의 묘지'가 있다. 2021.11.16

해가 진다. 즐기기 위해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과는 다른, 생계를 위해 바이크를 몰고 고개를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1968년 버스 속 그 사람들처럼.

피반령 고갯마루 부근에서 라이더들이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방향으로 내려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피반령 고갯마루 부근에서 라이더들이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방향으로 내려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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