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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수상한 타이밍'에 떴다, 중·러 군용기 카디즈 진입 노림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일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 군용기 7대가 동해상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순차적으로 침범한 뒤 여섯시간 가까이 무력시위를 벌였다. 침입한 지점은 독도 동북방 상공이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예정됐던 한ㆍ미ㆍ일 외교차관 공동 기자회견이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보이콧’으로 무산된 지 이틀만이다.

중국·러시아 군용기 카디즈 진입 후 퇴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국·러시아 군용기 카디즈 진입 후 퇴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ㆍ러 군용기 9대 무단진입...합참 "전술조치"

합참은 “군은 KADIZ 진입 이전부터 F-15K 및 KF-16 전투기와 KC-330 ‘시그너스’ 공중급유기를 투입, 우발상황에 대비한 정상적인 전술조치를 했다”고 했다.

한일 독도 갈등 때 9대 무더기 진입 #공군선 공중급유기 첫 투입 대응

군이 KADIZ 침입에 대응하며 공중급유기를 투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군은 통상 외국 군용기가 KADIZ를 침범할 경우 전투기를 보내 대응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들이 KADIZ에 진입한 시각은 오전 10시 50분, 이탈한 시각은 오후 4시 38분이다. 무려 5시간 48분 동안 독도 인근 상공을 휘젓고 다닌 셈이다. 중국은 훙(轟·H) 폭격기 2대를, 러시아는 투폴례프(Tu) 폭격기 2대, 수호이 전투기 4대, 조기경보 관제기 A-50 1대를 보냈다.

중국은 한ㆍ중 직통 망을 통해 통상적인 훈련이라는 입장을 한국에 전달했다. 앞서 11일 한국과 러시아는 양국이 해ㆍ공군 간 직통망 설치ㆍ운용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이번에 가동하지 않았다. 합참 측은 러시아 측에서 아직 준비를 다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이날 KADIZ 진입을 두고선 “중ㆍ러의 연합훈련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3각 협력' 빈틈 보일 때마다 반복

중ㆍ러의 KAIDZ 침범은 갈수록 빈번해지는 추세인데, 한ㆍ미ㆍ일 3각 안보 협력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특히 한ㆍ일 간 갈등 상황을 이용해 균열을 노리는 측면이 크다.

지난해 12월 22일에도 중ㆍ러 군용기 19대가 KAIDZ에 진입해 연합훈련을 펼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중국은 H-6 폭격기 4대, 러시아는 수호이 계열 전투기와 Tu-95 폭격기 등 15대를 보냈다. 당시 한ㆍ일은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일본 전범기업들의국내 자산을 현금화하는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중ㆍ러는 2019년 7월 23일에도 연합해 KAIDZ를 무단 진입했다. 당시 러시아 공군기는 한국 영공까지 침범했다. 당시는 일본의 수출 규제 보복으로 인해 한ㆍ일 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맞았을 때다. 침범한 지역도 독도 인근이었다. 일본은 자국 영토를 침범했다며 발끈했고, 이런 억지 독도 영유권 주장에 한ㆍ일 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당시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현 미국외교협회 국장)은 중ㆍ러의 합동훈련 및 KADIZ 무단 진입에 대해 "타이밍 자체가 중ㆍ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ㆍ일 마찰을 이용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중ㆍ러 군용기의 KADIZ 무단 진입 관련 사진. 러시아 국방부 영문 홈페이지,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 제공자료 캡처.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중ㆍ러 군용기의 KADIZ 무단 진입 관련 사진. 러시아 국방부 영문 홈페이지,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 제공자료 캡처. 연합뉴스.

미ㆍ중 대결 속 '3국 공조' 떠보기

이번 중ㆍ러의 KADIZ 도발 또한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의 약한 고리인 한ㆍ일관계를 흔들어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에 정상회담이 이뤄진 직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차관급 3자 협의를 열었는데, 이 자체가 대중 견제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지난 1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예정됐던 한ㆍ미ㆍ일 외교차관의 공동 기자회견은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ㆍ일 갈등으로 무산됐다. 당시 모리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3국 협의 시작 전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문제 삼으며 공동 기자회견에 나설 수 없다고 통보했고, 결국 미국 측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홀로 기자회견장에 서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가 침범 지점을 독도 인근으로 잡은 것 역시 3국 외교차관 공동기자회견이 파행한 직접적 이유가 독도 갈등이란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ㆍ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중국, 러시아는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자꾸만 점검하려 할 것"이라며 "최근 들어 한ㆍ미ㆍ일 외교차관 회담에서 미묘한 갈등 구도가 불거진 만큼 이번 중ㆍ러의 KADIZ 침범은 이를 파고드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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