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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백 든 여성의 눈빛…이 사진 1장이 中커트라인 보여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올과 예술' 전시회에 걸렸다가 중국 여론의 비판을 받은 첸만의 사진. [웨이보 캡쳐]

'디올과 예술' 전시회에 걸렸다가 중국 여론의 비판을 받은 첸만의 사진. [웨이보 캡쳐]

화장기 없는 얼굴에 스모키 화장을 한 작고 날카로운 눈, 묘하게 내려뜨린 앞머리에 청나라 후궁들이 사용하던 손톱 ‘호갑투’를 낀 여성이 디올(Dior) 가방을 들고 있다. 과거와 현대, 욕망과 분노가 아이러니하게 교차하는 이 기묘한 사진은 중국 유명 사진 작가 첸만(陳漫·41)의 작품이다. 12일 상하이에서 시작된 ‘예술과 디올’ 전시회 ‘레이디스 디올’에 걸렸다.

중국 상하이 웨스트 번드 아트센터에서 12~23일 열리는 '디올과 예술' 전시회. 첸만의 문제의 작품이 이곳에 전시됐다. [웨이보 캡쳐]

중국 상하이 웨스트 번드 아트센터에서 12~23일 열리는 '디올과 예술' 전시회. 첸만의 문제의 작품이 이곳에 전시됐다. [웨이보 캡쳐]

그런데 중국인들 눈에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진 한장과 작가에 대한 비난이 집요하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 작가에게서 악취가 난다. 다른 사진을 보면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중국 여성을 이렇게 촬영했을까.”
“중국에 추악한 낙인을 찍으면서 그걸 예술이라고 말하는 건가.”
“중국을 왜곡한 첸만의 사진이 인민의 감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모든 중국인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런 행동을 비판할 권리가 있다.”
“추악함을 고급스러움이라고 표현하다니. 중국의 노예성을 찍는 것을 즐기는 모양이다.”

2012년 영국 패션잡지 아이디(i-D) 표지에 실린 첸만 촬영 '중국 12색'. [웨이보 캡쳐]

2012년 영국 패션잡지 아이디(i-D) 표지에 실린 첸만 촬영 '중국 12색'. [웨이보 캡쳐]

수백 건의 게시글과 댓글들 중 우호적인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첸만이 2012년 찍은 사진까지 소환됐다. 영국 패션잡지 ‘아이디’(i-D)의 표지를 장식한 12장의 얼굴. 제목은 ‘중국 12색’이었다. “나는 이것이 중국적인지 제대로 된 중국 여성을 표현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국내 사진은 그렇지 않은데 해외 사진에선 왜 중국인 이미지를 비하하나. 서구의 인정을 충족시키기 위한 왜곡된 미학이다.”

중국 여성을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1차원적 비난은 서양의 자본에 굴복했기 때문이란 결론으로 이어졌다. 중국 후베이(湖北) 위성티비 앵커는 방송이 끝난 뒤 따로 찍어 올린 영상에서 “아름다움은 다원적일 수 있다. 물건을 보는 눈도 다르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본연의 아름다움은 같다. 서구 자본에 영합하는 예술가들은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돈을 벌더라도 금도는 있어야 한다”고 직격했다.

중국 후베이위성티비 앵커는 “서구 자본에 영합하는 예술가들은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돈을 벌더라도 금도는 있어야 한다”고 직격했다. [웨이보 캡쳐]

중국 후베이위성티비 앵커는 “서구 자본에 영합하는 예술가들은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돈을 벌더라도 금도는 있어야 한다”고 직격했다. [웨이보 캡쳐]

물론 모든 중국인의 의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난은 중국 관영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중국 CCTV는 “예술은 피부나 인종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채워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고, 중국 여성신문은 “기형적 미학, 그 뒤에 중국 문화를 왜곡하려는 의도와 외국 브랜드의 미학이 혼재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통해 처음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금세 비판에 가세했다.

1980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첸만은 디올 뿐 아니라 보그, 엘르 등 세계 유명 패션 잡지의 표지 사진을 찍는 등 현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작가 중 한 명이다. [웨이보 캡쳐]

1980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첸만은 디올 뿐 아니라 보그, 엘르 등 세계 유명 패션 잡지의 표지 사진을 찍는 등 현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작가 중 한 명이다. [웨이보 캡쳐]

첸만은 어떤 예술가일까.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의 ‘인물’은 첸만을 ‘중국에서 가장 비싼 사진 작가’라고 소개한다. 뉴욕타임즈는 그를 가리켜 ‘중국 시각 개혁의 선구자’라고 평했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태어난 80년생인 첸만은 보그(VOGUE), 엘르, 코스모폴리탄 등 세계 유명 패션 잡지의 표지를 찍었다. 판빙빙 등 중국 최고 스타들과의 작업을 도맡았고 만리장성 위 롤러스케이트, 전선 머리 등 도발적이고 경계를 넘어선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로 호평도 받았다.

첸만이 2009년 만리장성에서 촬영한 사진. [바이두 캡쳐]

첸만이 2009년 만리장성에서 촬영한 사진. [바이두 캡쳐]

첸만이 촬영한 '환경 보호' 연작 사진 중 하나. [바이두 캡쳐]

첸만이 촬영한 '환경 보호' 연작 사진 중 하나. [바이두 캡쳐]

그러나 디올은 중국을 더 자극하지 않았다. 예술의 영역이라고 항변하지도, 공개적으로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사진을 내렸다. 중국은 디올 뿐 아니라 명품 업계의 단일 세계 최대 시장이다. 불필요한 논란은 득이 되지 않는다고 봤을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중국에선 낯설지 않다. 돌체앤가바나는 2019년 젓가락으로 피자를 먹는 광고를 내보냈다가 “중국 문화를 조롱했다”, “중국인에 대한 차별”이란 비난에 직면해 광고를 철회했다. 같은 해 자라(ZARA)는 중국 소녀를 광고 사진에 등장시켜 문제가 일자 곧바로 내려버렸다.

그럼에도 첸만의 사진을 둘러싼 논란을 놓고 창작의 파격성과 표현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중국 사회의 좁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인들의 일상적인 시각과 벗어나면 '왜곡' 또는 '추악'으로 몰며 분노하는 게 중국의 태도라는 지적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힘을 키우면서 중국 지상주의가 되살아나 서구와의 대결적 인식 역시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싱가포르 매체 연합조보는 “외국 유명 브랜드가 최근 중국에서 끊임없이 벽에 부딪힌 것은 서구에 대한 대중인식이 악화됐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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