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입주 필수코스? 고지서 들고와 집안 훑고간 경찰 [더오래]

중앙일보

입력 2021.11.19 11:00

업데이트 2021.11.19 11:05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4)

2015년에는 청와대 앞을 지날 때 검문이 심해 경찰이 행선지가 어디인지 일일이 물어봤다. 지금은 청와대 검문도 없어지고 청와대 통행이 24시간 개방되어 있다. [연합뉴스]

2015년에는 청와대 앞을 지날 때 검문이 심해 경찰이 행선지가 어디인지 일일이 물어봤다. 지금은 청와대 검문도 없어지고 청와대 통행이 24시간 개방되어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부암동에 이사 온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경찰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경찰은 고지서를 들고 집으로 왔다. 그러니깐, 고지서를 주려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현관문을 열고 우리는 그저 얼떨떨해서 고지서를 받았고, 우리 집 현관에 서 있던 그 경찰은 집안을 훑어보고 우리를 위아래로 보더니 인사를 하고 나갔다. 경찰이 가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오면서 “고지서를 주려고 경찰이 집에 오는 경우가 있어?”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 추측을 했다.

우리가 이사를 한 2015년, 그해에는 청와대 앞을 지날 때 검문도 심했다. 청와대 앞길을 지나갈 때마다 경찰이 불러 세워서 행선지가 어디인지 일일이 물어봤다. 저녁 9시 이후에는 청와대 주변 길은 통제가 되기도 했다. 경비가 삼엄하고 짐짓 불편한 마음에 청와대 근처 산책은 가지 못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다들 같은 마음으로 그 기간에는 청와대 주변은 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청와대 검문도 없어지고 청와대 통행이 24시간 개방되어 있다.)

남편은 이런 정황을 보며 혹시 “우리 신원을 확인하려고 온 건 아닐까” 얘기를 했다. 내가 웃으면서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했다. 남편이 “부암동에 오는 사람은 다 거치는 관문이 아닐까”하는데 그러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경찰이 고지서 주려고 우리 집에 온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부암동에 이사 오면 다 거치는 과정인가. 이 동네 사는 건 뭔가 알 수 없는 절차가 있는 건가 생각을 하며 궁금증이 남았지만 사는 게 바빠 그냥 그렇게 넘어갔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이웃들을 사귀게 되고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며 경찰이 왔었냐는 질문을 했는데 다들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결국 그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 경찰은 왜 우리 집에 고지서 하나 주려고 직접 찾아왔을까.

코로나 이후 한적한 부암동.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이후 관광객도 줄고 시위도 줄면서 청와대 주변 주민들은 많은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사진 김현정]

코로나 이후 한적한 부암동.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이후 관광객도 줄고 시위도 줄면서 청와대 주변 주민들은 많은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사진 김현정]

우리가 부암동으로 이사 오고 시국이 참 어수선했다. 2016~2017년 광화문과 청와대 주변은 늘 시위로 들끓었다. 대통령 탄핵 시위와 탄핵 반대 시위였다. 많은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모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여러 번 시위대를 구경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위로 인한 고통은 생각보다 컸다. 교통이 통제되는 건 물론이고, 청와대 주변에 사는 통인동, 청운동 주민들은 소음으로 고통받았다. 거리가 상당한 우리 집까지 마이크 소리와 함성이 들리기도 했다. 동네 주민들이 소음으로 인한 고통으로 시위대를 향한 시위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시기 임신과 출산을 했었는데 불편한 일이 많았다. 시위가 있는 날이면 퇴근길에 차가 막혀 30분이면 올 거리를 광화문에서 2시간씩 갇혀있고는 했다. 임신 초기 출혈이 있어 병원에서 조심하라고 할 시기에는 퇴근길에 시위대가 청와대 앞을 막고 있어 차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으며 쉬며 2시간을 걸어온 적도 있었다. 갑자기 비까지 내리는데 서러운 마음에 울면서 집에 갔다. 그런데, 청와대 근처 살았던 사람들이면 이런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아랫집 언니는 그 시기 삼청동에 살았다고 한다. 퇴근길에 종종 길이 막혀 집에 가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분명 자기 집인데 집으로 가는 길이 경찰로 다 막혀있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갈 길을 찾아 돌고 돌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동네에 사는 친정집에 가고 그랬다고. “우리 집인데 우리 집에 못 갔던 걸 생각하면 내가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거 맞나” 할 정도로 황당했다고 한다. 아이를 삼청동 방향으로 어린이집에 보냈던 엄마들도 시위대로 그 기간에는 등 하원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다시 동네 근처로 옮기고 어쩌고 하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그 시기에 시위가 집중돼서 그러려니 했지만 사실, 광화문과 청와대 주변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1시간 전에 출발했음에도 시위대를 만나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기차역에 늦게 도착해 기차를 놓친 적도 많았고, 약속에 늦은 적도 허다하다. 심지어 운전하다가 시위대가 골목길로 들어오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시위대에 둘러싸여 공포에 떤 적도 있다. 광화문, 삼청동, 서촌 등은 안 그래도 관광객이 많은 곳인데 시위대까지 겹쳐서 ‘이 동네는 그냥 이게 일상이구나’ 하며 피해 다니며 지냈던 것 같다. 동네 아이들도 시위대를 자주 보니 모르는 구호를 따라 하며 장난을 치고는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 바이러스 이후 관광객도 줄고 시위도 줄면서 청와대 주변 주민들은 많은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거리도 한적하고, 시위대가 없어서 소음에서도 교통 체증에서도 자유로웠다. 주말에 광화문 방향으로 길을 나서도 부담이 없었다. 우리 동네가 가진 매력과 주변 동네들의 특색을 마음껏 즐기며 조용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위드코로나와 함께 시위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아이 등원 길에 이유도 모르고 20~30분 정체가 되어 서 있거나 주말 광화문 길을 나섰다가 시위대를 만나거나 하기 시작했다. 다시 그 고통이 시작되는 건가, 불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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