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플래그십 매장(Flagship Store·대표매장), 백화점 매장, 그리고 팝업매장(Pop-up Store). 이 중에서 요즘 명품·패션브랜드에겐 팝업이 가장 대표적인 매장이 되고 있다.
팝업매장은 ‘떴다 사라진다(pop-up)’는 말 그대로 잠시 열었다가 닫는 임시 매장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규모와 형태가 진화하면서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건물 한 동을 통째로 빌리고, 너른 들판에 피라미드를 만들거나, 7m짜리 대형 트리를 만드는 등 공을 들이고 여는 횟수도 잦다.

11일 버버리가 제주 서귀포에 문을 연 팝업 스토어. 거대한 피라미드를 닮았다. 사진 버버리
세상에 없던 놀라운 공간 만들라
지난 11일 제주 서귀포 방주교회 근처에 반짝이는 피라미드가 솟아올랐다. 영국 패션 브랜드 버버리의 팝업 스토어 ‘이매진드 랜드스케이프 제주’로, 전체 표면이 거울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이다.
디지털 영상과 최신 상품들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옆에는 카페도 들어섰다. 건축물 윗부분에는 제주의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브랜드 관계자는 “버버리 겉옷들을 선보이는 글로벌 이벤트 목적으로 선보이는 공간”이라며 “제주도의 아름다운 환경을 배경으로 몰입형 브랜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시 매장의 의미였던 팝업 스토어가 점점 압도적 규모의 경험 전시관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진 버버리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도 오는 25일부터 약 한 달간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 ‘홀리데이 팝업’을 연다. 1층 매장이 아닌, 5층에 위치한 실내정원(사운즈 포레스트)에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다섯 개의 전시장과 7m 대형 트리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곳에선 티파니 박스와 카드에 글자를 새기거나,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등 고객 체험 행사도 열린다.
이곳에는 지난 9월 거대한 핸드백이 설치된 ‘디올’의 팝업 스토어가 들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는 지난달 백화점 1층에 알프스 전통 목조 산장을 설치했는데, 보름 남짓 운영되는 임시 매장이었지만 내부를 천연목으로 제작해 나무의 나이테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정교했다.

더현대 서울 1층에 열었던 프라다 '샬레.' 알프스 전통 목조 산장을 재현했다. 사진 프라다
근사한 팝업매장을 위해 유명 디자이너가 동원되기도 한다. 지난달 서울 청담동에 약 한 달간 운영된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의 팝업 전시에는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가 참여했다. 한국의 정원과 유럽의 살롱을 한 공간 안에 우아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팝업매장은 ‘와우(WOW)’ 효과를 주는 큰 규모로 만들어 매장 자체가 간판이자 광고물이 되도록 하는 추세다. 보는 사람들이 ‘인증샷’이 찍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콘텐트를 제공해 소셜미디어(SNS)에 입소문을 내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가 참여한 까르띠에의 '클래시 드 까르띠에' 전시 공간. 사진 까르띠에
백화점 팝업 성지 ‘신강’‘더현서’‘롯데월드몰’
팝업매장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경험 거리를 선사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지만, 결국 매출로도 연결된다.
특히 같은 건물에 기존 상설 매장과 함께 있는 팝업매장은 매출과 거의 직결된다. 그러다 보니 백화점은 브랜드가 팝업을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실제 백화점 명품 팝업매장도 해가 갈수록 느는 추세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명품 팝업매장 운영 횟수는 2019년 3회, 지난해 4회였지만 올해는 15회로 2년 만에 5배가 늘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에서 열린 막스마라 70주년 기념 팝업 스토어. 사진 막스마라
특히 집객이 잘 되는 대형 점포일수록 명품 팝업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백화점 업계에서 새롭게 팝업의 성지로 떠오르는 대표 매장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여의도 더현대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백화점 한복판에 명품 팝업 공간을 연출해 굳이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오가면서 누구나 쉽게 들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1층의 팝업 공간 ‘더 스테이지’는 내년 1분기까지 팝업매장 일정이 꽉 차 있는 상황이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입장에서도 럭셔리 브랜드들의 새로운 팝업 스토어를 지속해서 선보이면서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윈윈(win-win)’”이라고 했다.

구찌는 100주년을 맞아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 각각 5월과 10월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사진 구찌
팝업 열면 완판, 출혈 경쟁 우려도
단순히 홍보 효과만 누리는 것도 아니다. 올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진행한 루이비통의 팝업매장 기간 동안 신세계 강남점의 명품 매출은 12.5%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프랑스 브랜드 ‘고야드’의 팝업 동안 선보인 한정판 제품과 신규 제품은 모두 판매되는 실적을 기록했다.

코치는 서울 망원동에 브랜드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투모로우 빈티지 팝업 스토어'를 오픈했다. 사진 코치
팝업매장 선호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기존 매장을 확장하는 대신 팝업매장에 투자해 신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 올리고, 전체적인 판매 전략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이 속해있는 LVMH의 장 자크 귀오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019년 루이비통의 팝업 전략에 대해 “한 해에만 100여개의 임시 매장을 사용하고 있다”며 “다른 장소에 있는 고객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했다.
지난 2016년 미국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는 앨범 관련 패션 상품을 판매하면서 세계 여러 지역에 21개의 팝업매장을 활용했다. 출시 전날 밤 매장의 위치를 공개했으며, 각 매장은 약 50만 달러(5억 9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갈수록 대형화하는 팝업 매장이 이른바 ‘머니 게임’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많은 예산을 쓸 수 있는 대형 브랜드들 사이에서도 누가 더 크게, 멋지게 매장을 열지 경쟁하는 추세”라며 “갈수록 격화하는 팝업 마케팅 전쟁으로 작은 브랜드나 신규 브랜드는 끼어들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