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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이 사치품 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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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삽화=김회룡 화백

삽화=김회룡 화백

일반인은 그간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던 요소수 부족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더 큰 파고가 닥치고 있다. 다음 파고는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필자의 전망이다.

온난화ㆍ물류 쇼크에 식량 위기 # 커피ㆍ밀ㆍ설탕 등 가격 폭등 중 # #필수 식품이 사치품 될 가능성 #한국 정부, 얼마나 대비하고 있나

먹거리 난리의 아주 조그만 조각을 우리는 이미 체감하고 있다. 일단 커피의 원료인 원두 가격이 폭등했다. 이미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아라비카 원두 선물 가격은 지난해보다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세계 1위 산지 브라질의 흉작에다가 코로나19로 인한 베트남 생산 차질 등 때문이다. 원두를 미리 대량 구매해 아직 물량이 넉넉한 국내 대형 업체들은 버티고 있지만, 동네 소규모 로스터리 카페들은 커피값을 이미 올렸다. 이미 계약된 물량이 소진될 내년부터는 대부분의 업체 커피값도 오를 전망이다.

무섭게 오르는 먹거리 물가

사실 커피값 인상은 높이 쌓은 돌 더미에 돌 하나 더 얹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식품ㆍ외식 메뉴 가격은 올해 들어 안 오른 것이 없을 정도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 물가지수는 지난해보다 11%가 올랐다. 2009년 2월 이후 12년 8개월 만에 최대 폭이다. 지난달 김밥 가격도 지난해보다 4.8%, 떡볶이 가격도 3.5%가 올랐다.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먹거리 가격 상승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조사 결과 올해 9월 기준 세계 식량 가격은 지난해보다 33%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두 달 만에 3%가 오른 것으로, 2011년 이후 월별 기준 최고의 상승세다.

전문가들은 1960년대 이후 이어져 온 국제 식량 가격의 장기적 안정세가 2000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본다. 올해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추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 최소 중산층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먹거리 가격 인상 원인은 복합적이다. 일단 기후 온난화로 인한 흉작이 가장 크다. 여기에 수송ㆍ생산 비용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류 가격 인상이 겹쳤다. 물류비용 상승도 심각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농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노동력을 구하는 데도 이전보다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이렇게 수급이 불안해지고 가격이 뛰자 주요 곡물 생산 국가들이 자국의 식량안보 강화를 위해 수출문을 걸어 잠그면서 식량 위기는 증폭되는 중이다.

곡물 자급률 OECD 꼴찌 수준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을 대부분 수입해 오는 한국은 이런 위기에 매우 취약하다. 한국의 지난해 사료 포함 전체 곡물 수요량은 2383만t이었는데 이 중 72%인 1717만t을 수입했다. 세계에서 곡물을 7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1990년 43.1%에서 2019년 21.0%로 계속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곡물을 비롯한 먹거리에서 수입산 비중이 높다 보니 뛰는 수입산 원재료 가격은 그대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다.

계속 오르는 외식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계속 오르는 외식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 정부는 그렇다면 먹거리 가격 폭등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밀ㆍ콩ㆍ옥수수 같은 곡물 재배를 늘리려는 노력은 국산과 수입산 사이 가격 차가 너무 크고, 국내 생산 기반이 미흡해 몇 년째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과일ㆍ채소는 또 어떤가. 매년 계절별로 한 해는 가격이 폭등했다가 이듬해 많이 심어 가격이 폭락하는 널뛰기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제대로 된 수급ㆍ재배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입 곡물가가 오르면 식품 기업들에게 가격 상승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대증요법이 대책의 주다. 이마저도 기업들이 인상을 고집하면 막을 명분도 없다. (실제로 많은 업체는 최근 가격 인상을 속속 관철했다.)

비축량 늘리고 수입 다변화 해야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해보겠다고 지난 9월에서야 처음으로 ‘국가식량계획’을 세워 발표했다. 쌀 매입과 밀ㆍ콩 비축 물량을 늘리고, 기업의 해외 곡물 공급망 확보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대응해 기후 적응형 재배 기술과 품종을 개발하고 기상 재해 조기 경보를 2027년까지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제서야 종합 계획을 세웠다는 게 놀랍지만, 그래도 이왕 세웠으니 꼼꼼히 제대로 실행 여부를 챙기길 바란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난달 발간한 ‘곡물 수급 안정 사업ㆍ정책 분석’ 보고서에서 “밀ㆍ콩 등의 재고율이 낮고 대부분 민간이 관리하고 있어 공공부문 주도로 민간 부문과 협력해 체계적으로 비축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소수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곡물 수입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최지영 경제에디터

최지영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