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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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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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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 공무원들이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이날 참석자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등 당시 재정경제부 고위 공무원.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난 후 부랴부랴 수립한 신용카드 대란 방지대책은 대표적인 뒷북 정책이다.” 귀를 기울인 부총리 앞에서 신랄한 비판을 내놓은 건 다름 아닌 재경부 공무원. ‘재경부가 망하는 시나리오’라는 이름으로 열린 워크숍이었던 탓이었다.

망하는 걸 전제로 토론회를 벌일 만큼 위기의식이 상당했는데, 이날 나온 ‘재경부가 망하는 시나리오’는 이랬다. 경기상황 진단 실패, 뒷북 정책, 정책 수립 절차의 합리성·투명성 결여, 비용 개념이 없는 막가파식 정책. 그리고 시장과 여론, 언론의 의견 무시와 정치적 외풍, 모피아(재경부를 뜻하는 영문 약자와 마피아의 합성어)였다.

기획재정부의 뿌리는 임시정부 재무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으로 갈렸던 조직은 재정경제원(김영삼 정부)으로, 또다시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김대중 정부)로 분리된다. 이 두 조직을 합쳐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이다.

설화(舌禍)도 많았다. 아픈 이야기는 바로 ‘모피아’다. 마피아 집단에 비교될 정도로 정부 요직과 국책은행 자리를 차지하며 무소불위 힘을 과시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외환위기(IMF)에 외환은행을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헐값으로 넘기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관료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기도 했다.

최근 기재부가 연일 뉴스에 올랐다. 예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추가 전국민 재난지원금 등에 초과세수를 쓰자고 나서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기재부는 난색을 보였는데, 지난 7월 추경을 편성하면서 밝힌 것보다 19조원이나 많은 세금이 걷힌 것으로 드러나면서 불똥이 튀었다. 여당은 “의도가 있었다면 국정조사라도 해야 될 사안(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라는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결국 “송구하다”며 진화에 나서고, 이재명 후보 역시 어제 추가 재난지원금 지급안을 거둬들이며 논란은 가라앉는 모양새지만, 대선을 앞둔 후보들의 선심성 정책은 이어질 전망이다. 16년 전, 선배들이 짚었던 ‘망하는 시나리오’를 기재부로 바꿔 다시 곱씹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