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신실용주의…전자의 구미 TV공장, 애플 폰카공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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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의 전자부품 계열사인 LG이노텍이 경북 구미에 있는 LG전자 구미 A3공장 인수를 추진한다. 미국 애플로부터 카메라 모듈 주문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안정적인 생산라인 확보를 위해서다.

LG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18일 “LG이노텍이 LG전자의 구미 생산라인 중 A3공장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현재 가격 협상 단계로 내년 상반기 중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 실용주의 행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LG이노텍은 현재 LG전자 구미공장의 일부 생산라인을 빌려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번에 A3공장 전체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LG전자의 구미 생산시설은 A1·A2·A3 등 총 3개 공장으로 구성돼 있다.

LG이노텍이 A3공장 인수에 나선 건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특히 애플의 주문량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LG이노텍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9조22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6조7000억원이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과 증강·가상현실(AR·VR) 카메라 모듈 등을 생산하는 광학 솔루션 사업부문이 올린 것이다. 이 가운데 애플에 공급한 물량이 60~70%인 걸로 업계는 본다. 이 회사는 애플에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뿐 아니라 스마트폰용 반도체 기판도 공급한다. 업계는 LG이노텍이 3분기까지 애플 관련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가량인 것으로 보고 있다.

확장하는 LG이노텍 카레라 모듈 사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글로벌 공급망의 급변은 LG이노텍에 기회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애플이 동남아 공장에서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노텍에 한국 내 생산을 늘려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이노텍의 경쟁사인 일본 샤프의 베트남 공장이 중단되면서 이노텍에 주문이 몰렸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1975년 완공된 연면적 40만㎡(약 12만 평)의 구미 공장은 TV, 사이니지, 태양광 모듈 등을 생산하는데, 지난해 5월 TV와 사이니지 생산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해 현재 4개 라인만 유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부족으로 LG전자는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는 데 비해 이노텍은 단기적으로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구미 공장의 사업 재편에 대해 재계는 돈이 안 되는 사업은 과감히 접고 될 사업에 집중하는 ‘구광모식 실용주의’가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한다. LG그룹을 이끄는 구광모 (주)LG 대표는 2018년 취임 이후 이런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 7월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낸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이다. 연료전지·액정표시장치(LCD)·전자결제 사업에서도 손을 뗐다.

대신 전장·배터리 사업 등엔 공을 들였다. 오스트리아 자동차 조명기업인 ZKW 인수, 캐나다 마그나와 합작한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 출범 등을 통해 전장(자동차 전자부품)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이어왔다. 또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 LG에너지솔루션을 출범시켰다.

적과 동지도 하루아침에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에서 손을 뗀 후 경쟁사였던 애플과는 ‘밀월 모드’로 전환했다. LG베스트샵 중 160곳에서 애플의 기기를 팔고 있다. LG화학·LG디스플레이 등은 애플에 배터리·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도 공급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애플과 협력을 확대하는 LG이노텍에 대해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LG이노텍은 AR·VR 카메라 모듈 같은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부품 생산에도 강점이 있어 애플의 메타버스와 협력설도 나온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면서 강점이 있는 중간재 분야를 특화, 강화하는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며 “최근 LG의 부품사업 강화도 이런 차원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