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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글로벌 제약사들은 왜 K바이오에 반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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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세계제약산업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 ‘피에라밀라노’ 제2전시장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스에 몰린 인파. 문희철 기자

세계제약산업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 ‘피에라밀라노’ 제2전시장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스에 몰린 인파. 문희철 기자

“한국의 제약 위탁생산(CMO) 기업은 완제품 품질이 높고 공급 기한을 철저히 준수하는 파트너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차기 파이프라인(pipeline·신약 개발 후보)을 맡길 유력한 CMO 후보로 한국을 검토 중입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세계제약산업전시회에서 만난 영국계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전시회는 코로나19 이후 2년 만에 1075개 기업 관계자가 오프라인에서 만난 제약·바이오 관련 세계최대 전시회였다.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제약기업이 중심으로 떠올랐다. 18개 한국 기업이 마련한 부스는 3일 내내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로 북적였다. 세계제약산업전시회가 별도 연차보고서까지 내면서 CMO 산업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주요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기업의 시장점유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주요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기업의 시장점유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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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O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스위스 론자는 각각 260㎡(79평) 크기의 최대 규모 단독 부스를 마련했다. 글로벌 제약사가 공장 건설이나 생산 설비 확충 등 막대한 초기 자금을 쏟아부어도, 초기 투입 비용 대비 양품 비율이 기대 이하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 생산 기술을 이전받아 대신 제품화하는 기업과 손을 잡는 이유다.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팹리스)가 위탁생산(파운드리) 전문 기업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2019년 119억 달러(약 13조9900원) 수준인 글로벌 CMO 시장은 오는 2025년 253억 달러(약 29조7500억원)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수년 전만 해도 글로벌 CMO 산업은 론자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의 양강 구도였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이 생산 시설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면서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시장 규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시장 규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에 생산을 위탁한 바이오의약품 중 올해 증액한 계약이 7099억원어치에 이른다. TG테라퓨틱스·아스트라제네카·길리어드 등이 주문을 늘렸다. 특히 스위스 로슈는 지난달에만 두 차례 주문을 늘려 391억원이던 계약 규모가 4444억원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CMO 분야에서도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AZ)·노바백스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생산 중이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 백신과 일라이릴리 치료제 CMO를 맡았다. 한국코러스·휴온스글로벌 컨소시엄은 러시아 백신(스푸트니크)을 CMO한다.

셀트리온은 다케다제약 아태 제품군에 대한 권리 자산을 인수해 CMO 사업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한미약품·대웅제약 등 전통 제약사 역시 줄기세포·유전자 치료제 CMO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피오나 배리 글로벌데이타 팜소스 편집자는 “지난 2년간 230여건의 코로나19 백신·치료제가 CMO 계약을 체결했다”며 “향후 수년간 코로나19 관련 제품 CMO 계약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CMO 산업에서 한국이 주목받는 건 특유의 스피드와 서비스 덕분이다. 양은영 삼성바이오로직스 글로벌세일즈팀장(상무)은 “외국에선 바이오플랜트(공장) 설계부터 바이오리액터(세포 배양기) 발주, 생산라인 건설까지 최소 5~6년이 걸린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다”고 말했다.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생산도 이 회사는 5개월 만에 해냈다. 통상 계약부터 생산까지 평균 1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시장 진출한 주요 한국 기업.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시장 진출한 주요 한국 기업.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갈수록 포괄적인 기술 협력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비용 절감, 안정적인 생산 등에서 유리해서다. 주요 한국 기업은 위탁연구(CRO)→위탁개발(CDO)→위탁생산(CMO)까지 일괄적으로 가능하면서 특유의 고객 맞춤형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정책부문 전무는 “글로벌 제약사는 품질관리기준(cGMP) 인증과 각국 정부 규제 변화 대응력은 물론 생산·임상·상용화까지 협업할 수 있는 기업을 선호한다”며 “한국은 이 과정을 경험한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임스 박 삼성바이오로직스 글로벌영업센터장(전무)은 “글로벌 제약사가 예측한 물량이 현실에서 항상 맞는 건 아닌데, 이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속하고 유연하게 공장 상황을 조정해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대응했다”고 말했다.

차별화한 전략도 한몫했다. 올해 전시회에서 40여개 글로벌 제약사의 구애를 받은 JW중외제약의 경우 지난 6월 항생제 원료(어타페넴) 완제품을 미국에 출시했다. 국내 제약사 중 처음이다. 정혜진 JW홀딩스 해외영업팀장은 “기술만 이전하는 경쟁사와 달리, JW중외제약은 시화공장에 관련 설비·인프라를 한꺼번에 갖추면서 미국 시장을 뚫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중국·인도의 거센 도전이다. 백승열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장은 “아직은 한국이 경쟁국 대비 기술 수준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중국·인도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점차 쫓아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윤주영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에서만 100개 이상의 기업이 바이오의약품 CMO 산업 진출을 노리고 있다”며 “한국 CMO 기업이 특유의 서비스와 노하우로 시장을 다질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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