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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독도 방문에 일본 강력반발, 한·미·일 3각협력 흔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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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7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열린 제9차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에 앞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회담 후 예정됐던 공동기자회견은 일본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사진 외교부]

17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열린 제9차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에 앞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회담 후 예정됐던 공동기자회견은 일본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사진 외교부]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예정됐던 한·미·일 외교차관 공동 기자회견이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이날 한·미·일 협의 뒤 미국의 웬디 셔먼 부장관만 홀로 브리핑에 나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동맹 중시’를 내세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견제 차원에서 공들여 온 한·미·일 3각 협력의 복원에서 한·일 관계가 ‘약한 고리’임이 새삼 드러났다.

이날 모리 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 시작 전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문제 삼으며 공동 기자회견에 나설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한·일 차관이 언론 앞에 함께 서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양측 이견만 부각되고 3국 협의의 의미가 묻힐 우려가 있다는 게 일본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김 청장이 한국 영토인 독도를 방문한 것은 정상적이지만, 일본 측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내각 출범 직후 국회의원도 아닌 치안을 총괄하는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독도를 찾은 걸 불쾌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기시다 내각으로선 이를 경찰청장 한 사람의 방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갈등 전선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 경찰청장은 차관급으로, 일본도 동급인 외교차관 회견 불참으로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직 경찰청장, 2009년 이후 첫 방문

김창룡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은 2009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청와대는 경찰청 보고로 이를 미리 알고 있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8일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상 명백한 우리 영토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를 두고 “도서벽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며 “경찰의 관할 책임 지역인데 치안 총수인 경찰청장이 당당하게 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선 일본이 한·일 양자 협의가 아닌 한·미·일 다자 협의에서 외교 결례를 감수하면서까지 독도 문제를 수면 위에 올리려 한 것에 주목한다. 국제적으로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고 국내적으로는 반한 감정을 부추겨 지지층 결집을 의도했다는 분석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최근 일본 정부가 자국 내 여론을 의식해 영토 (분쟁)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도 외교적 영향과 관련, 부처 간 사전 조율이나 대비 없이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추진해 문제를 불필요하게 꼬이게 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홀로 기자회견장에 섰던 셔먼 부장관은 “꽤 오랜 기간 일본과 한국 사이에 양자 간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겠다”며 “의견 차이 중 하나로 인해 오늘 기자회견 형식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와 한·일 갈등에 정통한 셔먼 부장관이 내막을 그대로 공개한 것은 양자 갈등으로 3자 협력을 저해하는 한·일 양측을 모두 압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7월 셔먼 부장관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한·미·일 차관 협의를 4년 만에 부활시키는 등 3국 공조에 공을 들여 왔다. 이날 셔먼 부장관이 일본의 불참 선언에도 홀로 기자회견장에 나와 차관 협의 결과를 설명한 것 자체에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이날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일본 측이 우리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 문제로 회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미·일 차관 협의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어 개최국인 미국이 단독 회견으로 협의 결과를 공개하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일본 측은 김창룡 청장의 독도 방문으로 분위기가 안 좋아 (모리 차관이) 비행기를 못 탈 뻔했는데, 상부를 설득해 오게 됐다고 한다”며 정황을 설명했다. 한국은 공동 기자회견 무산에 책임이 없음을 강조하려고 이를 밝혔지만, 외교 채널 사이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한 적절성 논란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반한 부추겨 지지층 결집 의도”

정부가 최근 한·미, 한·미·일 등 대외적 협의 계기마다 종전선언 설득에 ‘올인’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은 득될 게 없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종전선언 당사국은 아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당시인 2018년 미국 측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논의에 제동을 거는 등 미국의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번 공동 기자회견 무산은 한·미·일 3국이 얽힌 다양한 현안에서 일본이 훼방을 놓으면 미국도 달리 손쓸 여지가 없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정부는 일본에 책임을 돌리지만, 이번 상황은 일본이 미국에 주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일 수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은 “한·일 관계는 서로에게 보험과도 같다”며 “단기 전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를 걸림돌로만 인식하고 국내 정치적으로 반일·반한 감정을 활용하는 건 근시안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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