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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밀려난 말기암 환자들, 집에서 버티다 응급실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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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코로나19 전담병원이라 (암환자가) 입원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 산하 한 시립병원은 18일 이렇게 안내했다. 공공병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면서 이들이 운영하던 호스피스 병동이 코로나19 치료에 동원됐다. 이로 인해 말기 암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 힘들어지면서 임종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김범석 교수팀은 2019~2020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 암환자 1456명의 의료이용 실태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19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주최 ‘코로나19 유행에서 관찰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 심포지엄에서 연구 결과를 공개한다.

코로나19 전후 말기암 환자의 의료이용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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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발생 이전에도 국내 호스피스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말기 암환자의 24.3%(2019년)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한다. 그런 와중에 호스피스가 줄면서 말기 암환자는 갈 데가 사라졌다. 김 교수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말기 암환자가 직격탄을 맞았다. 집에서 최대한 버티다가 임종 증상이 나타나면 준비되지 않은 채 다급하게 응급실로 실려 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숨진 말기 암환자가 2019년 53명에서 지난해 99명으로 약 두 배로 늘었다. 응급실에 체류하는 시간도 늘었다. 김 교수는 “응급실에 실려 가면 케어 플랜(말기 진료에서 사망까지 계획) 같은 게 없다.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치료 등을 받게 돼 임종 질이 악화한다”고 말했다.

강제로 혈압을 높이는 승압제를 사용한 환자가 52.3%에서 59.2%로 늘었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도 12.5%에서 16.3%로 늘었다. 혈액검사, 영상검사, 모니터링 등이 대부분의 말기 암환자에게 시행됐다.

말기 증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임종 3일 전 섬망 증상(환각·착각, 심한 불안 증세)을 보인 환자가 10.9%에서 17.2%로 늘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임종 전 증상 관리가 잘 안 되고 불필요한 연명의료행위를 시행하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종의 질이 떨어지면서 가족도 큰 상처를 받는다. 임종기에 환자와 함께하지 못해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가족 1명이 ‘독박 간병’에 내몰리고, 이로 인해 육체적·심리적인 상처를 받는다. 김 교수는 이런 ‘트라우마성 사별(traumatic death)’ 경험이 유가족의 애도 장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말기 환자의 존엄성은 방역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위기 상황에서도 말기 환자 돌봄이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며 “재택의료 확대, 가족의 독박간병 해소가 절실하다”며 “집으로 찾아가는 가정 호스피스나 의사의 왕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전남대 의대 김성완 교수가 조현병 환자의 고통을 발표한다. 김 교수팀은 국내 조현병 환자 1340명을 일반 인구 집단 2000명과 비교했다.  코로나19 유행 후 1년 동안 조현병 환자의 입원이 예상 대비 최대 8%, 외래 진료는 최대 5%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조현병 치료에서 꾸준히 약을 먹는 게 재발 예방에 중요한데, 여기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환자 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단 허대석 단장은 “코로나19 발생 후 중증정신질환 및 말기 암 같은 질환군에서 심각한 피해가 나타난다”며 “재난적 의료사태가 반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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