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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승부수 왜…재난지원금 철회, 조건없는 특검도 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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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재난지원금과 대장동 특검,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두 가지 빅 이슈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새로운 입장을 내놓았다. 이 후보는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을 요구해 온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는 추후에 검토해도 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1인당 30만~50만원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힌 지 20일만이다. 정치권에선 "사실상의 철회"란 해석이 나왔다. 이 후보는 대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어렵다”며 신속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정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정당쇄신, 정치개혁 의원모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후보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한 사실상의 철회 의사와 '조건 없는 특검' 수용 입장을 밝혔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정당쇄신, 정치개혁 의원모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후보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한 사실상의 철회 의사와 '조건 없는 특검' 수용 입장을 밝혔다. 임현동 기자

이 후보는 이날 야당이 요구해 온 ‘대장동 특검’ 주장에 대해서도 “조건을 붙이지 않고 아무 때나 여야가 합의해서 특검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전격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 후보 본인의 주장에서 비롯돼 야권과 거칠게 충돌했던 두 이슈에 대해 그 스스로 사실상 ‘유턴’을 선택한 모양새다. 지지율 정체 국면의 이 후보가 정무적·정책적 유연성을 통해 자신이 져야할 부담을 더는 일종의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소상공인 지원…전격 유턴 이유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전 SBS D 포럼 '5천만의 소리, 지휘자를 찾습니다'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SBS 프리즘타워로 들어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전 SBS D 포럼 '5천만의 소리, 지휘자를 찾습니다'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SBS 프리즘타워로 들어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후보는 18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합의가 어렵다면,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에 대해서라도 시급히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소상공인 손실보상의 하한액(현재 10만원) 대폭 상향 ▲인원제한 사업장 등 위기업종 초과세수 활용해 지원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올해 총액(21조원) 대비 증액 등을 주장했다.

이런 입장 선회는 ‘전 국민 지원금’을 반대해 온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연일 압박하던 모습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이 후보는 지난 15일에도 홍 부총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경제 정책을 만들어 책정하는 과정에서 정말 책상을 떠나서 현장에 가 보시라, 따뜻한 안방이 아니라 찬바람 부는 바깥의 엄혹한 서민들의 삶에 대해서 직접 체감을 해보시라”고 몰아세웠다.

이 후보의 최측근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서 “역시 이재명답다. 철학과 원칙은 분명하지만,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현실 여건에 맞게 유연하게 한다. 오직 국민을 위한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후보가 "윤석열 후보가 50조 원 내년도 지원을 말한 바 있으니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오늘이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신속한 지원안을 마련하길 촉구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는 야당을 압박하는 노림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윤 후보는 후보 선출 뒤 언론 인터뷰 등에서 "새 정부 출범 100일 내에 50조원을 투입해 자영업자 피해를 전액 보상하겠다" 고 했는데, 이 후보 측에선 "국민의힘이 이 후보의 제안을 수긍하긴 싫겠지만, 해 놓은 말이 있기 때문에 이 후보가 제안한 소상공인 지원에 무작정 반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걸 노린 것"이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전국민 재난 지원금 철회엔 '정부 재정의 현실적 한계를 절감한 고육지책'적인 성격도 있다. 실제로 이 후보의 입장선회엔  “초과 세수 가운데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2조500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 일상회복 지원금(전국민 재난 지원금) 8~10조원을 지급하기에는 부족했다”는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의 보고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 후보는 보고를 받은 직후 “그러면 고집하지 않겠다. 지금 남은 초과세수를 급한 현장에 소상공인들에게 합의해서 썼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전격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정부와의 극한 갈등이 '정치력 부재','밀어붙이기식 리더십'이란 비판으로 돌아오고 있는 현실도 이 후보의 판단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조건 없는 특검’ 승부수…“엄중히 책임 묻자”

이 후보는 이날 대장동 의혹에 대해서도 기자들과 만나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 말고,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해서 툭 털어놓고 완전하게 진상규명을 하고 잘못이 있으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특검이 됐으면 좋겠다”며 특검 도입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사건 초기 특검 도입에 반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입장이다.  또 "검찰 수사에 미진한 점이 있거나 의문이 남으면 특검이든 어떤 형태로든 완벽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청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10일 관훈클럽 토론회) "일정 정도 제대로 안 한다 싶으면 당에서 강력하게 예외 없이 특검을 시행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15일 선대위 회의)는 최근의 '조건부 특검 수용론'과 비교해도 더 전향적인 입장이다.

이 후보가 특검 도입의 이유로 밝힌 건 검찰 수사의 미진함이었다. “화천대유 관련 자금조달 과정과 개발이익 분배 과정, 공공개발 포기 과정. 민간개발 강요 과정. 개발이익의 부정한 사용처가 당연히 규명돼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검찰) 조사가 매우 미진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후보가 이날 특검 수용 입장을 확실한 밝힌 건 그동안의 태도나 발언에 대해 "특검 도입에 대한 진정성이 전혀 느끼지 않는 물타기식 임기응변"이란 비판이 나온 걸 의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는 이날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선 “검찰이 진실을 규명해 저의 무고함을 밝혀주겠지 했더니 해야 할 수사는 하지 않고 저에 대해 이상한, 쓸데없는 정보를 언론에 흘려 공격하고 있다”며 검찰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윤 후보가 주임검사였던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대출비리 수사 무마 의혹도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야당에선 ”이제 와서 여론이 불리해지니 ‘검찰 탓’인가”(허은아 수석대변인), “여당 후보의 부당한 대선 개입 발언”(국민의힘 관계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후보가 이날 “실제 이 사건에서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고, 그 결과물을 부정하게 취득했던 국민의힘 관련자들과 국민의힘 후보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수사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선 윤석열 후보가 직접 나서 “물귀신 작전”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윤 후보는 “과도하게 조건을 내세워 물귀신 작전을 하면 특검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특검도 수사대상을 집중해야 수사가 되는 데 몇 개씩 집어넣어 물타기를 한다면 특검이 아니라 말장난”이라고 반박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후보가 속절없이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를 직면하고서야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다”며 “민주당은 지금 즉시 조건 없는 특검 협상에 응해야 하며, 여기서 더 어설픈 계책을 쓴다면 민심만 더 악화될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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