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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도는데 비싼’ 우윳값 잡힐까…흰우유·치즈용 가격 나눈다

중앙일보

입력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뉴스1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우유와 유제품의 원재료인 원유(原乳) 가격을 손본다. 현재 원유 가격은 수급과 상관없이 낙농가의 생산비와 연동해 자동 인상되는 구조다. 원유 수요가 줄어드는데도 값은 오르면서 국산 원유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1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앞서 16일 개최한 낙농산업 발전위원회에서 원유 가격에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흰 우유를 만드는 ‘음용유’용 원유와 치즈·아이스크림·분유 등을 만드는 ‘가공유’용 원유의 가격을 따로 책정하는 방식이다. 음용유는 L당 1100원으로 현행 원유 가격 수준을 보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가공유는 L당 900원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적용한다.

가격 낮추는 대신 더 산다

원유(原乳) 가격 개편 효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원유(原乳) 가격 개편 효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동안 유업체는 흰 우유를 만들든 치즈를 만들든 낙농진흥회가 정한 L당 1083원이라는 가격에 원유를 사야 했다. 그런데 가공유용 원유 가격이 L당 900원 수준으로 결정된다면 낙농가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대신 정부는 유업체의 가공유 구매량을 늘리도록 했다.

낙농가는 현재 원유 204만9000t을 ‘쿼터’로 설정해 유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쿼터에 따라 이 물량은 무조건 L당 1083원을 보장받는다. 앞으로는 가격 체계를 개편하는 대신 유업체는 음용유 186만8000t, 가공유 30만7000t 등 총 217만5000t을 사들이도록 할 방침이다. 현행 쿼터보다 6% 많은 구매량이다. 정부는 이렇게 하면 낙농가 소득이 현재보다 1.1%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업체가 원유를 추가 구매하는 비용 일부는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국제 가공유 가격이 L당 400원 수준이라 가공유 가격을 L당 900원으로 낮춘다고 해도 외국산 원유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공유 구매 비용 중 L당 100~200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소비자 가격 내려가나

낙농진흥법에 따르면 유업체는 낙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모두 사들여야 하고, 낙농가의 쿼터만큼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을 보장해야 한다. 유업체의 부담은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앞으로 유업체가 가공유를 지금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게 되면서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박범수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정부가 유업체의 가공유 구매에 예산을 지원하면 평균 구매단가가 낮아져 업체 수익도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낙농가 “정부가 생산 늘리라면 늘어나냐”

지난 7월 전북 완주군의 한 축사에서 젖소들이 분무기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전북 완주군의 한 축사에서 젖소들이 분무기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낙농가는 정부의 개편안에 즉각 반발했다. 현행 제도로는 원유 생산량의 전량을 기존 가격대로 공급할 수 있는데,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면 손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유업체가 추가로 구매하는 물량에 맞춰 생산을 바로 확대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농식품부의 개편안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낙농가에게 원유를 증산해 소득을 유지하라는 것인데, 규모 확대에 따른 생산비 상승은 물론 환경 문제 등으로 생산기반을 확대할 수 없는 여건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 회장은 “유업체의 이권 보장을 위해 낙농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물가를 명목으로 낙농가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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